앞서 미·중 무역분쟁에 대해 여러모로 살펴봤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역분쟁이라는 거대한 파고를 넘어 세계 수출 4위라는 2019년의 목표를 무사히 이루기까지 어떠한 대비와 자세가 필요할까? 이 난제 앞에 3명의 전문가가 모였다.
# 미· 중 무역전쟁, 낙관하기는 어렵다
“매우 어려운 주제이자, 쉽게 답하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학계와 산업, 법률 분야를 대표하는 세 명의 통상 전문가는 대담에 앞서 입을 모았다. 예상하기 힘든 변수나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상황 또한 이 주제를 어렵게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기업이 겪을 난관이 눈에 선해 마음 한쪽이 무거운 탓이다.
안덕근 교수 미·중 무역전쟁이 2018년 우리나라 수출 분야에 우려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상황이 악화될 것을 예상한 기업들이 일정 성과를 앞당겨 수확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만, 오히려 무역전쟁으로 인해 금융시장에서 주식이 떨어지는 등 시장의 불확실성이 투자 심리를 위축하고 경기 침체를 심화한 측면도 있습니다.
김선화 실장 미·중 무역전쟁이 단순히 경제문제가 아닌, 두 국가의 패권전쟁이기도 해서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날이 갈수록 미·중 통상분쟁의 피해 체감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무역과 관련해 가치사슬이 바뀌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데요, 미국과 중국 외 제3국 기업들이 생산량을 조정하고 생산 기지를 이전하는 산업 개편이나 투자 분야에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벗어나려는 기업의 수요와 투자를 자국으로 끌어오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인도와 대만, 베트남 등이 우리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장정주 변호사 미국은 중국이 국제 통상 규범을 준수하지 않고 시장을 왜곡한다고 주장하며 일방적으로 제재를 가했는데요, WTO가 양국의 관세 조치에 관한 결론을 내리기까지 3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 기업의 어려움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미국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WTO 상소 기구의 기능이 정지될 우려가 있습니다. WTO가 힘을 잃으면 미국에 힘이 더 실릴 수도 있을 텐데, 이런 부분은 기업이 대응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안덕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김선화 KOTRA 통상협력실장, 장정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왼쪽부터)
# 곳곳에 숨은 암초를 잘 피해야
세계 통상 규범과 질서의 개편이라는 거대한 시류의 변화 앞에 선 2019년 한국 경제. 어찌 보면 미국과 중국의 급격한 온도 차가 만들어낸 태풍을 지나야 하는 배의 모습과도 닮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곳곳에 잠재된 위험 요인을 미리 파악해 피하는 것이 급선무다.
장정주 변호사 국제무역 질서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있습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각국의 움직임도 강화될 수 있고요. 대표적인 예로 세이프가드 조치가 있습니다. EU가 철강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사를 시작했고, 이는 우리 철강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정부와 기업이 연계해 주요 국가들의 무역규제 관련 법 개정 상황을 잘 살피고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선화 실장 말씀하신 부분이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를 주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미·중 분쟁과 관련해 기업 차원에서는 수출 품목이 관세를 부과하는 품목에서 예외가 되거나, 거래처를 변경하는 것 외에 대응책이 사실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 중국과 미국이 서로의 수출품을 받지 않기 위해 통관 절차도 까다롭게 할 텐데, 이 부분도 기업에는 어려움이 될 것입니다. 외국에서 아시아의 환경이 불확실하다고 해서 투자를 줄이려는 것 또한 우리 기업, 특히 스타트업에 부담 요인이 될 수 있고요.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의 현실화 또한 우리 통상환경이 직면할 또 다른 변수인데,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유럽과 비즈니스를 하는 우리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안덕근 교수 미·중 무역분쟁을 피하고자 우리나라를 우회 수출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산업계에선 해당 분야의 시장 관리가, 정부에서는 투자에 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한국이 우회 수출의 통로라는 인식이 퍼지면 우리 기업의 제품을 믿고 사지 않겠지요. 국내시장을 지키기 위해 우회 수출의 통로로 인식되지 않도록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겠습니다. 또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올 초 적자로 돌아섰음에도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계속 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가 위안화를 절상하는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요, 이런 경제 구조 때문에 환율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나아가 중국의 지방정부나 국영 기업 부채가 앞으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도 고려해야 합니다.
# 유연함과 균형감으로 파도를 넘어라
암초를 피하는 것만으로는 항해를 무사히 마칠 수 없다. 태풍 속을 항해하는 선박에는 거친 파도를 넘을 수 있는 노련한 항해 실력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일 터. 이를 직시하고 유연함과 균형감을 갖춘다면, 태산 같은 파도도 넘을 수 있다.
김선화 실장 어려운 일이지만, 기업의 특색을 갖추는 것이 주효하다는 입장입니다. 기업의 경영자는 세계 무역 흐름을 늘 주시해야 합니다. 적절한 지원과 가치사슬의 변화를 선도하는 것도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입니다. 특히 자동차나 기계는 가치사슬에 민감한 분야인 만큼 새로운 공급처를 발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하고, 중국에 진출했다가 우리나라에 복귀하려는 기업에도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탈중국 수요나 새로운 거래처를 찾는 우회 수출을 우리 쪽으로 확보한다면 기회가 되겠지요. 기존의 파트너십을 잘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안덕근 교수 경제가 위축되면 투자나 개발에도 소극적일 수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다른 나라, 기업들과 격차를 벌려나가야 합니다. 디지털 무역 개혁이 가장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가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적극적인 규제 개혁이나 개방성에 힘입은 중국과의 격차가 사실상 그리 크지 않습니다. 우리도 국제 환경에 발맞추고 세계적인 산업을 이끌 수 있도록 규제 혁신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남들이 따라 하기 힘든 기술력을 갖춘다면, 미·중 무역분쟁이 아니라 더 큰 위협이 와도 한국을 찾는 수요가 있을 테니까요. 또 하나 덧붙이자면 유연성입니다. 중국의 주식시장과 우리의 주식시장이 비슷하게 진행하는 ‘동조화 현상’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식재산권을 강조한 미국의 통상법 301조가 노동 기준에 대한 논의로 확장함에 따라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경영 전략도 필요하고요.
장정주 변호사 이른 시일 내에 새로운 무역 규범이 정립되기 어렵겠지만, 우리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유리한 점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긴밀하게 협조해야겠지요. CPTPP와 같은 기존에 구축한, 더욱 발전된 규범에 참여해 역할을 하는 것도 충분히 준비하고 도전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통상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서 기업이 단순히 통상 대응 조직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갖추고 조직 내에서 전문 인력의 의견을 존중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인력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조직의 유연한 구조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 지금이 ‘부위정경’해야 할 때
태풍은 때로 인간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만, 비를 몰고 와 물 부족을 해소하거나 해수를 순환하고 기온의 균형을 이루는 역할도 한다. 태풍과도 같은 우리 앞의 상황을 또 다른 기회로 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선화 실장 부위정경(扶危定傾), 즉 ‘위태로운 것을 잡고 기울어진 것을 바르게 세운다’는 이 말은 세계 경제 위기를 맞아 비효율적 제도나 관행을 바로잡고 수출과 성장의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우리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위기를 위기로 두지 않고 지혜롭게 극복한다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겠지요.
장정주 변호사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존에 우리가 의지해오던 시장이 아닌 새로운 시장을 찾고, 좀 더 멀리 보며 우리의 체력을 키우는 데 투자한다면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안덕근 교수 통상환경이 이미 악화했고 패러다임도 더욱 변화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 위기를 잘 극복하는 기업은 앞으로 30년, 50년 이상을 유지할 내공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위기에 굴하지 않고, 우리 기업이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해나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