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지만 마음만 받으세요”
자유무역 시대는 곧 무한 경쟁 시대다. 정부와 기업은 이 상황에서 한 배를 타게 된다.
자국 기업이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생산하고, 이를 해외에 팔면 그 수입이 다시 국가의 부로 축적되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선 기업을 지원할 인센티브가 존재하는 셈인데, 대표적 형태가 바로 보조금(subsidy) 지급이다.
자료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중국서 터지고 EU서 터지는 보조금 문제
미국과 중국 간 협상이 1년 이상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출구를 암시하는 빛은 없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소극적이고 방관적인 태세로 전환하는 중국이다. 그러면서 “국유기업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폐지는 협상 의제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최근 양국 간 스몰딜 합의가 이뤄졌지만 농업, 지식재산권, 금융이 주요 합의 내용으로 보조금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알리바바나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이 무섭게 부상해 미국의 구글, 애플 등을 위협하게 된 배경에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국유기업에 불법적인 보조금을 지원했고 이에 힘입어 이들이 초고속 성장을 이뤄냈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다.
중국만이 아니다. 최근 항공기와 관련된 WTO분쟁에서 EU의 에어버스에 대한 불법보조금 지급과 그로 인한 피해가 인정되며 미국이 승소했다. 이에 불복한 EU에게 미국은 보복관세 부과도 시작했다. 연 75억 달러 규모 관세 부과로 EU산 와인과 치즈에 25% 관세가 추가되는 게 그 내용이다. EU도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 역시 보잉에 불법보조금을 지급했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미국과 EU, 중국으로 이어지는 무역전쟁 트로이카의 핵심에는 보조금이 자리하고 있다.
보조금과 상계관세 조치
보조금의 종류는 다양하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예로는 휴대전화를 살 때 단말기 보조금이 있다. WTO에서 말하는 보조금이란 공공 기관을 포함해 정부가 특정 상품의 생산, 제조, 분배 등 과정에서 금전적 기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금전적 기여는 직접적인 금전 지급뿐 아니라 세금 등 정부가 징수해야 할 대상에 대한 면제특권 역시 포함된다.
이렇게 보조금 혜택에 힘입은 기업과 산업이 이를 통해 자신의 상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외국의 경쟁 기업과 산업에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발생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이 경우, 피해 국가는 상대 국가 보조금으로 인한 부정적 피해를 상쇄하기 위해 세금을 부과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상계관세(Countervailing Duty, CVD)다. 그리고 이에 대한 규범은 WTO 보조금-상계조치 협정에 명문화되어 있다. 특정국 정부의 금전적 기여를 보조금으로 정의 내리고 이에 대해 상계관세 조치를 취하기 위해선 다음 세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① 정부로부터의 금전적 기여가 존재할 것, ② 그 금전적 기여로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이익이 발생할 것, ③ 이로 인해 수입 국가의 경쟁 기업이나 산업에 피해가 발생하고 보조금 지급과 산업 피해 간 인과관계가 성립될 것이다. 이 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피해를 입은 국가는 그 대응으로 두 가지 안을 고려할 수 있는데, ㉠ 상계관세 부과로 그 효과를 상쇄하거나 ㉡ WTO 제소를 통한 해결이 그것이다.1 상계관세는 ㉮ 조사 개시(Initiation of Investigation), ㉯ 피해 판정(Determination of Injury), ㉰ 인과관계(Causal Relationship) 확인, ㉱ 잠정조치(Provisional Measure), ㉲ 상계관세 부과 및 징수의 단계로 진행한다.
보조금 축소, 사회적 합의 필요
정부가 자유무역을 지향하며 시장을 개방하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국내 산업의 승자와 패자가 발생한다. 이는 필연이다. 정부 입장에선 필요에 따라 보조금 지급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상 보조금 지급을 통한 불공정경쟁은 상계 조치라는 무역구제 조치의 한 갈래를 통해 반대급부를 맞게 된다. 상계관세 조치나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뤄지는 보조금 철폐는 곧 공정경쟁의 시작이 된다. 미국은 중국에 이것을 기대하고 있다.
보조금의 형태 중 예외적인 경우가 존재한다. 바로 농업보조금과 최근 자주 거론되는 수산보조금이 이에 해당한다. 농업보조금은 WTO 보조금-상계조치 협정이 아닌 농업협정(WTO Agreement on Agriculture)에서 별도로 다루고 있고, 그 분류도 ① 국내보조(Domestic Support)와 ② 수출보조(Export Subsidy)로 나뉘며 위보다 조금 더 유연하게 적용된다. 농업이 지닌 민감성 때문일 테지만 역시 확대보다는 축소가 합의의 목적지고 실제 수출보조금은 2013년과 2015년 WTO 각료 회의에서 합의를 거쳐 철폐되었다. 수산보조금은 수자원 보호를 통한 환경 보존이라는 목표를 위해 최근 WTO에서 열띤 논의를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가시적 합의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역시 어업에 대한 회원국 보조금을 축소·철폐해 무분별한 어획을 방지하는 것이 목표다. 이래저래 보조금은 종류 및 목적과 관계없이 지양되고 있다. 농업과 수산업 분야 보조금까지 대폭 축소될 때, 비로소 모든 산업에서 자유무역과 완전경쟁의 문이 열리겠지만 이는 사회적 합의가 따라야 하는 만큼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보조금의 종류
WTO 협정은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의 형태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이는 ① 금지보조금(Prohibited Subsidies), ② 조치가능보조금(Actionable Subsidies), ③ 허용보조금(Non-actionable Subsidies)으로 흔히 신호등의 빨간불, 노란불과 초록불에 비유되곤 한다.
① 금지보조금
부속서I(Annex I)에서 정의하고 있다. 무역에서의 왜곡 효과가 가장 큰 보조금을 말하는데, 수출 목표를 달성하도록 장려하거나 수입품 사용을 지양하고 국내 상품의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기업이나 산업의 수출 실적에 따라 보상처럼 지급하는 직접 보조금이나, 수출과 관련된 세금의 완전한 면제 및 일부 감면 등이 있다. 이러한 형태의 보조금이 지급된 것을 확인하면 수입 국가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상계조치를 취할 수 있다.
② 조치가능보조금
보조금 지급으로 특정 국가의 산업에 피해나 부정적 효과가 발생하거나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 대응 차원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보조금을 말한다. 상기 금지보조금과 달리 보조금의 종류 자체에 대한 별도 정의 규정은 마련돼 있지 않지만, 부정적 효과에 대해선 제5조(부정적 효과)에서 나열하고 있다. 쉽게 말해 무역 상대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확인되었을 때, 그 내용은 차치하고 그로 인해 국내 산업이나 기업에 피해가 발생하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모든 보조금을 일컫는다.
③ 허용보조금
한마디로 선의의 목적을 지닌 보조금을 말한다. 예를 들면 산업 또는 기업과 관계된 교육 및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금전적 보조나 유치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보조금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정부의 연구개발(R&D) 보조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무한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상계관세의 대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협의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보조금의 정의를 허용 단계로 내리고 인정받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것이기 때문일까, 허용보조금은 1999년 12월 31일 종료되고 연장되지 않아 현재는 지급할 수 없는 형태의 보조금이다. 결론적으로, WTO 보조금-상계조치 협정에서 다루고 있는 보조금의 형태는 금지보조금과 조치가능보조금 두 가지만 남아 있는 상태다.
1 WTO 분쟁해결제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지 4월호 ‘무역지식인’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