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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VO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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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사 속 그날

만남은 적었으나 오랜 세월 쌓아온 관계

근대 이전 동남아시아 교섭사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는 현대에 이르러 공식 수교를 맺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역사학적으로 봤을 때 문화 접촉 수준에서 머물렀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가 천년 이상 관계를 쌓아온 우리의 이웃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현경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기록에서 찾아보는 동남아시아의 흔적

가장 이른 기록으로는 백제와 일본 사이의 교류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일본의 <일본서기(日本書紀)> 권19 ‘흠명(欽明) 4년 秋9月(543년경)’을 보면, 백제가 일본에 푸난에서 생산한 물품과 노예 2명을 바쳤다고 한다. 푸난은 현 캄보디아 남부와 베트남 남부 지역에 걸친 해양 왕국으로, 인도와 중국의 중계무역을 하던 나라다. 이 외에도 <일본서기> 곳곳에서 백제를 통해 동남아시아의 물품과 사람들이 일본에 건너간 기록이 남아 있다. 이로써 백제가 6세기경 동남아시아와 남중국해를 오가며 교류를 했던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고려사(高麗史)>의 공양왕대 기록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시암 왕국(현 태국)이 토산물을 바치고 서신을 고려에 보내왔다는 것이다. 당시 태국의 아유타야 왕조는 해상무역을 활발하게 진행하던 왕국으로, 일본과도 무역을 하는 등 한반도에서 무역을 하기 위해 고려의 왕을 찾아왔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당시 고려는 쇠퇴하는 왕조였으며 새롭게 무역을 진행할 만한 여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시암 왕국의 사신이 방문했지만 교류에는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동남아시아의 자취가 보이는데, 먼저 이전 고려를 찾아온 시암의 사신들은 조선이 다스리는 한반도에도 찾아왔다. 특히 태조 이성계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문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태조대 기록에는 시암의 사절단 내방에 대한 답례로 조선 사절단을 함께 시암으로 보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일본에서 도적의 습격을 받아 시암 조정으로 보낼 화물을 소실하는 바람에 사절단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야 했으며 이로 인해 시암과의 교류는 좌절되었다.
태종대에는 자바국 사람들의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1405년 조선에 바칠 토산물을 싣고 출발해 군산도 가까이에 다다랐다가 일본 해적의 공격을 받았으며, 그들이 타고 온 큰 배를 작은 배로 바꾸어 돌아갔다고 한다.
조선 중기 문인 이수광의 <지봉집(芝峰集)>에는 17세기 초 진주 사람 조완벽(趙完壁)이 베트남을 다녀온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완벽은 일본 상인이 그를 베트남으로 데려갔다 온 이야기를 전했는데, 베트남의 복식, 교육, 기후, 농업, 가축 등 당시 부분적으로나마 베트남의 생활상을 담은 최초의 기록이다.

백제를 통해 동남아시아의 물품과 사람들이 일본에 건너간 기록이 남아 있는 <일본서기(日本書紀)>   출처: 위키피디아


문화 접촉을 넘어 상생번영의 공동체로

위의 기록 외에도 동남아시아의 여러 왕조와 만난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교류했는지는 남아 있지 않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현대 이전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관계는 문화 접촉에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끊임없이 탐구해왔으나 직접적 관계는 맺지 못한 것이다. 물리적 거리라는 한계도 있었으나 비단 거리만의 문제는 아닐 터다. 당시 국제적 상황 그리고 전혀 다른 기후와 문화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좀 더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 지역의 문화 교류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길거리에는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음식점이 즐비하다. 현재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K팝 등 한류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문화뿐이 아니다. 국가 차원의 노력과 함께 사회, 경제 등 전 분야에서 교류가 확장되고 있다. 근대 이전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한정적인 교섭사를 생각하면 수교 이후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의 관계는 가히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미래에는 동남아시아와의 교류가 어떤 형태로 발전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이웃을 넘어 절친한 친구와 같은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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