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 보디가드
마지노선(Maginot Line)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을 일컫는 말로 마지막 한계선을 의미한다.
즉 넘지 말아야 할 선이다. 자유무역에도 이 마지노선이 존재하는데 국내 산업에 대한 심각한 피해 또는 그 징조다.
세이프가드는 바로 이 선을 넘지 않도록 지켜주는 방패다.
자료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자유무역의 빛 그리고 그림자
자유무역의 깃발 아래 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다자(WTO) 또는 양자(FTA) 협상을 통해 무역자유화가 되면 상대국의 시장이 열려 수출이 증대되는 반면 우리나라 역시 시장을 개방하게 되면서 수입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수출이 늘어나면 국가의 부가 축적되는 동시에 수입이 늘면서 그 부는 유출된다. 이런 가운데 무역수지가 흑자와 적자 사이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게 된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특정 국내 산업에 대한 피해가 불가피한 경우도 발생하다. 당장은 수익 감소가 발생할 수 있고, 이후 사업 변경이나 구조조정 등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최후를 맞게 될 수도 있다. 일장일단(一長一短). 자유무역의 빛과 그림자다.
방패 없이 칼을 휘두를 수는 없다
미국 행정부는 의회로부터 1945년 GATT 가입을 승인받았다. 보호무역과 불공정경쟁이 난무하던 국제경제의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자유무역시대로의 통일을 이뤄낼 보검을 부여받은 것인데, 미국 의회는 행정부로 하여금 자유무역으로 인한 피해를 대비할 방패 또한 스스로 제련하도록 주문했다.1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세이프가드다.
이 세이프가드는 자유무역 과정에서 특정한 상품에 대한 수입이 크게 증가하면서 국내 해당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거나 또는 그러한 우려가 생겼을 때 활용된다. 해당 상품에 대한 의도적 관세 인상 또는 비관세장벽 제고 등 수입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그 국내 산업이 일시적이나마 수입품과 경쟁해야 하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지고 결국 생존 자구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수호하고 지원하는 일종의 무역구제조치다. 심각한 피해를 예측 또는 발견한 뒤에 취해지는 다급한 대처이기 때문에 긴급수입제한조치라고도 부른다.
세이프가드는 산업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종의 안전밸브다. 국가 간 시장 개방 협상에서 상대적으로 약세에 있는 국내 산업의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세이프가드의 존재 이유는 확실하다.
법·제도로서의 세이프가드
자유무역을 위한 GATT·WTO협정은 기본적으로 인위적인 수출입 제한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동 협정문에 세이프가드 협정과 관련 조항이 포함되어 수입을 막는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한 것은 일종의 이율배반이다. 그렇지만 GATT·WTO협정은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만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예외조항으로서 세이프가드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세이프가드는 같은 무역구제조치의 대상인 덤핑이나 보조금과는 달리 교역 상대국이 공정한 관행으로 상품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대응 조치이기 때문에 발동 요건이 훨씬 까다롭다. 따라서 정부가 세이프가드 조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① 먼저 특정 상품의 수입량이 증가해야 한다. ② 그리고 동종이나 경쟁적 관계에 있는 상품을 생산하는 국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serious injury) 또는 그러한 위협(threat of serious injury)이 포착되어야만 한다. 여기서 심각한 피해란 다른 무역구제조치인 반덤핑이나 상계관세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 피해(material injury)나 그 우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위험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이프가드와 달리 덤핑이나 보조금은 그 자체가 불공정행위이기 때문에 심각한 피해는커녕 실질적 피해 수준만 발생해도 대응이 가능한 것이다. 세이프가드 발동을 위한 심각한 피해는 국내시장에서의 해당 상품 점유율, 판매, 생산(성), 가동률, 이윤 및 손실, 고용 등 8개나 되는 지표를 바탕으로 엄격하게 평가하는 것이 보통이다.2 ③ 마지막 발동 요건은 ①과 ② 사이 인과관계(causal link)의 존재다. 다시 정리하면 특정 상품에 대한 수입이 증가했고, 여러 가지 정황상 이것이 원인으로 국내 동종 또는 경쟁 산업에 심각한 수준의 피해가 발생했음이 발견되면 정부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의 세이프가드 조치는 (잠정적)관세 인상 또는 쿼터 방식의 수입량 제한 등을 통해 이뤄질 수 있으며, 반덤핑이나 상계관세와 달리 문제를 야기한 국가에만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상품을 수출하는 모든 국가에 취해진다. 다만 수출국들이 입는 손해에 대해서는 협의를 통해 적절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두어야 한다. 세이프가드 조치 기간 역시 국내 산업이 자립하는 데 필요한 기간에만 적용할 수 있는데, 최대 4년까지 발동이 가능하며 연장할 경우 8년까지 세이프가드 조치를 유지할 수 있다.3
공중증(恐中症) 생길 뻔했던 한·중 마늘분쟁4
공한증(恐韓症)은 한국 축구에 대해 중국인이 안고 있는 일종의 두려움을 비유한 표현이다. 세이프가드와 연계해선 반대로 우리가 중국의 몽니에 공중증을 앓은 기억이 있는데, 이는 1990년대 중·후반의 일로 WTO 설립 직후에 벌어진 중국과의 마늘분쟁이 여기에 해당한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당시 갑작스러운 중국산 냉동 마늘의 수입 급증으로 수입 마늘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크게 증가한 반면, 국내 마늘 농가의 수입은 급락했다. 수치상으로나 체감상으로나 이는 중국산 마늘의 급격한 수입으로 발생한 이른바 국내 동종 산업의 심각한 피해가 분명했고 둘 사이의 인과관계 또한 자명했다.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와 협의를 거쳤으나 마땅한 합의책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고 이에 따라 2000년 6월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했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중국은 우리의 정당한 세이프가드 조치를 인정하지 않고 이에 대한 일방적인 보복 조치로 우리 무선전화와 폴리에틸렌에 대해 금수조치로 맞대응했는데, 당시 WTO 비회원국으로서 취할 수 있는 무책임한 보복 행위라는 평판이다. 이후 우리는 중국과 추가 협의를 통해 상호 양보를 도출하긴 했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우리의 방패(세이프가드)와 중국의 창(무역 보복)이 충돌해 어느 쪽도 웃을 수 없었던 그야말로 모순(矛盾)된 상황에 직면했던 기억이다.
1 이신규, 『국제통상론』, 두남, pp.267~268.
2 Ibid., p.271.
3 Ibid., pp.274~276.
4 한-중 마늘분쟁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박정준, “중국은 보호무역 시대 미국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함께하는 FTA」(2018년 4월호)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