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보호무역주의에 빠져들고 미·중 무역 전쟁이 지속되면서 통상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미·중 분쟁이 통상마찰을 넘어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전면전으로 확산되면서
향후 세계 정치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악화된 대외 환경을 극복하고 한국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신남방·신북방정책 등을 통한
경제영토 확장, 종합적인 통상전략 수립,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에 대한 효과적 대응 등이 필요하다.
글로벌 통상전쟁의 격화와 흔들리는 세계 경제
BC 431~BC 404년에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전쟁이다. 두 도시국가는 힘을 합쳐 초강대국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지중해를 양분했으나, 아테네의 세력 확장에 스파르타가 위협을 느끼면서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한 아테네의 장군이자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국제적 역학 관계의 변동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흥 강국인 아테네의 팽창에 두려움을 느낀 기존 패권 국가인 스파르타가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여기서 ‘투키디데스의 함정’1이라는 말이 나왔다. 아테네는 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에 대해서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분석이 많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 미국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소련 붕괴 후 초강대국으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 제조업 경쟁력이 저하되면서 경제 동력이 떨어지며 패권국으로서의 위상이 약화됐다. 그사이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과 10억 인구의 내수 시장을 발판 삼아 G2로 우뚝 섰다. 미국과의 무역에서 연 4,000억 달러 안팎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5G 이동통신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미국을 위협한다.
이에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7월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며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미국과 중국은 고율 관세 부과에 보복 관세로 대응하는 치고받기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 위안화 환율이 올해 달러당 7위안을 넘자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비화한 것이다. 다행히 지난 10월 고위급 무역 협상을 통해 미국은 중국산 수입산에 대한 추가 관세 인상을 유보하고 중국은 약 400억~500억 달러의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키로 하는 내용의 첫 합의를 했다. 하지만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를 비롯해 지식재산권 보호, 강제 기술이전 금지 등 핵심 쟁점에 대한 협상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미국은 유럽에 대해서도 무역 전쟁에 나섰다. 지난 10월 유럽연합(EU)에서 수입하는 항공기를 비롯해 농산물, 공산품에 징벌적 고율 관세를 부과키로 한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EU가 유럽 항공사인 에어버스에 불법보조금을 지급했다며 미국의 보복 관세 부과를 승인하자 바로 조치에 나섰다. EU도 보잉 항공사에 대한 미국의 보조금 지급에 대한 WTO제소 결과가 나오면 맞대응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대서양 무역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글로벌 통상전쟁의 격화는 세계를 불황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무역전쟁 등으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인 2%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 교역량도 지난 10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중국은 올해 1분기에 6.4%, 2분기에는 27년 내 최저치인 6.2%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중국 경제가 6% 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무역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3분기 경제성장률이 2.1%를 기록하며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지만 글로벌 공급망의 충격으로 기업 투자는 2분기 연속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통상환경 위기 분명,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미·중 무역전쟁 등 보호무역주의의 후폭풍을 더욱 거세게 맞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무디스 국제 신용평가사는 최근 내년 한국 성장률을 2.1%로 예상하면서 “한국은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이고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미·중 무역전쟁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엄중한 대외 무역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수 시장이 작고 자원이 적은 한국에게 통상 교섭을 통한 시장 확대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신남방정책의 추진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영국, 이스라엘과 FTA를 체결하고 러시아와 서비스·투자 FTA 협상을 개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격화되는 무역 전쟁 속에서 정부가 추진해야 할 과제는 아직도 많다.
미·중 분쟁은 단순히 무역수지 개선을 위한 무역전쟁이 아니라 글로벌 패권 전쟁이기에 에너지, 과학·기술, 환경, 안보 등의 분야에서 다층적으로 장기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중국 화웨이의 5G 장비에 대해 전 세계 동맹국에 불매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신(新)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이니셔티브로 미국을 포위하고 있다. 또한 미·중 무역전쟁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글로벌 가치사슬(GVC)을 재편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이 기술력 있는 제조업 육성을 위해 산업고도화 전략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미국은 이를 저지하려는 가운데 새로운 글로벌 산업 지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GVC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한편 미·중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시장 다변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 개최, RCEP 협정문 타결, 그리고 신남방·신북방·중남미와의 협력 다각화 등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 대응할 초석을 다진 만큼, 앞으로 우리 통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1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세력이 지배세력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위협을 해올 때 발생하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혼란 상황(과도기적 마찰), 극심한 구조적 긴장이 발생하는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