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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VO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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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주의 시대의 통상전략과 우리나라의 과제

바야흐로 보호무역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로 보호무역주의 파고가 거세게 밀려오고 있다.
원칙에 입각해 대응하되, 안정적 통상환경의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다.
그렇다면 보호무역주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원칙에 입각해서 통상정책을 마련해야 할까.

  왕윤종 경희대학교 국제대학 객원교수



통상분쟁의 확산과 원칙에 입각한 대응의 필요성

미·중 무역분쟁의 전선이 관세전쟁에서 기술전쟁, 환율전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중국의 성장 둔화가 가시화되고, 202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6% 미만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특히 한·중 간 분업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 우리 기업의 중간재 수출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한국산 화장품도 가성비가 뛰어난 중국 로컬 기업의 등장으로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또한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 통제에 나서면서 우리나라를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우리나라도 신속하고 적절하게 맞대응에 나섰다. 아직 일본이 3개 품목 이외에 본격적으로 ‘캐치 올(Catch-all)’ 규제에 나서고 있지 않지만 사태를 낙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조건부로 연기되며 전략물자 수출통제와 관련하여서 한·일 양국 간 국장급 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하며 얽히고 꼬인 한·일 관계가 풀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물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양상은 1929년 대공황 시대에 발생한 관세전쟁과 경쟁적 평가절하와 같은 파괴적이고 약탈적인 보호무역주의 전쟁과는 다르다. 그러나 WTO의 역할과 기능은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질서를 지키는 데 힘에 부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국제통상의 원칙이란 무엇일까?

원칙은 누구나 인정하는 올바른 행동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다들 반칙을 할 때 나 홀로 원칙을 지키는 국가는 조금 모자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기에 결국 인정받을 수 있다. 원칙에 입각한 통상정책은 바로 국제규범으로 자리 잡은 통상법을 제대로 지키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합리화를 위한 억지 논리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줄 수 있는 반듯한 논리로 대응하는 것이다.
원칙을 지켜나가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 가지 더 있다. 더욱 안정적인 통상환경의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상 문제를 통상 문제로만 국한하는 것이 아닌, 좀 더 거시적인 외교적·안보적 관점에서 통상 파트너와 우호적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통상환경의 불확실성 줄여온 우리나라의 성과

안정적인 통상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줄이는 일이다. 지금 우리 기업이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미·중 무역분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가늠할 수 없는 데다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 통제로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원활하지 못함에 따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우리 주력 수출품의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다. 내년에는 미국과 중국이 올해보다 성장이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리 기업의 수출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하기는 어렵다. 불확실성 속에서 잘 버텨 나가는 것이 실력이다. 불확실성을 줄여줌으로써 예측 가능한 통상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불철주야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동안 성과도 많이 만들었다.
우선 예측하기 힘든 행보를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초기 한·미 FTA를 끔찍한 협정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한·미 FTA가 미국의 일자리가 아니라 한국의 일자리를 25만 개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마치 한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는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최근 11월 12일 ‘뉴욕경제클럽’에서 한 연설에서 한·미 FTA는 재협상을 통해 끔찍한 협정이 환상적인 협정이 되었다고 자화자찬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요구하는 자동차 안전기준에 대해 일정한 양보를 했고(미국 안전기준을 통과하면 한국 안전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인정), 2021년 철폐 예정이던 픽업트럭의 관세를 2040년까지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한·미 FTA 재협상 이후 전개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개정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우리가 협상을 잘했는지 알 수 있다. 우선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이름도 미국·멕시코·캐나다(USMCA) 협정으로 바뀌었다. 별일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중립적이고 형평성을 강조하는 이름에서 미국이 가장 먼저 나오는 협정은 벌써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준 것이다. 내용도 크게 바뀌었다. 자동차 분야만 보더라도 역내 부품 비율의 상향 조정, 부품 생산 근로자의 최저임금 적용 등 전례 없는 규정이 포함되었다. 이에 비하면 한·미 FTA의 개정 내용은 별로 대단한 내용이 없다. 원래 개정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원안이 그대로 유지된 한·미 FTA 협정은 미국에 큰 양보 없이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개정을 자신의 업적으로 여러 차례 치부하고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많다고 판단된다. 우선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거해 수입 자동차에 25%의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산 자동차가 포함될 것인지 아직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한·미 FTA 개정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관장하는 한·일 간 분쟁에서 우리 정부는 연속해서 쾌거를 거두었다. 지난 4월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에 대한 판결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상소기구는 한국의 수입 금지가 정당하다는 입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어 9월 한·일 공기압 밸브 반덤핑 분쟁 상소심에서도 실체적 쟁점 9개 중 8개 분야에서 한국이 승소했다. 이는 8:1로 한국의 승소가 확정된 것으로 우리 정부는 상소기구의 판정을 환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금까지 WTO에서 한국과 일본이 벌인 분쟁은 모두 6건으로, 세부 사안에서는 승패가 갈릴 수 있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한국이 모두 승소한 셈이다. WTO 분쟁 해결 절차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국제 통상법적인 판결에서 우리 정부가 합리적 논리로 최대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향후 미·중 무역분쟁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 방안

그렇다면 앞으로 미·중 무역분쟁의 진행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할 것인가? 현재 미·중 양국은 1단계 합의라는 스몰 딜(Small Deal)로 모든 안건을 일괄 타결하는 방식 대신 비교적 쉬운 문제부터 해결하면서 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하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이 11월 15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무역협정의 타결로 미·중 양국이 상대방 국가로부터 수입을 늘리는 관리무역(Managed Trade)에 합의하게 되면 오히려 수입 전환 효과로 인해 EU, 일본, 한국 등 제3국의 대중 수출이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중 무역협상의 타결은 확실히 불확실성을 해소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무역협상이 어떻게 타결되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중국이 전자제품, 기계, 자동차 등 10대 수입 품목에서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늘려 대미 무역흑자를 해소하려 한다면 극단적인 경우 EU 71조 원, 일본 63조 원, 한국 53조 원의 대중 수출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무역체제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불분명하다.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을 압박해 특정국의 상품을 수입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민간 부문의 수입까지 통제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현재 1단계 합의가 어려운 이유도 중국이 내민 500억 달러 농산물 수입의 현실적 타당성과 관련이 있다. 탄핵 정국에서 반전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지지를 보낸 애국 농민에게 중국이 제안한 500억 달러의 농산물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관세전쟁이 시작되기 전 해인 2017년 미국이 중국에 수출한 농산물 총액은 195억 달러였으며, 2018년에는 92억 달러로 감소했다. 정말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을 500억 달러어치나 구매해줄지도 아직 불분명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또한 홍콩 사태로 미·중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미 상원에서 홍콩 인권법이 통과되면서 중국은 이를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이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홍콩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미 의회는 인권 문제에 대해 중국에 부정적이다. 미국 농산물 수출의 숨통이 트이길 기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1단계 딜에 걸림돌이 생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 의회의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의 결정을 존중하며 홍콩 인권법에 서명했다. 홍콩 문제로 1단계 딜 타결에 어려움이 가중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중 양국은 조만간 협상 타결을 시도할 것이다. 1단계 딜에 합의할 경우 2단계 딜은 상당히 많은 쟁점이 남아 있는 만큼 장기전이 될 수 있다.

한·중 관계는 미·중 관계의 종속변수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미·중 관계가 순탄하면 한·중 관계도 대체로 우호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총론적인 얘기다. 현재 미·중 관계는 전략적 경쟁 관계라는 말로 압축해서 정리되고 있지만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행동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중 간 갈등이 고조되기도 하고 때로는 진정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미국과 중국 모두 중요하다. 어느 한 편만 들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우선은 외교적·안보적으로 미국과 동맹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를 잠정 유예한 조치는 이러한 고민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중 관계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예전 같지만은 않다. 그러나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2018년 아베의 베이징 방문 이후 중·일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견제에도 아베 총리는 중국과 일대일로 협력 사업을 추진 중이다. 물론 국가 차원이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 일본 개발 금융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은 2020년 봄 시진핑 주석의 일본 방문으로 화답하고 있다. 2020년 동경 하계올림픽,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연이어 아시아에서 열리면서 일본과 중국은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시진핑 주석의 한국 방문을 통해 한·중 관계에 새로운 물꼬가 트이고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즐기는 중국인이 다시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일본 수출규제 부당,이제는 양국이 함께 해법 찾아야

또 다른 이슈로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 통제로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 한·일 관계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발단은 우리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자에 대한 피해 보상 판결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독도, 위안부 문제로 한·일 간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일본 내 여론은 한국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 통제를 지지하고 있다.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아베 총리는 우리 정부가 강제 징용자에 대한 피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한국을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배제한 조치를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것은 적절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양자 간 협의를 거쳐 1심인 패널 설치, 그리고 2심인 상소심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 통제 조치는 국제법적으로 쟁점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적절치 못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중국, 대만, 아세안과 달리 전략물자 통제에 관한 4대 국제협약에 모두 가입한 국가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이 확실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에 대해 수출 통제를 실시하고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은 지나친 조치였다. 우리 정부는 장관이 수차례 브리핑을 통해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논리적으로 지적했다.
물론 여기서 우리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한·일 간 체결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폐기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폐기가 잠정 유예 되면서,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방지했다. 이제 남은 일은 우리 대법원이 압류한 일본 기업의 자산을 현금화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한·일 양국이 창조적 해법을 찾는 일이다. 양국 대법원 판결이 서로 충돌되는 상황에서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로 가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최선이 아니다. 양국 모두 조금만 마음을 열면 얼마든지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일 관계가 다시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전략물자의 수출 통제를 둘러싼 잡음이 깔끔히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일간 전략물자의 수출 통제에 관한 협의체를 한·미·일 3국 간 협의체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한·미·일 3국 간 협의체를 구성하여 연 2회 정도 실무협상을 통해 전략물자의 수출 통제에 물 샐 틈이 없도록 만든다면 한·일 양국은 모두 백색국가 리스트에 복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양국 기업 간 협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그야말로 안정적인 통상환경이 구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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