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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VO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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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지식인

특별대우란 없다 : 무역 앞에 모두가 평등할 뿐!

커피 전쟁으로 살펴본 ‘최혜국대우’ 원칙

관세무역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이하 GATT)·WTO는 전 세계 무역의 98%를 관할하며 총 164개 회원국이 하나의 통일된 국제규범하에 안심하고 자유롭게 무역하게 한다. 그 규범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모든 회원국을 최선의 조건으로 평등하게 대하는 것.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이 원칙을 모두가 사랑하는 음료와 관련한 실화로 살펴본다. 세계인이 하루 25억 잔을 소비한다는 커피 이야기다.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역 자유화와 무역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GATT라는 최초의 국제무역 협정이 1948년 발효됐고, 이것이 반세기에 걸친 협상을 통해 양적·질적으로 발전됐다는 사실을 지난 호를 통해 살펴봤다. 이 과정에서 기존 GATT는 WTO 협정으로 진화했으며, 궁극적으로 이 국제무역 관련 입법·사법·행정을 위해 1995년에 설립한 국제기구가 바로 WTO다.

 

 

모두에게 즉시·무조건 최선의 대우를

1995년, WTO 협정은 1948년에 발효된 GATT를 그대로 이어받고 새로운 규범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쉽게 말해 GATT는 WTO 협정의 부분집합인 셈이다. 바로 이 GATT·WTO의 공통된 기본 원칙은 무역에서 모두를 똑같이 평등하게 대하는 비차별주의다. 그리고 그 첫째가 바로 GATT 제1부 제1조 최혜국(Most-Favoured-Nation, 이하 MFN) 대우다.1)
이 MFN 조항에 근거해 가상의 예를 들면, 우리나라가 미국산 승용차의 수입 관세를 10%에서 8%로 인하할 경우 똑같은 인하 세율을 독일 및 일본산 수입 승용차에도 적용해야 한다. 그것도 즉시(immediately), 그리고 무조건(unconditionally)이다. 우리 국민이 특정 국가의 자동차를 선호한다고 해서 소비자가격을 인하하기 위해 해당 국가에만 더 낮은 관세율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관세뿐 아니라 수입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편의나 특권도 마찬가지다. 관련 예로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수입 승용차를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 해당 국가의 일부 통관 절차를 면제해주면, 다른 국가의 승용차 수입 과정에서도 똑같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최혜국대우 원칙은 동종의 상품(like product)에 한하는데, 다시 말해 미국산 승용차와 독일산 트럭은 차별해도 괜찮다.

 

 

사진제공 연합뉴스

 

 

동종 상품? 그때그때 달라요

따라서 특정 국가의 상품과 다른 국가의 상품 간 차별 없이, 즉시 그리고 무조건 최혜국대우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상품 간 동종 상품인지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GATT·WTO 협정엔 동종 상품의 명확한 개념이나 기준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상품의 물리적 특성과 품질, 최종용도, 구성성분, 제조방법, 소비자의 기호 및 습관, 상품 간 경쟁 관계, 관세품목분류기준 등에 따라 그때그때 사례별로 판정하는 게 보통이다.2)

 

 

사진제공 연합뉴스

 

 

커피는 커피다3)

MFN 조항 위반 여부가 실제 재판까지 간 사례가 있다. 1980년에 시작해 이듬해에 끝난 브라질(수출국)-스페인(수입국) 커피 분쟁이다. 스페인은 원래 원두를 수입할 때 종류와 관계없이 같은 세율을 적용했는데, 1979년 마일드 원두에는 무관세, 아라비카 원두에는 7% 관세로 변경했다. 대(對)스페인 원두 수출에서 마일드가 훨씬 유리해지자 격노한 건 수출량 대부분이 아라비카였던 브라질이었다. 스페인이 마일드를 주로 수출하는 과거 스페인령 국가에 특혜를 주려고 옛 포르투갈령인 자신들을 박해한다는 신세 한탄도 더해졌다. 결국 관건은 마일드-아라비카의 동종 상품 여부였다. 스페인의 주장은 두 원두가 향과 맛에서 차이가 있고 소비층도 다르기 때문에 동종 상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만약 두 원두가 다르다고 최종 판정이 나면 스페인의 관세율 차별은 합법이 된다.
그러나 패널(판정단)은 ① 원두 향과 맛의 차이는 생산지, 제작 과정, 유전 요소에 따른 커피의 당연한 성질로 관세율 차별의 충분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② 스페인에서 원두는 결국 여러 종류를 배합(블렌딩)해 거래하므로 애초에 마일드든 아라비카든 원두를 구분해서 수입하는 의미가 퇴색되고, ③ 어쨌든 ‘커피=음료’라는 단일 목적을 갖는다고도 했다. ④ 스페인 외에 그 어떤 나라도 원두에 따라 다른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브라질의 이의 제기에 힘을 보탰다.
결국 커피는 커피인 것이다. 브라질·스페인의 빅매치는 GATT·WTO의 자유·공정무역 정신에 따라 이처럼 삼바의 완승으로 종결됐고, 스페인은 MFN 조항에 따라 원두 간 관세율 차별을 철회해야 했다. 무역은 평등할 때 가장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자유무역 지향 GATT·WTO의 비차별주의 덕분이다.

 

 

 

 


1) 최혜국대우 조항 원문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수입 또는 수출에 대하여 (중략) 부과되는 관세 및 모든 종류의 과징금에 관하여, (중략) 부과 방법에 관하여, (중략) 모든 규칙 및 절차에 관하여, (중략) 제약 당사자가 타국을 원산지로 하거나 행선지로 하는 상품에 대하여 부여하는 제반 편의, 호의, 특권 또는 면제는 다른 모든 체약 당사자의 (중략) 동종 상품에 대하여 즉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부여되어야 한다.
2) 최승환, <국제경제법(제4판)>, 법영사, p.181.
3) 정찬모, <WTO 상품무역법>, 박영사, p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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