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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VO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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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조명

디지털 경제의 도래와 디지털 무역 규범의 역할

WTO 차원에서 전자상거래 관련 국제규범을 논의하는 무역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모양새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WTO 비공식 통상장관회의에 참석해 디지털 무역 확산 등에 따른 WTO 차원의 규범 논의와 관련 협상 출범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오는 상반기에 있을 WTO 전자상거래 협상은 온라인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려는 각국의 디지털 무역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논의하는 장이 될 것이다.

   곽동철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 연구원


 

 

디지털 기술에 올라타 세계시장을 보라

디지털 기술이 미치는 영향은 과학기술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제품의 기획·생산·마케팅·유통·소비·사후 관리 등 경제 전반을 혁신할 뿐 아니라 무역 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기술은 국가 간 교역에 본격적으로 활용되며 무역 비용을 줄이고, 데이터 처리 기술력이 뛰어난 국가가 비교우위에 설 수 있도록 이끈다. 교역 대상 또한 상품에서 서비스나 데이터로 변하는, 전에 없던 무역 형태가 등장했다. 이 덕에 기존 국제무역 체제에서 소외되거나 상대적으로 약체이던 중소기업이나 개도국도 성공적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커졌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상품·서비스·데이터 교역 활동 전반을 디지털 무역으로 정의한다면, 이미 우리는 디지털 무역의 혜택을 보고 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2015년 기준 전 세계 전자상거래 거래 규모가 25조 달러에 달했으며,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서비스의 전 세계 무역 규모는 2016년 기준 최대 2.5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디지털 기술의 혁신이 지속해서 이루어진다면 디지털 무역 규모는 더욱 증가할 것이고, 디지털 무역을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삼으려는 각국의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것이다.

 

 

 

 

사이버 세상에 장벽을 세운다고?

디지털 무역이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등장했지만, 최근 보호주의적 디지털 무역정책이 잇달아 시행되면서 온라인상에 무역장벽이 높아진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중국, 러시아, 인도, 베트남 등이 채택한 디지털 무역정책과 데이터 보호정책을 대표 사례로 지적해왔다.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가 발표한 보고서는 각국의 디지털 무역정책이 얼마나 폐쇄적인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전 세계 64개국의 디지털 무역 제한 정책을 ▲재정 조치 및 시장 접근, ▲사업 제한, ▲데이터 제한, ▲무역 제한 등으로 구분해 지수화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중국의 디지털 무역정책이 가장 폐쇄적(0.70)이고 러시아(0.46), 인도(0.44)가 그 뒤를 따르고 있으며, 뉴질랜드(0.09), 아이슬란드(0.11), 노르웨이(0.13) 등이 디지털 무역에 개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디지털 무역 제한지수(0.31)는 전체 평균보다 높아 디지털 무역 환경이 다소 폐쇄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디지털 무역을 저해하는 정책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조치가 바로 ‘데이터 현지화 조치’다. 데이터의 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온라인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데이터 현지화 조치는 가장 빈번히 사용하는 디지털 무역정책으로 떠올랐다. 문제는 이 정책이 데이터 활용을 가로막고 혁신적인 디지털 서비스를 제한한다는 데 있다. 특히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이 필수적인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의 경우, 데이터 현지화 조치는 외국 서비스 공급자의 시장 진입을 막는 무역 장벽으로 작용한다. 미국은 FTA를 포함한 각종 무역 협상에서 데이터 현지화 조치를 금지하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앞면이면 나의 승(勝), 뒷면이면 너의 패(敗)

이른바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과 중국의 ‘만리방화벽’ 등이 디지털 무역의 장벽으로 작용한다며 우려를 표해왔다. 현재의 WTO 규범으로는 이 장벽을 다스리기 힘들다고 판단한 미국 정부는 FTA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상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 타결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미국 정부의 이런 의도가 집중적으로 반영됐다.
국경 간 데이터 이전 조항을 최초로 포함한 한·미 FTA 및 데이터 현지화 조치 금지를 의무화한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비교해도 USMCA의 규범은 디지털 무역 자유화를 한층 가속했다. 먼저, 전자상거래가 아니라 ‘디지털 무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무역 협정에서 디지털 재화 및 디지털 서비스뿐 아니라 데이터 관련 규범을 더욱 적극적으로 다룰 것을 의미한다. 둘째, CPTPP에서 데이터 현지화 조치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던 금융 데이터를 국경 간 이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를 활용한 혁신적인 핀테크(FinTech) 기업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플랫폼의 정보 매개자 면책 규정은 무역 협정 최초로 도입했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더욱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미 FTA나 CPTPP에 없던 정부 데이터 관련 조항이 최초로 등장했다. 회원국은 공개된 정부 데이터를 기계가 판독 가능한 형식으로 제공해야 하고, 기업들이 정부 데이터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새로운 혁신의 원천으로서 정부 데이터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향후 WTO 전자상거래 협상에서도 미국은 USMCA 수준의 자유화 규범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미국이 만들어놓은 규칙 안에서 경기할 것인가, 자체 규칙을 세워갈 것인가? ICT 하드웨어는 강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취약한 한국에 WTO 전자상거래 협상은 커다란 도전이자 강점을 부각할 소중한 기회다.

 

 

 

 

디지털 시대, 쇄국과 개화의 갈림길에서

통상 측면에서는 디지털 무역 규범 이외에도 ICT 기술 표준에 주목해야 한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사이버 보안, 암호화, 클라우드 컴퓨팅 등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표준 시장을 선점한 기업이 전체 시장을 장악할 것이며, 국제표준을 기초로 하지 않은 기술 표준 조치는 불필요한 무역 장벽으로 인식될 소지가 많다. 국제표준에 대한 꾸준한 연구로 국제표준에 맞는 국내표준 정책을 폄으로써 전 세계가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디지털 경제에 대비해야 한다. 자칫 국제표준과 동떨어진 우리만의 표준 정책을 사용하면 ‘디지털 갈라파고스’가 될 위험이 있고, 통상 갈등에도 휘말릴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19세기 구한말 조선이 쇄국 정책과 개화 정책 사이에서 고민한 것처럼 현재 우리도 디지털 쇄국 정책과 디지털 개화 정책의 갈림길에 서 있다. 국내 산업과 민감한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맹목적 디지털 쇄국 정책을 편다면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디지털 경제 추세에 뒤처질 위험이 있다. 반면 디지털 개화 정책을 펴면 눈이 번쩍 뜨이는 디지털 서비스를 향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지만, 구글이나 유튜브 같은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의 독점이 심화되어 국가의 데이터 주권이 약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다. WTO 전자상거래 협상에서는 부디 사회적 가치의 핵심과 디지털 기술의 혁신을 균형 있게 고려한 국제규범이 제정되길 바란다. 나아가 우리 기업도 이러한 국제규범을 바탕으로 디지털 무역 분야에서 떠오르는 강자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WTO 전자상거래 협상을 위한 공청회 겸 디지털 통상정책 토론회

노건기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이 WTO 전자상거래 협상을 위한 공청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연합뉴스

디지털 통상, 무엇을 어디까지 협상할 것인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월 16일, ‘WTO 전자상거래 협상을 위한 공청회 겸 디지털 통상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산업부의 ‘디지털 통상정책 추진방향(안)’을 발표하고 올 상반기 WTO에서 이뤄질 전자상거래 규범 협상에 앞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전 산업에 걸쳐 전자상거래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산업과 무역의 변화를 다룰 국제적 통상 규범의 정립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2019년 상반기, WTO 차원의 통상 규범 정립을 위한 협상이 시작할 예정이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가 직접 발표한 ‘디지털 통상정책 추진방향(안)’은 디지털 통상정책의 목표를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 및 중소·중견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GVC) 참여 기회 확대로 정했다. 주요 내용은 ➊ 우리 기업에게 필요한 디지털 통상 규범 정립과 선제적 대응, ➋ 공정한 디지털 경제 질서 마련에 필요한 3대 이니셔티브 제시, ➌ 다자·양자 통상 협력을 통한 우리 기업의 시장 확대 지원, ➍ 디지털 통상 기반 강화 등의 4대 정책방향을 제시 등이며, 요약 내용은 산업통상자원부 홈페이지(www.motie.go.kr)>알림·뉴스>보도자료>보도/해명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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