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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FTA

통상의 세계 돋보기
글로벌 지정학·지경학 변화 속
인도의 부상
국제사회는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뒤로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새로운 인도·태평양 시대의 중심축은 인도다. 세력 전이(Power Transition) 국제정치이론가인 오르갠스키(A. F. Organski) 교수는 1960년대에 이미 중국의 부상을 예견했으며, 미래에는 인도가 중국을 대체할 것이라고 암시한 바 있다. 한·인도 수교 50주년을 맞아 ‘특별 전략적 동반자’인 인도와의 관계를 전략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핵심 파트너 관계로 재정립하고 그에 걸맞은 정책 이니셔티브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  사진 한경DB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해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만나 전략적 동반자 관계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 2022년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패권경쟁에 이어 국제질서 불안정을 가중시킬 또 하나의 뇌관이 되었다.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서방 대(對) 러시아·중국 구도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인도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을 포함한 다수의 서방국가는 인도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외교적 조치에 동참할 것을 독려했다. 하지만 인도는 국방 협력의 오랜 파트너인 러시아(구 소련)에 대한 직접적 비난을 자제하고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등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미국·일본·인도·호주의 쿼드(Quad) 안보협의체 참여, 서방과의 경제·안보 강화 등 독립 이래 가장 친서방 행보를 보이는 인도의 소극적 입장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미국 등 인도의 주요 파트너들은 이 같은 인도의 입장과 외교적 행보를 우려하지만, 오히려 중국 견제와 함께 글로벌 공급망, 첨단기술, 백신 등 많은 영역에서 인도의 가치를 재확인하면서 인도와 더욱 밀착하려고 노력한다.

미국의 전략 구상 내 인도의 입지와 가치 증가

우선 미국의 전략 구상에서 차지하는 인도의 입지와 가치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는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2022년에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free and open Indo-Pacific Strategy), 국가방위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과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에 잘 반영돼 있다. 미국은 인도의 부상과 남아시아 및 인도양 지역에서 인도의 리더십이 쿼드를 이끄는 중요한 힘으로 본다. 따라서, 중국의 공세에 대한 인도의 견제 능력이 향상되도록 주요 국방 파트너십을 강화할 것이라고 명확히 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글로벌 공급망 회복 문제가 미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들의 정책 우선순위로 급부상하고 있어 인도가 이른바 ‘피크 차이나(Peak China)’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은 지난 1월 인도와 우주·국방 분야 협력 강화의 일환으로 반도체, 5세대 이동통신(5G) 등 첨단 및 신흥 기술의 공동 개발과 생산을 위한 ‘첨단기술 분야 파트너십(iCET; initiative on Critical and Emerging Technology·핵심첨단기술구상)’을 출범했다.
글로벌 경제 컨설팅사들은 인도가 10년 내로 일본과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낮은 제조업 비중(15.6%)도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호주 로위연구소(Lowy Institute)가 발표한 ‘2023 아시아 국력 지수(API)’에서 인도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아시아 4위의 국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것이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인도 디아스포라의 영향력이다. 인도 디아스포라가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액은 2020년 831억 달러로 중국의 595억 달러를 넘어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고 한 언론 매체가 보도한 바 있다. 인도 시사주간지 인디아투데이(India Today)도 약 200명 이상의 인도계가 미국과 영국을 포함, 15개국서 정계 지도층에 진출해 있으며 그중 60명 이상이 정부 내각을 구성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도했다. 실례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등을 포함한 인도계 정치인이 세계 주요국의 정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또한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등 인도계 CEO들이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전 세계 정재계에서 맹활약하는 인도계가 미래 자산이 될 것이다.

글로벌 어젠다 주도 노력

인도는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협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어젠다를 주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올해 인도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주도국 역할을 보여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미·중 전략경쟁과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강대국 주도의 국제질서 변화에 종속되기보다는 전략적 자율성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월 인도는 120여 개발도상국을 초청해 일명 ‘글로벌 사우스 정상의 목소리 2023년 회의(Voice of Global South Summit 2023)’를 개최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초강대국 경쟁 속에서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강조했다. 강대국에 이끌려가기보다 국제사회 다수를 차지하는 제3세계 국가와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반영한 국제질서 구축을 주도하는 선도국을 자처한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노스(선진국)와 글로벌 사우스(개발도상국)를 잇는 글로벌 연대의 교량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인도의 야심찬 전략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줄곧 중립적이고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인도에 대한 미국 등 쿼드 국가와 유럽 국가의 대응에서 보듯이 중국 견제에 인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서방 주요국들은 인도가 러시아와 국방 협력을 즉각적으로 축소하게끔 압력을 가하기보다는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 서방 쪽으로 끌어오려는 노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미국은 이번 일을 계기로 인도의 대러 무기 의존도를 줄여 인도·러시아 간 전략적 제휴를 약화시키기 위해 인도와의 국방·방산·기술 협력 강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금의 국제질서 변화를 기회로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도가 넘어야 할 당면 과제가 여전히 많다. 인도가 현재로서는 러시아로부터 원유와 무기 수입을 완전히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당분간 러시아와의 관계 단절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강한 성장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악한 인프라 수준과 낮은 제조업 비중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주요 축을 담당하기에는 아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인도와의 포괄적 전략 협력에 전향적 자세 필요

글로벌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미국, 일본, 호주,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UAE)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은 이미 지난 몇 년 사이 인도와의 전략 협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인도 유력 싱크탱크 옵서버 연구재단(Observer Research Foundation)이 실시한 2021년과 2022년 여론조사를 보면, 글로벌 차원이나 인도·태평양 지역 차원에서도 한국은 인도의 주요 전략적 파트너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정부가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여 인도와의 전략적 비전과 인식을 공유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에 대해 인도 내에서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이참에 인도와 전략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하고 인도에 대해 전향적·미래지향적 자세 변화를 가져야 한다. 지정학적·지경학적 변화, 미·중 패권경쟁, 글로벌 경제 및 산업 질서의 변화 속에서 한국이 지속 가능하게 번영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중추국가가 되기 위해서 인도와의 협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먼저, 남아시아와 인도양에서 주도권을 가지는 인도를 한국의 지역 협력 확대를 위한 거점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 인도는 남아시아를 넘어 인도양, 서아시아, 유럽 등의 주요국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다자협의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어 한국과 다른 지역 국가 간 협력 확대를 위한 교량 역할을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당장의 손익 계산을 떠나 중장기적 관점으로 인도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 등 한국의 핵심 협력 파트너들이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인도와의 협력을 확대·강화하고 있어 앞으로 인도의 중요성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한국은 인도와 전략 협력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첨단기술, 글로벌 공급망 회복, 디지털 경제 등 경제안보 분야의 핵심 전략 파트너로 인도와의 협력을 중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도와 양자·소다자·다자 차원의 중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경제-안보의 유기적 선순환 협력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경제, 기술 등의 분야가 안보화되는 추세에서 보듯이, 국제질서에 대한 전략적 비전과 안보적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으면 국가 간 경제 및 기술 협력 역시 원활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최근 유사 입장국 간 경제·기술 협력을 추진하는 프렌드쇼어링 현상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인도와 외교·전략적 협력 강화를 통해 경제, 첨단 기술, 공급망 등의 분야에서 공동 파트너십을 더욱 발전시키는 시너지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해 12월 20일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을 비롯한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IPEF 참여국 14개국 장관(급)과 함께 ‘인도· 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IPEF) 장관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했다.
한국은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한국형 인도· 태평양 전략을
추진함으로써
인도와의 전략적 비전과
인식을 공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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