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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안보 중시하는
새로운 통상질서
국제통상 환경은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첨단기술을 둘러싼 패권경쟁으로 심화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 및 고착화되고 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후에는 글로벌 공급망의 분절화, 탈세계화 및 국제경제질서의 진영화 등의 방향으로 급변하고 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통상정책은 국가안보와 경제안보 논리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연대를 강조하면서 차별주의적 통상조치 등으로 국제교역과 공급망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며 글로벌 통상환경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부교수  사진 한경DB

2022년 11월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의 의회 내 약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급망 재편과 산업보조금 지원 중심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의 통상정책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보조금 지원, 공급망 재편, 수출통제 다자화 등은 중국의 기술추격과 경제적 부상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이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서 알 수 있듯이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자국 산업에 필요하다면 차별주의적인 통상조치를 도입하고 있다. 이 외에도 중국의 기술추격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특히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신설은 대중국 수출통제 조치의 역외(extraterritorial) 적용 또는 ‘다자화’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주목되고 있다. 다자규범력의 약화도 전망된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가 트럼프 전대통령의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에 규정 위반 판정을 내렸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나섰다. WTO 판정에 대한 미국의 불복행위가 추후 WTO 체제와 다자규범력의 약화를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기존 다자무역체제를 대체하기 위한 지역 차원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시아 지역 차원의 ‘경제안보’를 위한 신통상질서의 구축을 위해 IPEF 논의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미국, 공급망 재편과 산업보조금 지원 중심의 보호무역주의 통상정책 강화

2022년 11월 미국의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이 하원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은 다소 약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온 역점 사업인 탄소중립 및 친환경 정책은 그동안 공화당이 반대해왔다는 점에서 정책 이행을 위한 재정 확보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면, 미 의회 내에서 초당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중국 견제 및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정책들은 오히려 더욱 강한 추진동력을 얻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산업보조금 지원, 공급망 재편, 수출통제 다자화, 통상과 환경 및 통상과 노동·인권 문제의 연계 등은 중국의 기술 탈취 및 지식재산권 침해 등 불공정 무역 행위를 통한 중국의 기술추격과 경제적 부상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수단들이 비단 중국만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자국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차별주의적인 통상조치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산업보조금의 지원이 미국의 국내 제조업의 생산능력 제고를 위해 집중적으로 투입될 수 있도록 ‘국내산 우대요건(LCR; Local Content Requirement)’을 적용해 미국산 제품과 소재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보조금 지급의 요건으로서 규정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예로 바이든 행정부가 2022년 8월 제정 및 시행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1) 이다.
이 외에도 최근 바이든 정부는 중국의 기술추격을 차단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반도체 및 첨단컴퓨팅 품목 및 기술에 대한 강력한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수출통제목록(CCL; Commerce Control List)의 개정을 통해 고성능 컴퓨터 칩과 반도체 제조 장비 관련 품목과 기술을 통제대상으로 확대했고, 고성능 컴퓨팅 및 슈퍼컴퓨터에 대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Foreign Direct Product Rule)2)을 신설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중국의 특정기업(화웨이)을 대상으로 수출통제 조치를 적용했지만, 이번 미국의 수출통제는 중국 전체를 대상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FDPR의 확대 적용을 통해 대중국 수출통제 조치의 역외(extraterritorial) 적용 또는 ‘다자화’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우려된다. 중국 내에서 반도체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 기업 중 일부에 대해서는 1년의 유예기간이 확보돼 단기적인 영향권에서는 벗어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에 한국 동참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1)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 Inflation Reduction Act)
미국 또는 북미 지역 내에서 제조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도록 보조금 지급요건을 한정해 외국산 전기차에 대한 수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2) 해외직접생산품규칙 (FDPR; Foreign Direct Product Rule)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더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 기술 등이 사용됐다면 특정 국가에 반입을 금지하는 제도다. 중국으로 직접 수출되거나 중국 내 위치한 생산시설에서의 사용을 위해 수출되는 대상품목에 수출허가의 취득을 의무화했다.

WTO 체제와 다자규범력의 약화 심화 전망

최근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제232조에 의거해 ‘국가안보’ 목적으로 도입했던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수입관세 인상 조치와 관련해 WTO 분쟁해결기구(Dispute Settlement Body)에 제소된 다수의 분쟁 건에 대한 판정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은 예상대로 GATT협정 제21조의 ‘안보예외(security exceptions)’ 조항을 원용해 수입산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인상 조치에 대해 정당성을 입증하려 했으며, 특히 글로벌 차원의 철강과 알루미늄의 공급과잉 문제가 안보예외 규정의 적용 요건 중 하나인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기타 비상사태(other emergency in international relations)”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패널은 미국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미국의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수입관세 조치가 WTO 규범3)에 합치하지 않으므로 이를 철회할 것을 권고했다.
미국은 패널의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를 현존하지 않는 WTO 상소기구에 항소하면서 이번 WTO 패널 판정 결과는 결국 채택되지 못하고 구속력을 갖지 못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WTO 회원국들은 국가 간 통상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WTO 분쟁해결기구에 제소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중국은 이번 WTO 분쟁 판정 결과에 힘입어 미국의 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WTO 분쟁해결기구에 제소했다.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도입되고 있는 여러 보호무역주의적 통상조치에 대해 비록 구속력은 없지만 다자무역규범과의 불합치성을 보여주기 위해 WTO 분쟁해결기구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는 WTO의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WTO 판정에 대한 미국의 불복행위가 추후 WTO 체제와 다자규범력의 약화를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3) WTO의 미 ‘철강·알루미늄 관세’ 규정 위반 판정
2018년 미국은 자국 철강업계 보호를 위해 국가 안보상 긴급 무역 제재를 허용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 생산된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물량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규정 위반 판정을 내렸으나 미국은 관세 폐지를 거부했다.
(※232조 조치는 미국 대통령이 특정 수입품에 대해 수입량을 제한하고 관세를 추가로 부과할 수 있는 조치다.)

‘경제안보’ 명분의 보호무역주의 기조 확산에 대한 우리의 대응전략

현재 심화되고 있는 미·중 간 패권경쟁이 일정 부분 해소되지 않는 이상 향후 국제통상 환경은 한동안 주요국의 ‘경제안보’ 논리가 우선시되며 보호무역주의적 통상정책이 확산되는 양상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자국의 공급망 강화를 위해 첨단기술 및 전략적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주요국 간 상호 경쟁적으로 추진되며 상대적인 우위 확보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동맹·우방국 불문하고 무역·투자 상대국에 대한 차별적인 ‘자국 우선주의’ 통상조치를 도입하며 국내산업의 보호와 역량 강화를 도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도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방향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전략적 산업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이를 공급망 참여의 레버리지(leverage)로서 활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기업이 미국의 차별적인 통상조치로부터 피해를 보지 않도록 새로운 입법화 동향을 예의 주시하며 사전협의 채널을 적극 가동해 사전에 상호간 이해관계가 조율되도록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의 공급망 참여를 위해서는 높은 환경기준의 충족이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의 친환경 제조기술 및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방식 도입 등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지역 차원의 국제통상질서의 구축을 위한 논의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 강대국 주도의 ‘경제안보’ 논리에 경도되지 않도록 노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를 초래하지 않도록 제조업의 국산화보다는 기존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통상정책을 도입하도록 국제적 논의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대외개방형 경제를 갖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국제무역과 공급망 활동의 주체인 기업들이 보다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국제통상 환경 속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주도하에 오늘날의 국제통상 환경은 ‘패러다임 변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 다자무역체제는 상이한 경제체제를 지닌 일부 회원국들이 불공정한 무역 행위를 통해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한 점에 대해 적실성(relevance)과 정당성(legitimacy)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듯하다. 이를 방치한 결과 현 WTO 체제의 규범력 약화를 초래했으며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4) 등 기존 다자무역체제를 대체하기 위한 지역 차원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미국 주도의 ‘경제안보’가 아닌 아시아 지역 차원의 ‘경제안보’를 위한 신통상질서의 구축을 목적으로 IPEF 논의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경제, 환경, 경제정책 등 오늘날 국제통상 환경의 변화 수요를 반영하며 보다 적실성 있는 국제통상체제의 구축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의 경제주체인 기업들에게 더욱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국제통상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4)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 워크(IPEF;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2022년 5월 23일, 미국 주도로 출범한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 협력체다. 자유무역협정(FTA)과 달리 코로나19 이후 부각된 공급망, 디지털, 청정에너지 등 신통상 이슈를 핵심 의제로 다루는 경제통상 플랫폼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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