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2025년 28개국 15~59세 2만 64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자기 나라에서 ‘대중적으로 인기 있다’고 응답한 K-컬처 콘텐츠의 비율은 ‘K-푸드’가 53.7%로 가장 높았다. 음악(51.2%), 뷰티(50.8%), 드라마(49%)는 그다음이었다. K-푸드의 폭발적인 인기는 수출 실적으로도 증명된다. 한국농수산식품 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25년 K-푸드 수출액은 역대 최고인 114억6344만달러를 기록했다. 2016년 60억5772만달러에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K-푸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K-식재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식재료가 음식 맛의 근간이라는 점에서 짐작 가능한 상황 전개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에서는 언제부턴가 거의 모든 식료품점에서 김치를 찾을 수 있게 됐을 만큼 K-푸드가 일상에 자리 잡았다.
과거엔 대형마트 ‘아시안 코너’를 뒤져야 겨우 찾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트레이더 조를 비롯한 현지 대형마트 체인이나 주요 편의점 일반 소스류 매대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고추장을 비롯한 ‘K-소스’를 요리에 활용하는 미국 가정도 늘었다. 그 결과 ‘고추장버터 파스타’ ‘고추장 치킨 볶음’ 등 동서양의 풍미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요리가 탄생했다. K-식자재 스타트업도 성업 중이다.
2019년 설립한 스타트업 ‘김씨마켓’은 ‘뉴욕의 마켓컬리’로 불린다. 한국 농산물을 정식 통관을 통해 들여와 온라인으로 판다. 뉴욕 미쉐린 2스타 프렌치 레스토랑 ‘장조지’ 등에 식자재를 공급한다. 국내 식품 업체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는 미국 만두 시장점유율 1위이고, 2023년 처음 선보인 뒤 해외에서 800만 개 이상 판매한 비비고 ‘냉동김밥’은 연평균 130%를 넘는 매출 성장률을 이어 가고 있다.
베이징·상하이 등 中 1선 도시에 현지인 운영 고급 한식당 늘어
K-식재료의 위상은 소비력을 갖춘 인구 14억의 거대 시장 중국에서도 높다. 중국에서도 K-푸드 열풍에 힘입어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롯한 1선 도시에서 현지인이 운영하는 고급 한식당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그렇다보니 정통 한국의 맛을 내기 위한 장류, 소스류 등 한국 식재료 수요도 덩달아 늘고 있다 이와 관련해 aT는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2026 상하이 국제식품박람회(SIAL Shanghai 2026)’에 통합한국관을 조성해 1800만달러 규모의 MOU(업무협약)와 현장 계약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aT는 이번 박람회에서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총 80개 부스로 구성된 통합한국관을 운영했다. 이를 기반으로 중화권 수출 유망 품목(넥스트 K-푸드)으로 꼽히는 프리미엄 식재료와 기능성 식품은 물론 인삼, 쌀 가공품, 파프리카, 라면 등을 소개했다. 서울 시내 전통시장과 방앗간에는 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황금빛 참기름과 들기름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기름을 짜는 과정을 직접 보고 향을 맡는 체험을 독특한 여행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참기름·들기름 열풍에는 소셜미디어(SNS)가 큰 몫을 했다. 일본 국민 걸그룹 AKB48 출신 방송인 사시하라 리노는 자기 유튜브 채널에서 불닭볶음면에 참기름을 넣어 먹은 뒤 “맛이 완전히 달라졌다. 진짜 맛있다”고 감탄했다. 400만 가까운 팔로어를 보유한 일본의 모델 겸 사업가 코지마 하루나는 한국 여행 브이로그에서 서울의 한 방앗간을 방문해 기름 짜는 과정을 소개하기도 했다. K-식자재 수요는 동남아·유럽·중동에서도 점차 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대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글로벌연구실 부연구위원은 ‘통상’에 동남아는 한국산 딸기·포도·배 같은 프리미엄 과일과 매운맛·단맛이 결합한 소스류에 대한 관심이 많고, 유럽은 김치와 발효식품, 건강식 이미지가 강한 품목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동남아는 한류와 연결된 간편식과 선물용 고급 과일 소비가 강하다.
중동은 인증, 안전성, 가족 단위 소비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특정 식품·식재료의 맛이 아무리 좋아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다면 대중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식품안전관리 역량이 최근 국제사회로부터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은 것 또한 큰 의미가 있다. 2025년 8월 방한한 세계보건기구(WHO) 평가단이 감염병 대응 등 19개 영역을 종합 점검한 결과, 한국은 ‘식품 매개 질병 감시’와 ‘비상 상황 대응 및 관리’ 등 식품 안전 분야 모든 지표에서 최고 등급을 획득했다. 2024년 이후 평가받은 22개국 중 두 지표 모두 만점을 받은 국가는 한국과 미국뿐이다.
가장 인기 있는 K-콘텐츠는 음식
물류 인프라 혁신도 시급한 과제
K-식자재 열풍이 단발적인 유행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현재 국내 식품 산업은 여전히 완제품 중심의 수출구조에 머물러 있다”면서 “지속 가능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이제는 ‘식자재 공급국’으로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음식을 파는 단계를 넘어 식재료와 원료 시스템을 함께 수출하는 구조로 이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류 인프라 혁신도 시급한 과제다.
하 교수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단 하루의 유통 오류만 발생해도 브랜드 신뢰 하락으로 직결된다”며 “이제는 항만·공항 중심의 저온 물류 인프라를 국가 전략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 단순 보관 창고 개념을 넘어, 인공지능(AI) 기반 실시간 온도 모니터링, 블록체인 기반 이력 추적 시스템, 스마트 패키징 기술이 결합한 디지털 콜드체인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정 부연구위원은 “일본의 고베 와규, 시즈오카 와사비, 프랑스 샹파뉴 샴페인, 이탈리아 파르마 프로슈토, 스페인 안달루시아 이베리코 하몽의 공통점은 생산지, 품종, 사육·재배 방식, 가공 과정, 품질 기준을 함께 관리한다는 점”이라며 “결국 소비자는 단순히 식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과 생산자에 대한 신뢰와 오랜 시간 축적돼 온 경험을 함께 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도 지역성과 품목 정체성이 뚜렷한 식자재부터 이런 전략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