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로 촉발된 호르무즈해협(이하 호르무즈)의 긴장은 해상 물류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부는 호르무즈를 우회해 미국과 아프리카 등 17개국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며 1억1000만 배럴의 원유를 확보했고, 전략비축유를 방출해 시장의 패닉을 막았다. 하지만 호르무즈를 비롯해 한국의 핵심 무역로가 지정학적 위협을 받는 상황을 이제 일시적 악재가 아닌 ‘상수(常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문제의 해법을 두고 국제 문제 석학과 중동 분야의 신진 전문가의 생각을 들었다.
호르무즈 봉쇄가 과거 오일쇼크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차이는 무엇인가.
김연규 한양대 국제대학원장(이하 김연규) “1·2차 오일쇼크가 공급자의 정치적 결정에 의한 가격 충격이었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특정 국가의 자원 무기화에 따른 공급원 충격이었다면, 이번 2026년 사태는 물리적 봉쇄로 촉발된 시스템 충격이다. 호르무즈는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25%, 액화천연가스(LNG)의 20%가 지나며, 비료 원료 교역량의 최대 30%가 이 항로에 의존한다. 과거가 기름값 문제였다면 이번은 에너지, 식량, 물류, 비료를 동시에 마비시키는 복합 공급망 붕괴다. 한국은 수입 원유의 70.7%, LNG의 20.4%를 중동에서 들여오며 수입 원유의 95%가 호르무즈를 통과할 만큼 취약성이 두드러진다. 1970년대와 달리 현재 한국 수출의 핵심은 반도체, 석유화학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기에 직격탄을 피할 수 없다.”
빙현지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이하 빙현지) “과거의 위기가 공급량 감소나 거래 제한 수준이었다면, 이번 호르무즈 봉쇄는 충격 규모와 전파 경로가 훨씬 복합적인 구조적 공급망 위기다. 하루 1100만 배럴의 원유와 1400억m³의 가스 공급이 중단될 위기일 뿐 아니라,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에너지 인프라까지 직접 타격을 받았다. 글로벌 교역량의 최대 30%를 차지하는 비료 원료와 산업 필수 소재의 수출 경로까지 막히면서 에너지 가격 상승을 넘어 산업 원자재 시장까지 흔들고 있다. 안보 리스크로 인해 봉쇄가 해제되더라도 시장 정상화가 느릴 것이라는 점도 과거와 다르다.”
에너지 패권 구도 재편 속에서 한국이 참고할 만한 대응 사례는.
김연규 “이번 위기는 에너지 패권 구도의 지각변동을 명확히 보여준다. 중국은 2025년에만 하루 평균 110만 배럴의 비축유를 쌓아 14억 배럴의 전략 재고를 확보하며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중국은 석탄 화공(CTO) 기술과 재생에너지 등을 바탕으로 실제 에너지 수입의존도를 15% 수준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전 세계 태양광발전·풍력발전·배터리 공급망의 70% 이상을 장악하여 위기를 도리어 패권 강화의 기회로 삼고 있다. 반면 미국은 군사적 통제력을 주도하면서도, 전략비축유 여력이 고갈되며 에너지전환이라는 구조적 전쟁에서는 중국에 주도권을 내주는 역설적 딜레마에 빠졌다. 한국은 전략비축유가 7900만 배럴에 불과해 2억6000만 배럴을 법제화한 일본과 격차가 크다. 일본의 실용적 대응과 중국의 에너지 자급 모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비축 확대와 에너지원 다변화를 함께 추진하는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빙현지 “미국은 셰일 혁명을 통해 위기 시 원유와 LNG를 직접 공급할 수 있는 거대 패권국으로 부상했고, 중국은 대규모 비축유와 석탄화학 기반 원료 체계를 통해 단기 충격 흡수력을 키웠다. 중동은 화석연료 가격 통제력을 잃어가는 대신 태양광 발전, 그린수소 등 미래 에너지 중심지로 전환을 시도 중이다. 자원 생산국이 아닌 한국은 비상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계약적 권리와 기술 역량을 키워야 하며, 최근 한국가스공사와 일본 제라(JERA) 간 LNG 스와프 협정 한·인도 나프타 협력 등이 좋은 출발점이다.”
비중동 지역으로 공급선 다변화가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나.
빙현지 “단기간 내 완벽한 대체는 불가능하다. 국내 정유사 설비는 오랜 기간 중동산 중질·고황 원유 처리에 최적화돼 투자됐기 때문에, 대체 물량으로 확보하기 쉬운 미국산 경질유를 수입한다고 해서 동일한 수율과 정제 마진을 낼 수 없다. 게다가 미국, 남미 등 비중동산 원유는 수송 거리가 멀어 파나마운하 통항 제약이나 높은 물류비 등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 따라서 공급선 다변화는 설비 개조와 인프라 변화를 동반하는 중장기 과제다.”
김연규 “단기간의 완벽한 대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호주는 한국의 최대 LNG 공급국이며 최근 장기 계약을 추가 확보했으나, 이는 한국의 연간 도입량 4500만t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미국산 LNG 도입을 늘리면 지정학 리스크는 줄일 수 있으나, 수출 터미널이 멕시코만에 집중되어 있어 잦은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 리스크로 위협의 성격이 전환될 뿐이다. 파이프라인 인프라가 있는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로 인해 안보적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결국 수입국 수만 늘어나고 실질적 복원력을 갖추지 못하는 ‘다변화 착시’를 경계해야 한다. 일본처럼 해외 지분을 직접 확보하는 질적 다변화가 필수적이며, 비축 확대와 에너지전환을 병행해 충격을 분산하는 완충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수출 기업의 조달 및 생산 전략은 어떻게 수정돼야 하는가.
김연규 “적기 공급 전략은 공급망이 예측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작동하는데, 코로나19와 두 차례 전쟁으로 그 전제가 완전히 무너졌다. 적기 공급을 주도한 도요타마저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며 원자재 재고를 쌓는 예비 생산 전략으로 선회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한국 수출 기업도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헬륨이나 특수 가스 같은 대체 불가 전략 품목은 재고를 대폭 늘리고 범용 소재는 적기 공급을 유지하는 차등화 투 트랙 전략을 써야 한다. 단일 공급망 의존을 탈피해 2019년 일본 수출규제 당시 핵심 소재를 국산화했듯 멀티 소싱과 내재화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항만 및 통신 시스템 마비에 대비해 공급망 가시성을 확보하는 디지털 전환과 민첩한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환율 및 가격 변동에 대비한 재무적 헤지 체계를 마련하고 재고 비축을 단순히 비용 증가가 아닌 생존을 위한 ‘공급망 보험료’로 인식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
빙현지 “적기 공급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실질적 비용으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모든 품목의 재고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전체 공정을 멈추게 하는 핵심 병목 품목을 사전에 식별해 전략 재고를 확보하고 복수 공급선과 옵션 계약을 맺어야 한다. 특히 수입국을 다변화하더라도 호르무즈처럼 수송 경로가 겹치면 무용지물이 되므로, 경로의 분산과 외부 의존도를 낮추는 대체 원료 개발 기술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파나마운하와 홍해 리스크가 겹치면서 북극 항로나 동북아 구매국 간 인수 기지 연계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김연규 “북극 항로는 운송 시간을 최대 10일 단축하고 연료비를 25% 절감할 수 있는 훌륭한 잠재력이 있으며, 한국의 최고 수준 쇄빙 상선 건조 기술과 맞물려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당장의 위기를 넘길 단기 대안으로는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 통상 7~11월에만 운항이 가능해 연중 발생하는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어렵고, 러시아 연안을 통과해야 하므로 대러 제재 국면에서 서방 기업의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원유를 대량 수송할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운항이 제한되어 한국의 막대한 물량을 감당하지 못한다. 한·중·일 공동 인수 기지 구상 역시 자원 확보 경쟁과 정치적 신뢰 기반의 취약성으로 실현이 쉽지 않다.”
빙현지 “북극 항로는 장점도 있으나 가항 기간 제한과 러시아의 권한 집중 문제 탓에 당장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기존 터미널과 포트폴리오를 연계하는 한일 간 터미널 접근권 공유나 카고 스와프 등 동북아 구매주 간 인수 기지 연계 방안이 현시점에서는 더 현실적이다. 한국의 거대한 저장 인프라와 일본의 장기 계약 포트폴리오를 연계한 후 단계적으로 인도·태평양 국가로 네트워크를 넓혀가야 한다.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역내 저장시설에 15%를 저정하는 의무로 도입했다.”
화석연료 비중을 낮추기 위한 정부의 과제는 무엇인가.
빙현지 “해상 수송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전 확대가 필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병목은 발전설비가 아니라 생산된 전기를 보낼 ‘전력망’의 확충이다. 전력망 투자가 발전설비 구축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므로 전력망을 국가 기간 인프라로 보고 접근해야한다. 아울러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핵심광물은 중국에, 핵연료는 러시아에 의존하는 새로운 공급망 취약성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대비해야 한다.”
김연규 “방향은 옳지만, 탈탄소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에너지 불안정성이 커지는 ‘녹색 전환의 역설’을 철저히 극복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시스템이 완전히 구축되기 전의 ‘전환기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존 원전 가동률을 높이고 소형모듈원자로(SMR)의 조기 상용화 일정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계통 안정성을 지킬 전력망 구축과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한계를 보완하는 바나듐 레독스 흐름 전지, 나트륨-황 계열, 철·아연 기반 배터리 등 비(非)리튬계 장주기 ESS 기술의 조기 상용화도 중요하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폭증 등으로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이므로 수요 관리와 에너지 효율 향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공급망 주권’ 강화를 위한 자원 외교는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김연규 “한국의 원유·천연가스 자주 개발률은 10.5%에 불과해 40%에 육박하는 일본과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공급망 주권을 확립하려면 일본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 모델을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 정부가 자금 보증 등 리스크 머니를 대고 민간 종합상사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공동 개발하는 구조다. 이를 위해 직접투자가 금지됐던 광해광업공단 등 공공 자원 개발 기관의 역할을 조속히 복원하고, 민간 기업이 탐사 단계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융자 감면과 지분 투자 지원 등 재정적 안전망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1위의 LNG 운반선 건조 기술, 플랜트 시공, 원전 건설 역량을 갖추고 있다. 돈으로 지분을 사는 것을 넘어, 우리의 인프라 기술을 협상 카드로 활용해 자원 공급권과 연계하는 영리한 ‘패키지 자원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빙현지 “에너지의 행선지를 능동적으로 통제하려면 단순 구매를 넘어 해외 가스전 등 상류 단계에 직접 지분을 투자해야 한다.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가 따르므로 민간 단독 투자는 어렵다. 일본의 JOGMEC와 일본국제협력은행(JBIC), 일본무역보험(NEXI) 연계 모델처럼 정부가 탐사·생산 출자와 무역보험을 통해 초기 리스크를 분담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단일 거래가 아닌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정부 주도의 파트너십 구축이 시급하다.”
‘자원 안보 로드맵’에 반드시 담겨야 할 핵심 사항이 있다면.
김연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자원 안보 로드맵에 ‘국가 에너지 회복력 지수(Energy Resilience Index)’를 최우선 평가 기준이자 법정 지표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발전소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연료가 차단되면 시스템 전체가 무용지물이 됨을 증명했다. 회복력 지수에는 원유뿐 아니라 헬륨, 암모니아 등 필수 산업 소재의 비축 일수를 의무화하고, 장기 계약비율을 포함한 수입처 공급 집중도, 전력망의 유연성 자원 비율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 생존에 필요한 회복력 목표치는 반드시 충족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빙현지 “에너지 안보를 부처별 개별 정책에서 벗어나 ‘국가 안보 전략의 핵심축’으로 통합하고 격상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수입선 편중, 기초 소재 비축 공백, 전력망 지연, 지분 부족 등 개별적으로 관리되던 약점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수입선 다변화, 비축, 전력망, 믹스전환을 별도의 계획으로 둘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공급망 안보 전략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동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