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준석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사진 한경DB
디지털 경제 통상 규범의 성격은 두 가지 차원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첫 번째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디지털 콘텐츠와 디지털 서비스 교역 증가로 통상 규범으로서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 비중이 커졌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디지털 전환이 무역 및 투자 방식의 변화를 이끌었는데, 특히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한 O2O 거래를 등장시킴으로써 국내 거래와 국제 거래 간의 구분이 불명확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전통적 통상 규범으로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 and Trade, GATT)’이 무차별 원칙에 근거한 자유무역을 통해 시장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시장 순응적 규범이었다면, 디지털 통상 규범은 디지털 거래를 정의하고 공정한 과세를 목적으로 하는 시장 규제적 규범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디지털 기술과 인프라의 발전에 따른 연쇄 반응을 일컫는데, 정태적 개념의 규정으로 성문화하기 쉽지 않아 통상 규범에 대한 목적론적 해석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전개됨으로써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 및 위험관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디지털 전환은 무역 및 투자 방식의 변화를 이끌었는데, 특히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한 O2O(On-line to Off-line) 거래를 등장시킴으로써 국내 거래와 국제 거래 간의 구분이 불명확해졌다.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한 나라의 판매자와 제3국의 소비자가 재화 또는 서비스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경우, 판매자는 소비자에 대한 정보를 제3국의 사업자에게 전달하여 재화의 물리적 이동 또는 서비스 제공은 제3국의 국내에서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거래에 대해 국제적인 통상 규범 내지 과세 규범이 적용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최근 디지털 통상 규범의 주요 문제로 자유무역 또는 공정무역에서 표방하는 시장 접근성 개선이나 시장 개방 범위의 확장보다는 디지털 데이터의 속성을 정의하거나 일반 개인 정보 보호 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 활용 범위 등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디지털 통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디지털 전환에 따라 원천지국에서의 과세 논쟁은 국제적 자금 흐름을 복잡하게 만들어 국가 간 세수 배분을 어렵게 하거나 이중과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 활용은 기존 국제 규범에 의한 고정사업장의 부재로 인위적 조세회피라는 비판을 받게 되어 디지털 준거(Digital Presence)를 기준으로 과세 연계점(Nexus: 원천지국 과세 당국이 과세권을 주장할 수 있는 연결 고리)에 근거한 과세가 이루어지거나, 디지털 서비스 제공에 따른 매출액에 근거한 과세 논의가 다소 급진적 방식으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데이터 관련 과세 문제는 플랫폼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 사용자에게 플랫폼 서비스는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반대급부로 사용자 정보를 축적해 수익 창출의 원천으로 삼는다.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디지털 플랫폼 무상 서비스를 교환 거래로 간주할 경우 기업의 핵심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개인 데이터를 고려해 소득을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데이터를 연계점으로 해 과세된다는 점에서 연계점과 고정사업장의 쟁점과도 연관된다. 디지털 재화 등에 대한 지급 대가를 로열티 소득으로 구분하면 원천지국에서 과세가 가능하지만, 사업소득으로 구분하면 고정사업장이 없는 경우에는 조세 제약에 따라 소득 원천지국에서의 과세가 불가능해진다.
디지털 전환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안된 넥서스 개념이나 디지털세 등 국제적 대응은 보완점이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논의되고 있는 디지털세 과세는 자칫 시장의 디지털화를 저해하고, 통상 규범의 차별적 조항과 충돌할 위험성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대외 지향형 경제국가인 한국이 당면한 과제는 디지털 거래라는 시장의 변화를 수용할 수 있으면서도 통상 규범과 충돌하지 않는 과세 판정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요구된다.
디지털세 논의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크게 세 가지 면에서 고려해야 한다. 첫째, 한국은 양자 간보다 다자간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디지털 플랫폼이 ‘중요한 경제적 실재(Significant Economic Presence, SEP)’ 요건을 갖추는가에 대한 논의가 국가 간에 진행될 경우 특정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과세 시스템을 배제하기가 용이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조세 협정이나 투자 협정과 같은 양자 간보다는 OECD BEPS 체제 같은 다자간 협의체 참여를 통한 과세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현재보다 상위의 전담 부서 설치가 필요하다. 디지털세를 포함한 통상 규범은 문리해석이 아닌 목적론적 해석에 기반하므로 단지 정해진 회의에 참석하는 수준의 참여가 아니라, 전문가 그룹 간의 지속적인 교류와 의사소통을 통해 논리 전개 및 정보 전달 체계가 구축되어야 하므로 전담 인력이 논의되는 의제에 상시 참여할 수 있도록 현재보다 상위의 전담 부서 설치가 필요하다.
셋째, ‘플랫폼’의 개념이 어떻게 정의되는가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들의 원천소득도 과세 대상이 될 수 있고, 통상 마찰을 촉발할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데이터 확보와 디지털 서비스 제공에 따른 귀속소득의 결정은 흔히 GAFA(Google, Amazon, Facebook, Apple)로 일컫는 미국 기업들에 대한 차별(Ring-fencing)로 여겨져 무차별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WTO 통상 규범이나 미국 통상법에 따른 위반이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원천지국 과세권의 근거가 되는 디지털 플랫폼이 ‘데이터 활용을 통한 디지털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장치’로 확장되는 경우에는 한국 기업이 세계시장에 공급하고 있는 스마트 기기나 IoT(Internet of Things) 설비도 과세 대상이 될 수 있고, 이에 따라 한국의 세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과세에 대한 논의는 국내 세법에 디지털 기업에 대한 과세권을 반영하는 특정 부서의 미시적 문제가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디지털 통상이라는 정책 관점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은 불필요한 통상 마찰을 피하면서 국제 규범과 논의 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양방향적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 절충해나갈 수 있는 경제 파트너로 인식되어야 하며, 과세 당국 간 정보 교류 협정(Exchange of Information, EOI)에도 적극 협력하는 것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