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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세, 도대체 뭐길래

선한결 <한국경제신문> 기자 사진 한경DB

‘디지털세’가 세계무역 시장의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세계 주요국들은 디지털세 도입을 두고 대립 중이다. 미국은 다른 국가가 디지털세를 도입할 경우 해당 국가 생산 제품에 대규모 관세를 물리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유럽 각국은 이 경우 자국 내 미국 기업 대상 규제 강화 등으로 반격할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디지털세가 올해 대규모 무역 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가 간 관세가 아닌 특정 국가의 자체 세금 제도 도입이 무역 갈등으로 번지는 일은 이례적이다. 디지털세가 뭐길래 세계무역 시장이 이렇게 긴장하고 있을까?

2018년 12월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EU 재무장관회의 당시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 가면을 쓴 한 시민운동가가 ‘TAX ME!’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디지털세란?

디지털세는 해당 국가 내 디지털 서비스 매출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기업의 매장이나 공장 대신 ‘디지털 사업장’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디지털 서비스로 번 돈만 과세 대상으로 잡힌다. 예를 들어 애플의 경우 앱스토어(응용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온라인상의 콘텐츠 장터)에서 번 돈 등에 대해 디지털세를 내야 한다. 앱스토어가 앱 개발자와 이용자 간 플랫폼으로서 디지털 서비스를 중개해 매출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반면 애플이 아이폰을 제조・판매해 올린 매출은 디지털세 대상이 아니다.
이는 이전엔 없던 과세 방식이다. 디지털세는 제도를 도입한 나라에 기업 본사나 공장이 있든 없든 디지털 서비스 매출에 따라 세금을 물린다. 디지털세는 법인세 등 기존 세금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별도로 부과된다.

도입 배경은?

프랑스 등은 거대 IT 기업이 각국에 고정사업장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세금을 회피한다며 디지털세를 추진하고 있다. 통상 IT 기업은 제조기업보다 세금을 적게 낸다. 현행 국제 조세 조약상 각국은 고정사업장과 유형자산을 주요 근거로 기업에 과세하기 때문이다. 한 제조기업이 아시아 본부를 싱가포르에 두고 있어도 말레이시아에 공장이나 매장이 있다면 그에 따른 재산세를 낸다. 물류 이동 등 매출을 내는 과정에도 세금이 붙는다.
반면 IT 기업은 그렇지 않다. 서비스가 인터넷망을 이용해 오가기 때문에 국가마다 생산・판매 시설을 짓지 않고도 국경을 넘어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데이터나 지식, 기술 특허 등 무형자산에 주로 의존하다 보니 과세 근거도 적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에 진출한 IT 기업의 평균 실효세율(매출 대비 납부세액의 비율)이 9.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제조기업 평균 실효세율(23.2%)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유럽 주요국, 왜 적극 나서나?

디지털세 관련 논의는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기존 EU 소속 각국이 선도하고 있다. 프랑스는 작년 7월 세계 최초로 디지털세를 도입하기로 한 바 있다. 이탈리아는 작년 12월 말 디지털세 도입안을 의회에서 가결했다. 영국은 오는 4월 디지털세 제도를 시작할 계획이다. 스페인과 독일도 관련 법안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EU 국가들이 디지털세 도입에 적극적인 이유는 EU 역내 법인세율 격차가 큰 탓도 있다. EU 규정상 역내에 진출한 기업은 유럽 전역에서 매출을 내더라도 회원국 한 곳에만 본부 법인을 두고 세금을 내면 된다. 글로벌 IT 기업들은 주로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에 본부를 두고 있다. 프랑스, 영국 등이 IT 기업에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도 세금을 내라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자국의 IT 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다. 프랑스는 2011년 온라인 광고 비용의 1% 정도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안을 도입했다가 1년 만에 이를 철회했다. 당초 온라인 광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과 애플 등을 겨냥했지만, 결과적으로 자국 중소 광고업체의 수입만 크게 줄어서다. 이후 대안으로 나온 게 디지털세다.

세계무역 시장 불씨 우려도

미국은 각국의 디지털세 도입을 막기 위해 ‘무역법 301조’라는 강수를 쓰고 있다. 미국 정부가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 제도나 관행에 대해 관세 부과 등 보복 조치를 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주요 7개국(G7)과 OECD가 디지털세 도입 필요성 자체에 대해선 합의했더라도 개별국의 세제가 미국에 차별적이라고 해석될 경우 경제 제재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주장이다.
미국은 가장 먼저 프랑스에 추가 관세 위협을 내놨다. 프랑스산 제품 24억 달러(약 2조8,000억원)어치에 최고 100%의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는 내용이다. 프랑스는 미국이 관세로 보복하면 EU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맞섰으나 다보스포럼을 계기로 프랑스와 미국의 갈등이 1년간의 휴전 국면을 맞았다. 미국이 프랑스에 대한 보복관세를 올 연말까지 보류하기로 한 것에서 나아가 프랑스도 미국의 IT 기업에 대한 디지털세 과세를 향후 1년간 유예한다고 선언했다. 양국은 일단 올해 연말까지 자국 세제를 유예하고 디지털세 관련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같은 갈등은 영국 등 다른 국가로도 번지고 있다. 미국은 영국에 오는 4월 디지털세를 강행할 경우 영국산 자동차에 ‘임의적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전달했다. 영국은 일단 계획대로 디지털세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럽은 디지털 서비스 소비국 과세권을 강화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각국 지도자들이 디지털세 관련 합의를 보지 못하면 ‘관세 폭포’가 쏟아져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