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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차가 열어갈 새로운 에너지 시대

정귀일 한국무역협회 전략시장연구실 연구위원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보다 더 강력하게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파리기후협약이 2021년 1월 1일 발효될 예정이다. 수소는 에너지를 만들어낼 때 이산화탄소 등 배기가스를 발생시키지 않고 석유나 배터리에 비해 효율이 높아 미래 에너지원으로서 잠재력이 크다.

다국적 컨설팅 전문기업 매킨지는 2050년 수소가 세계 에너지 수요의 18%를 담당해 이산화탄소를 매년 60억 톤 감축하고, 수소 및 관련 장비에서 연간 2조5,000억 달러(약 3,000조 원)의 시장과 3,000만 개 이상의 누적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친환경 에너지원으로서 수소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는 다른 나라들에 앞서 수소산업 육성 정책을 마련해왔다.

국내 수소차 육성 현황

한국은 2019년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 수소 활용에서 수소차가 중심이 되는 수소경제 육성 정책을 천명했다. 한국은 2019년 수소차 4,803대를 보급하고 충전소도 20개를 추가 구축해 연간 보급대수와 신설 충전소 수에서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40년까지 수소차 생산량을 620만 대(국내 290만 대, 수출 330만 대)로 확대하여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도 있다. 현재까지 출시된 승용차 모델이 현대자동차 ‘넥쏘’ 하나에 불과해 소비자 선택폭이 제한적이다. 수소차 보급·확산을 위해서는 차량 성능과 원가 경쟁력 확보도 필수적이지만 전기차와 비교할 때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수소차는 양산형 모델을 보급한 지 5년이 지났지만 2019년 전 세계 판매대수는 7,578대로 신차 시장의 0.01%, 전기차 판매대수의 0.05% 수준에 불과하다. 테슬라의 경우 50만 대 판매까지 10년이 소요된 반면, 현대차는 16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어 대량생산까지 수익화에 난항이 예상된다. 국내에 290만 대의 수소차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2040년까지 연간 100만 톤이 넘는 수소가 공급되어야 하고, 30억 원에 달하는 값비싼 수소충전소 건설비용과 주민 반대도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소차에 대한 관심이 상용차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높은 에너지 밀도를 보유한 수소트럭은 장거리를 주행하고 많은 힘을 낼 수 있어 전기트럭에 비해 상용차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전기트럭은 많은 짐을 싣거나 다수의 승객을 태우고 달리려면 배터리 용량과 부피가 커지고 무거워지지만, 수소트럭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매킨지는 100km를 기준으로 거리가 더 길어질수록 수소트럭의 운행 거리에 따른 비용 경쟁력이 전기트럭에 비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수소트럭의 충전시간도 훨씬 짧다. 전기트럭의 충전시간은 10시간이나 소요되지만, 수소트럭은 15분이면 충분하다. 충전소도 차고지에만 있으면 돼 충전소 구축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현대차에서 출시한 국내 유일의 수소 승용차 넥쏘(NEXO).
수소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

각국 정부의 이산화탄소 규제 강화도 상용차 분야에서 수소차 전환을 가속할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상용차 비중은 약 10%에 불과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약 46%에 달해 각국 정부는 상용차에 엄격한 배출가스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유럽은 2025년 이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주요 국가들이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추진하고 있어, 상용차 부문에서 친환경차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 ‘트럭의 왕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은 대통령선거로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친환경 정책을 강조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연비규제와 비내연기관 자동차의 의무판매제도를 실시할 전망이다. 유럽연합(EU)식의 징벌적 자동차 연비규제를 전국으로 확산하고, 50만 대의 스쿨버스와 연방정부 차량 300만 대를 수소차나 전기차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상용차를 물류나 대중교통에 활용하기 위한 노력들도 나타나고 있다. 민관협력체인 캘리포니아 연료전지파트너십은 2029년까지 탄소제로버스 중 수소버스를 25% 이상 구매하는 로드맵을 설정했다. 중국은 수소차 보조금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고, 2030년까지 약 100만 대의 수소차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은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우리 기업들이 전 세계를 향해 뻗어나갈 좋은 기회다. 현대차는 세계 최초로 양산한 대형 수소트럭 엑시언트(XCIENT)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 유럽에 수출을 시작했고, 2030년까지 2만5,000대 이상을 공급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도 사기 혐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니콜라와 달리 확실한 기술적 우위와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2030년까지 1만2,000대 이상을 공급할 수 있을 전망이다. 최근 엑시언트를 공개한 중국에서는 2030년까지 2만7,000대 수출을 목표로 수소차 상용화 사업 개발과 인프라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는 향후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1,000km를 넘는 장거리 운송용 대형 수소트럭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로 인해 수소트럭의 경제성이 디젤이나 전기트럭에 비해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이제 친환경 에너지와 수소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소리 없는 총성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의 수소차가 있다. 한국의 수소차가 세계 곳곳을 질주할 그날을 기다리며 앞으로 들려올 우리 기업들의 행보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