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한국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대응방안은?

최재철 인하대 지속경영대학원 지속가능경영학 초빙교수

한국은 세계 주요 경제국들 중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국가로 꼽힌다. CO₂ 배출량은 세계 7위권에 속할 뿐만 아니라 10대 수출품목도 반도체, 석유제품, 자동차, TV, 철강, 합성수지 등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품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 유럽에서 논의되는 CBAM은 대체적으로 관세, 탄소배출권거래제 확대, 수입품 전용 배출권 신설, 소비세 등 4가지 유형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우리나라가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사항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까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2월 10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생중계 연설을 통해 국민에게 대한민국의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했다.

2019년 12월 취임한 유럽연합(EU)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유럽이 최초의 탄소중립 대륙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닌 ‘유럽 그린딜’을 발표하고 유럽 기후법 제정을 통해 2050 탄소 순배출 제로를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EU가 파리협정에 따라 제출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40% 감축에서 최소 55% 이상 감축으로 목표를 재설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동시에 EU 집행위는 감축 목표 상향하에서도 EU의 ‘에너지 집약적이면서 무역 경쟁에 노출된(EITE; Emissions-Intensive Trade-Exposed)’ 기업과 산업들이 시장 경쟁력을 유지하고 투자를 지속해나갈 수 있도록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즉 EU는 비대칭적인 기후정책을 취하는 국가의 상품들이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EU 역내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의 국제적 논의 동향

기후행동 강화는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₂)의 배출량을 줄이는 정책과 조치로 나타난다.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탄소 배출량에 가격을 부여하는(Carbon Pricing) 것이다. 탄소가격제의 주요 유형은 시장에 기반을 둔 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다. 교토의정서에 따라 온실가스의 수량적 절대감축 의무를 지닌 선진국들은 탄소가격제를 도입하고 국내 산업의 경쟁력과 투자 누출 방지를 위해 CBAM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2005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지금까지 선진국들은 비교적 느슨한 감축 정책과 조치를 취하면서 EITE 산업에 대해 무상 할당과 보상이란 제도를 통해 감축 비용을 지원했다. 그러나 파리협정상의 1.5℃ 상승 억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EITE 산업에 지금까지 지원해오던 조치들을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할 입장에 처함에 따라 CBAM 도입 필요성이 다시 부상했다.

CBAM의 도입을 논의한 대표적 국가는 미국과 EU다.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트럼프 정부하에서 민주당 소속 일부 상·하원 의원들은 2017년과 2019년에 탄소국경조정과 연계된 법안을 두 차례 제출했으나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17년에 제출된 “The American Opportunity Carbon Fee Act”는 2018년에 탄소톤당 비용을 49달러로 책정하고 온실가스 배출 총량이 2005년 대비 80% 감소될 때까지 탄소비용을 매년 2%씩 인상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이 법안은 탄소비용 도입으로 피해를 받는 자국 EITE 산업 보호를 위해 국경조정비용을 도입하며 탄소가격이 미국보다 낮거나 없는 국가들로부터 수입되는 상품을 대상으로 했다. 조세 중립을 위해 탄소비용 도입 시 법인세율을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2019년에 제출된 법안은 “The Climate Action Rebate Act”로 2050년까지 2017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100% 감축한다는 목표하에 탄소비용을 톤당 15달러에서 시작해 30달러까지로 인상시켜가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수입 상품에 대해서는 탄소함유량에 따른 비용을 부과한다는 국경조정 내용을 담고 있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거나 속임수를 부리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국경조정비용 내지 쿼터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EU가 2023년 시행을 목표로 도입을 추진 중인 CBAM은 지난해 진행된 도입영향평가와 공공협의회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6월경에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EU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말 실시한 CBAM의 유형, 배출 범위(직·간접) 및 포함 우선순위 품목 등에 대한 공공 의견 수렴을 거친 바 있다.(그림 1)

Design options and coverage (그림1)
EU에서 논의 중인 탄소국경조정안

한국은 세계 주요 경제국들 중에 CBAM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국가다. 한국의 무역규모는 세계 7위이고 무역의존도는 63.5%로 주요 20개국(G20) 중 독일 다음으로 무역의존도가 높다.1) 한국의 CO₂ 배출량은 세계 7위권에 속하고 1인당 배출량 기준으로는 G20 국가 중에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캐나다 다음 순서인 세계 4위다.2) 한국의 10대 수출품목을 살펴보면 반도체, 석유제품, 자동차, TV, 철강, 합성수지 등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품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EU는 CBAM 유형으로 관세, 탄소배출권거래제 확대, 수입품 전용 배출권 신설, 소비세 등 4개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생각하는 탄소국경조정비용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어 EU 안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4개 유형에 대해 이해 관계자들의 선호도 편차가 크지 않음을 볼 때 EU 집행위는 기후행동 강화, 경쟁력 보호와 탄소누출방지 및 세계무역기구(WTO)와의 양립성 등에 중점을 두고 제도를 설계할 것으로 보인다. 배출원 구분(Scope)은 우리가 가장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다. 전력 시장의 독점성과 규제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간접 배출원(Scope 2)의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재생 내지 비화석 에너지로부터 나온 전기를 독립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EU가 CBAM 도입 시에 포함 배출원을 어디까지 확대하느냐에 따라 우리 수출품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CBAM에 포함되어야 할 10개 분야 중 전기부문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을 주목해야 한다. EU 의회에서는 경쟁국들이 EU 수출 상품 생산과정에 전략적으로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국가 전력산업 전체의 탄소집약도를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특정 국가가 EU 수출용 산업에 재생 내지 비화석 에너지에서 생산된 전기를 전략 공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한국이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사항은 에너지 믹스에서 석탄발전의 비율을 ‘2050 탄소중립’ 목표에 맞추어 과감하게 줄여가면서 CBAM을 가급적 양자보다는 다자 외교 무대에서 다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1) 2019년 통계 기준(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참조)

2) 2018년 배출량 기준, GCP자료

탄소중립 위한 강력한 다자 외교 이니셔티브 필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취임과 동시에 파리협정에 복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잃어버린 기후 외교의 주도권 회복을 위해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들을 중심으로 기후정상회의를 개최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오바마 정부에서 2015년 파리협정 타결에 핵심적 역할을 한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을 대통령 기후특사로 임명했다. 2020년 12월 말 브렉시트(Brexit) 협정 타결로 EU와 결별한 영국 정부는 알록 샤르마 전 에너지·산업장관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6) 의장으로 임명하고 내각회의에 참석하도록 했다. 이는 영국의 기후행동 선도국 지위를 계속 유지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올해 G7 의장국, COP 26 의장국인 영국은 미국, EU와 함께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강력한 다자 외교 이니셔티브를 취해갈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행동 강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일부 국가의 무임승차로 인한 경쟁력 왜곡, 탄소 누출과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CBAM은 글로벌 탄소시장(Global Carbon Market) 도입과 함께 앞으로 개최될 기후정상회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G20 국가 중 어려운 여건하에서 가장 의욕적인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한 한국의 적극적 대응이 요구된다. 코로나19 위기를 뉴딜 정책으로 극복해나가는 대전환의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피력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