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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탄소국경조정세의
충격에 대비하라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올해 유럽연합(EU)에서 탄소국경조정세(Carbon Border Adjustment Tax·이하 탄소국경세)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한다는 계획이 이미 지난해 말에 발표되었고, 이어서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6월 말 이전에 탄소국경세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최근 EU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상당수가 탄소국경세를 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의 취지는 탄소 누출을 억제하겠다는 것이지만 코로나19로 위축된 EU블록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탄소국경세 도입은 더욱 가속되는 분위기다. 탄소국경세 도입 이후의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에너지·석유기업 사우디아람코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전2030 국가변환계획과 발맞추어 2030년까지 9.5GW의 재생에너지 시설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선언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어떠한 형태이든지 간에 탄소세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산업계 측근 인사들은 코로나19 이후 인프라 재건을 위한 재원 마련에 협조하는 방식을 논의하면서 탄소국경세를 주목하기도 했다. 바이든 신행정부의 출범에 발맞추어 독일 녹색당은 유럽연합(EU)과 미국이 합동으로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과 EU에 수출되는 재화에 탄소세가 부과된다면 이들의 자국 내 산업은 보호받고 수출국에는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탄소국경조정 이슈, 산업보호와 무역전쟁에 집중

흥미로운 것은 탄소국경세와 관련된 뉴스 기사의 상당 부분이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EU와 미국 내 산업보호와 무역전쟁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1월 미항공우주국(NASA)은 지난해 연평균 기온이 1951∼1980년 평균 기온보다 섭씨 1.02도 더 높았다고 발표했다. 이는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된 2016년과 비슷하거나 이보다 약간 더 높은 수준이다. 2001년 이후 거의 매해 가장 뜨거운 해를 기록하고 있는 셈인데, 이미 기후변화의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섰다는 경고다. 탄소국경세는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강력한 정책수단인 동시에 무역전쟁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기후변화 정책과는 결이 다르다.
그럼 왜 지금 탄소국경세를 필두로 한 탄소전쟁이 점화되는 것일까? 긴 설명을 짧게 하자면 이렇다. EU와 미국은 온실가스 감축과 저탄소 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EU는 이미 과거 20년 동안 꾸준히 저탄소 사회로 이행했으며,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도 성공적으로 이행하였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 이후 온실가스 감축의 가능성을 보았으며,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투자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EU와 미국은 탄소발자국이 높은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그대로 인정할 경우에 자국 산업이 지속적으로 위협받을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하였다. 독일 녹색당은 세계 무역에서 중국의 권위적인 헤게모니 열망에 대한 민주적 대안으로서 탄소국경세를 제안하였다. 미국 역시 탄소국경세를 일종의 무역정책으로 인식할 것이다.
EU가 추진하는 탄소국경세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 그간 알려진 보편적인 규칙은 EU로 재화가 수입될 때에 생산지에서의 탄소비용과 EU에서의 탄소비용 차이를 고려해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를 시행하는 EU의 온실가스 배출규제 수준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EU로 수출하는 재화에 탄소국경세가 부과될 수 있다. 만일 A국가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다면 그에 해당되는 탄소비용만큼을 탄소국경세를 시행하는 B국의 수입관세에서 면제받을 수 있다.

한국,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시행 중

다행히 우리나라는 이미 2015년 1월부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EU 탄소국경세에서 그만큼의 비용을 차감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8년에 주요국의 탄소가격갭(Carbon Pricing Gap)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탄소가격갭은 현실에서의 탄소비용이 이상적인 탄소비용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서, 어느 국가의 탄소가격갭이 클수록 그 나라에 적용되는 탄소세나 배출권거래제의 수준이 이상치보다는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43%로서 프랑스의 41%, 영국의 42%와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일본이 69%, 미국이 75%를 기록한 것을 감안할 때, 이처럼 탄소가격갭 비율로 탄소국경세가 적용된다면 우리나라에는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겠으나 현재로서는 무엇 하나 확실하게 단정할 수 없다. 향후 EU와 미국의 탄소국경세 도입 시 탄소비용 평가가 논쟁이 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비해 국내 탄소비용 관련 제도를 재정비하거나 검토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간접배출을 어떻게 할지가 검토돼야 한다. 전기와 열 에너지를 이용하여 간접배출하는 할당대상업체를 대상으로 간접배출계수를 적용해 배출허용량을 산출한다. 사용하는 전기소비량에 해당되는 온실가스의 간접배출 수준을 알 수 있다. EU나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독특하게 운용되고 있는 이 간접배출계수는 탄소국경세 도입 시 할당대상업체의 전기 및 열 에너지 소비에 따른 탄소비용을 용이하게 계산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장점을 갖고 있지만, 이 계수로 과연 서로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 할당량 한도가 불변인 이상 간접배출계수가 낮아지면 할당량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EU나 미국 입장에서 탄소비용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게 된다. 더욱이 EU와 미국이 서로 탄소국경세를 연계하고 국제적인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을 형성하고자 한다면 우리나라의 간접배출계수는 국제적인 표준에 맞춰 폐지되는 방향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탄소국경세 도입에 대비해 전력시장과 배출권시장과의 연계 역시 선진적이고도 표준화된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이는 비단 탄소국경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내적인 이유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국내 전력시장은 전력요금 규제 차원에서 배출권 비용을 발전사와 한전이 부담하며 전력소비자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운영되었다. 지난해 12월 17일 확정 발표된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에 따라서 소비자에게 분리고지하기로 한 ㎾h당 0.5원의 탄소비용은 그만큼의 소매요금 인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의 탄소비용을 나타낼 뿐이다. 전력시장에서의 탄소비용이 이처럼 시장에서 제대로 흐르지 않는다면 이후 탄소국경세 관련 무역협상에서 복잡한 비용 조정 이슈에 직면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간접배출계수의 인정 여부에 따라 탄소국경세 논의가 예상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는 변수도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국내 배출권거래제 메커니즘에 관해 국제사회에서 납득될 수 있는 수준의 논리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탄소국경세는 전 생산공정에서의 탄소배출을 고려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소경제로의 이행 시 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격용량 기준으로 2020년 20.1GW에서 2034년 77.8GW의 큰 폭으로 증가하는데,
이중 태양광과 풍력이 각각 58.6, 32%로 전체의 90.6%를 차지할 전망이다.

철강산업, 신기술 시장 개척 위한 수소투자 확대

앞서 탄소가격갭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양호한 상태라고 했지만, 정작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면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구조의 특수성으로 볼 때 취약한 상황임은 분명하다. 마침 선제적으로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정책이 추진되고 있기에 이에 발맞추어 산업경쟁력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EU 집행위원회는 어떤 업종이 탄소국경세의 집중 대상이 될지 세부내용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EU에서 탄소 누출 업종 산업이 탄소국경세 적용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여기에는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펄프 등이 포함된다.
최근 들어 국내 철강기업은 온실가스 배출규제 강화에 전략적 차원에서 대응하고 신기술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수소투자를 늘리고 있다. 수소 기반 제철공법을 적용, 확대함으로써 저탄소 산업으로 변모하는 노력을 기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철강기업 티센크루프는 석탄 대신 재생에너지를 거쳐 생산되는 수소를 이용한 탄소중립 제철소를 건설할 것이라고 지난해 발표한 바 있다. 2025년 완공되면 연간 40만 톤 생산능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그린 철강’이 생산되는 것인데,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수소 제철공법으로 생산하되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서 수소 원천을 재생에너지로 확보하는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석유화학산업,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탄소국경세에 취약한 또 다른 대표적인 업종으로는 석유화학 산업을 들 수 있다. 이미 글로벌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하면서 굴뚝산업에서 탈피하는 이미지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심지어 대표적인 국영 석유기업인 사우디아람코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전2030 국가변환계획과 발맞추어 2030년까지 9.5GW의 재생에너지 시설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옵션은 그리 많지 않다. 에너지효율 개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탄소국경세 대비해 추가적인 투자편익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탄소 포집·저장(CCS) 기술에 대한 투자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지리적으로 탄소의 저장시설에 대한 대안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 역시 도전적인 과제다. 조만간 생산이 종료되는 동해1 가스전의 지하공간에 저장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향후 국내 CCS 사업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탄소국경세 관련 무역협상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석유화학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통계를 정밀 검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한국 기술수준을 반영한 적합한 몰입계수를 공인받는다면 이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위 예에서 보듯이 탄소국경세는 전 생산공정에서의 탄소배출을 고려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소경제로의 이행 시 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격용량 기준으로 2020년 20.1GW에서 2034년 77.8GW의 큰 폭으로 증가하는데, 이중 태양광과 풍력이 각각 58.6, 32%로 전체의 90.6%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처럼 확대되는 재생에너지에서의 전력으로 수소경제나 전기자동차 등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대한 투자도 증대해야 한다.

항공산업, 바이오연료 항공기 상용화 선언

탄소국경세가 시행되면 항공수송 시 국가 간 탄소비용을 반영해 세금 형태로 부과될 수 있기 때문에 항공산업 역시 대비해야 한다. 현재 상업용 비행기는 글로벌 배출량의 약 2%로서 수송부문 배출량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이미 국제항공 탄소상쇄 및 감축제도의 이행을 의결한 바 있다. 1kg의 항공유가 연소될 때에 3.16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바이오 혼합이 중요한 옵션인데 그동안에는 항공업계가 바이오연료 생산공장의 비용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보잉사가 2030년까지 100% 바이오 연료를 사용하는 항공기를 상용화하겠다고 선언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메이저 항공사의 전략도 바뀌고 있어 국내 항공사도 전략적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업종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 그리고 금융과 소비 섹터가 탄소국경세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과 EU의 연합으로 형성된다면 이는 중국과 러시아, 인도의 반대 진영과의 무역전쟁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탄소국경세가 전방위적으로 시행되기보다는 탄소 누출에 취약한 업종 중심으로 우선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어찌되었든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한 우리나라지만 경제도 살리고 넷제로를 실현하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전략을 함께 갖춰나가야 한다. 동일하게 탄소중립을 선언한 미국, 중국 등은 자국 산업의 육성 계기로 삼는 탄소중립 전략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산업경쟁력 강화와 국가성장 관점에서 경제 강대국과의 탄소전쟁 준비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집 용어 정리

배출권거래제(Emission Trading Scheme)
교토의정서 제17조에 규정돼 있는 온실가스 감축체제.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사업장을 대상으로 연단위 배출권을 할당해 할당범위 내에서 배출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할당된 사업장의 실질적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가하여 여분 또는 부족분의 배출권에 대하여는 사업장 간 거래를 허용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2015년 1월 1일부터 시행 중이다.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
2019년 12월 출범한 새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향후 EU를 이끌어갈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제시.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달성이라는 친환경 목표 안에 에너지 탈탄소화. 지속가능한 사업, 건축·운송 분야 에너지 효율성 강화, 식품안전, 생물다양성 등 다양한 정책안을 제시했다. EU는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탄소국경조정세 및 탄소배출권거래제 확대 추진을 발표했다.

탄소세(Carbon Tax)
탄소세는 CO2 톤당 부과되는 세금으로서 온실가스의 외부비용을 내부화한다는 의미에서 도입된다. 대부분의 경우 탄소세는 국내 생산기업에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