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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부상한 탄소

구은서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경제활동은 인류에게 전례 없는 발전과 풍요를 가져왔지만 화석연료가 내뿜은 탄소는 기후위기를 앞당겼다. 각국은 탄소배출권거래제 등 탄소에 가격을 매기기 시작했다. 나아가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은 탄소 배출량이 많은 상품이나 국가에 추가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 오명을 듣고 있는 한국에게 탄소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위대가 2020년 11월 4일 수요일 워싱턴 DC에서 민주주의와 기후변화 인식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행진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는 종종 ‘과장된 공포’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이는 기후변화 대응의 속도를 늦추는 작용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기후변화는 사기”라며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른 협정(이후 파리협정)을 탈퇴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 등 각국에서 이상 기상현상이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를 기후위기의 징후로 받아들였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시작한 등교 거부운동도 도화선이 됐다.
결국 2018년 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총회에서 195개국 만장일치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승인했다. 보고서는 “지구 온도가 산업화 대비 1.5℃ 이상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U·미국은 탄소국경세 도입 추진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을 상계해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2017년 스웨덴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유럽연합(EU)은 물론 중국과 일본도 탄소중립을 약속했다. 한국도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 선언을 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1차적으로 국가 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게 급선무다. 탄소를 포집·저장·활용(CCSU)하는 기술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각국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정책들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유럽이 주도하던 탄소저감 논의에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합류하면서 기후변화가 새로운 패권 경쟁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미국 내 최대 자동차 시장인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처음으로 2035년부터 휘발유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중국은 자동차 주요 생산국 중 처음으로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기후변화 대응은 물론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탄소 배출이 많은 상품이나 국가에 추가 세금을 부여해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EU는 2023년을 목표로 탄소국경조정세(탄소국경세)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조 바이든 신임 미국 대통령도 후보 시절 탄소국경세 도입을 공약한 바 있다. 이는 탄소중립 이행에 소극적인 국가나 기업이 ‘무임승차’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기업들이 개발도상국 등 상대적으로 환경규제가 약한 국가로 생산시설을 이전해 규제를 피하는 ‘탄소 누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탄소 관문을 세우겠다는 취지도 있다.

개도국, 사다리 걷어차기 반발

하지만 이 같은 시도는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싸고 효율적인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못하면 개발도상국들은 경제발전에 속도를 내기 힘들다. 게다가 현재까지 축적된 온실가스는 앞서 산업화를 이룬 선진국들의 책임이 크다.

실제 통상분쟁도 일어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19년 EU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EU가 “야자수 산업이 커지면 야자나무를 심기 위한 삼림 벌채가 심해진다"며 2030년까지 야자유가 원료인 차량용 바이오연료의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EU가 바이오연료를 퇴출하면 세계 야자유의 절반가량을 생산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경제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인도네시아는 “수백 년 전에 역내 삼림을 대거 없앤 유럽이 이 같은 조치를 내놓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며 맹비난했다.
한국도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은 1990년부터 2017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정부가 세운 감축 목표도 번번이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오는 6월까지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내놓고 산업·에너지·수송·건물 등 각 분야에서 탄소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논의하기로 했다. 다만 탄소 저감을 위한 탄소세 신설, 경유세 인상 등은 추후 논의할 과제로 미뤄둔 상태다. 세금이나 부담금이 늘어날 경우 서민경제에 추가 부담을 피할 수 없다. 세부적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 특성상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주요 수출대상국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경우 한국의 추가 부담이 2030년 한 해에만 1조8,7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 로드맵 대비 초과율 (단위: %)

총배출량
3.5
전환
6.7
산업
-1.7
수송
7.3
건물
5.0
공공
11.8
폐기물
12.7
농축산
6.4
**2018~2019년 평균치임(감축 로드맵 상 목표치는 2018~2020년 평균). 자료: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