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에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 정권은 새로운 자본주의, 외교·안전보장, 재해대응 등을 키워드로 ‘코로나19 극복과 신시대 개척을 위한 경제대책’을 세웠다. 재정지출을 통해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대규모 경제부양책이다. 공급망 재편,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으로 지역에서부터 변혁을 일으켜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사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나아가 외교와 안전보장 역시 일본의 국익을 지켜야 한다는 보편적 가치를 기본으로 일본의 통상과 산업 분야에서 새롭게 협력을 강화해야 할 지구 단위 규모의 대응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글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사진한경DB
2020년 5월 24일 혁신과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열린 ‘일·아세안(ASEAN) 비즈니스 위크’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가지야마 히로시 당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아세안이 직면한 사회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일본 기업들이 비즈니스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일본과 아세안 간 협력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 변화를 기대했다. 실제로 일본은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 비중을 줄이고 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 등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는데, 일본 제조업의 현지법인 기업 수를 국가별로 살펴보면 이러한 경향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즉 2010년을 전후로 정점에 달했던 중국 내 일본 기업 증가 추세는 서서히 완만해지는 반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법인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요 생산거점도 옮기고 있어 일본이 중국 이외의 아세안 지역을 주요 공급망에 추가하는 ‘차이나플러스원(China Plus One)’ 경영전략을 통해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일본의 공급망이 흔들린 요인 중 하나로 중국에 대한 높은 수입비중을 들 수 있는데, 의류 등 노동집약적인 소비재뿐만 아니라 기기부품 등 중간재 수입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일본 수입시장에서 중국 점유율이 높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대(對)중국 무역 제재에 일본이 동참하면서 점점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반대로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 등의 점유율이 상승하는 등 제조 거점의 재배치, 공급망 재편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동차 부품의 경우 일본 내 한국 제품의 점유율이 완만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아울러 일본은 아세안과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2050년 탈탄소 중립 그린성장’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아시아에너지전환이니셔티브(AETI)’라는 목표를 세우고 아세안 회원국들이 탈탄소 사회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에너지 시장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한층 강화해 대규모 수요가 예상되는 아시아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 및 지속 가능한 성장도 일본의 주요 통성정책 이슈 중 하나이다. 우선 일본은 일본열도 전체를 스마트 아일랜드화(smart island)하고 디지털과 그린화를 동시에 달성하며 소사이어티 5.0(Society 5.0)이라는 4차 산업혁명을 성공시키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즉 디지털 전환을 통해 공급망을 관리하는 한편 공급망 재구축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을 결합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제무역 절차를 개선하기 위해 일본 대기업 11곳이 공동으로 출자 및 관여한 트레이드왈츠(Tradewaltz)라는 무역 플랫폼(무역 관련 통관 정보 공유)을 활용해 무역에서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또한 기업의 원활한 정보 공유 및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디지털청을 설치(2021년 9월 1일)하고 ‘데이터 거버넌스’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업 간 투명한 정보 공유와 사이버 보안 강화에 중점을 두고 부족한 디지털 인재를 확보하고자 노력 중이다.
한편, 지속가능 성장과 관련한 글로벌 시장이 확장되고 환경·사회·거버넌스(ESG) 개념이 보편적으로 인식되면서 일본 정부의 경제 체질 개선정책에 따라 이와 관련한 투자도 활성화되고 있다. 또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비즈니스로 승화하는 기업이 늘수록 지속가능성 시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 일본 내에서는 ESG 투자에 대한 목적의식과 운용방침, 체제 정비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향후에는 일본이 디지털과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아세안 국가와의 협력을 확대하면서 지역 내 전반적인 통상환경을 재편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일본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통상정책이 주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2002년 1월 싱가포르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시작으로 2022년 1월 기준 24개 국가 및 지역과 21개의 FTA를 체결 또는 발효한 FTA 선진국으로 도약했다(일본은 FTA보다 경제동반자협정(EPA;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최근에는 일본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으로 경제연대 협정에 따른 무역원활화를 추구하는 한편, 일본의 지방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해외기업의 유치 또는 매칭을 지원한다.
우선 CPTPP는 보호무역 기조를 갖고 있던 미국의 트럼프 정권이 2017년 1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한 이후 일본이 주도권을 갖고 2018년 12월 CPTPP를 발효하면서 일본은 이제 전 세계를 무대로 무역 측면에서 유리한 고지에 다가섰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일본, 아세안, 호주 및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 올해 발효한 세계 최대 규모의 FTA인 RCEP은 일본 전체 교역의 46%에 해당할 만큼 거대한 통상 영역이다.
RCEP은 한국과 일본이 맺은 첫 번째 FTA라는 점, 양국의 무역 및 경제 관계에서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두 나라에게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양국 간 관세 철폐로 인한 국내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경제효과를 가져와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일본의 대(對)한국 직접투자는 2019년 한·일 갈등으로 야기된 수출규제조치 이후 매년 감소 추세를 보여왔지만, 이제는 양국에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고, 또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전환되면서 투자뿐만 아니라 통상과 인적교류도 장기적으로는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의 통상정책이 기본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볼 때, 우리 역시 마찬가지 기조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한·일 간 역사갈등이 원인이 돼 양국의 경제와 통상에 미치는 악영향이 극에 달한 2019년의 기시감이 불편하다면, 앞으로는 최대한 일본과 공존할 부분을 찾아내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일 양국의 경제관계는 보편적이면서도 경쟁적 관계를 유지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양국이 통상마찰을 통한 갈등보다는 서로 윈윈해 아시아 지역에서 모두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통상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다자·양자 간 새로운 규범 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경제산업성 경제산업대신
일본의 통상정책을 총괄하는 정부기구가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하는 경제산업성이다. 2001년 1월 6일, 중앙성청 개편 당시 통상산업성을 폐지하고 경제산업성을 새롭게 설치했다. 경제산업성에는 상(相)으로도 불리는 대신 1명을 비롯해 부대신(차관급)과 대신정무관 각각 2명, 그 외 총 7,970명의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대신은 이곳의 수장이다.
도쿄도 하치오지(八王子) 출신의 하기우다는 2021년 10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가 일본의 제100대 총리로 선출되면서 경제산업상으로 임명받았으며, 아베 정권하인 2019년 문부과학상 당시에는 코로나 위기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미래 예측이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원천을 인재육성과 과학기술에 있다고 보고 이에 주력했다. 경제산업상으로 임명 후에는 에너지 정책과 후쿠시마(福島)의 부흥, 그리고 코로나19로 지쳐 있는 일본 경제를 재생시키기 위해 중소기업에게는 정부계 금융기관을 통해 무이자 무담보 융자를 지원하는 한편, 하청업자들에 대한 원청기업들의 갑질을 없애기 위해 하청거래적정화를 강화하고 있다.
하기우다는 일본의 통상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인 미국을 상대로 2021년 11월 17일, 도쿄에서 개최된 미·일 협의에서 캐서린 타이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미·일 공통 글로벌 어젠다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제협력, 그리고 미·일 양국의 통상협력 등의 이슈를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미·일 양국이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양자통상협력협의체’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이때 하기우다는 회담에서 “세계경제를 리드하는 일·미 양국의 경제적 협력관계 강화는 불가결하다”고 강조했고, 타이 대표는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경제환경과 비전에 대해 일본과 대화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하기우다는 일본의 통상과 경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개최한 국제에너지기구(IEA) 각료이사회에 출석해 긴박한 우크라이나 정세의 변화에 대해 30개국의 각료들과 개별적으로 회담을 가지면서 에너지안전보장과 기후변동대책 등과 관련해 활발한 논의를 진행하고 귀국했다. 그 외 온라인으로 열린 주요 7개국(G7) 무역장관회의에도 참석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해 G7 국가(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가 연대해 대응하거나 또는 다각적인 무역체제의 유지 및 강화를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의 개혁을 주도해나가려는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하기우다는 기자회견을 통해선 향후 러시아로부터의 석탄 수입 등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최종적으로는 수입하지 않을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 내 하기우다에 대한 평가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일본의 통상외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전 세계의 여러 채널과 네트워크를 통해 하기우다가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기우다의 이러한 발걸음을 볼 때 향후에도 큰 틀에서 변화가 없는 한, 미·일 양국의 강한 연대적 협력관계는 안보뿐만 아니라 통상과 세계경제 질서에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