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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식성’과 ‘다른 철학’이 원인 된 미·유럽 호르몬 쇠고기 분쟁

미국과 유럽의 공통점을 꼽자면 먼저 육식 중심의 식문화가 떠오르게 된다. 이들 나라는 그만큼 비슷한 식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과거 식재료의 무역문제로 충돌한 적이 많았고 닭고기 무역과 관련된 일화는 앞서 본지 103호에서 다룬 바 있다. 이번 호에서는 쇠고기 무역에서의 미국과 유럽 간 WTO 분쟁을 소개한다.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미국, 유럽 모두 육류 중심 식단이 많다. 그러나 이들은 ‘같은 식성’과 달리 육류 생산 방식에는 ‘다른 철학’을 고수한다. 예를 들면 유럽과 달리 미국은 천연과 인공의 성장촉진 호르몬을 사용해 소를 사육했는데, 사료는 적게 들이면서 소를 더 빨리 더 크게 키울 수 있는 데다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등에서도 널리 사용된 반면 유럽은 반대 입장이 확고했다. 특히 호르몬과 유아의 성적발육, 암 유발 등이 관계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유럽의 입장은 더욱 완고해졌다. 그 결과 1980년대 이사회 지침을 통해 성장촉진 호르몬을 사용한 동물에서 나오는 고기는 생산도 수입도 금지하게 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치료 목적의 천연호르몬 사용 제한 ②합성호르몬 사용 금지 ③호르몬 처리 동물 및 그 고기의 수입 금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러한 유럽의 조치로 인해 가축 사육에서 90% 비중으로 호르몬을 사용해온 미국은 수출이 막히고 큰 손실을 입게 됐다. 호르몬 사용이 안전하며 과학적으로도 많은 연구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고 맞서면서 시작된 이 논쟁은 1995년 WTO 출범 바로 이듬해인 1996년 미국·캐나다가 유럽을 제소하면서 분쟁화됐다.

국제기준과 과학적 근거의 중요성

WTO 식품동식물검역규제협정(SPS)에 따라 회원국은 자국 위생검역조치를 국제기준에 기초해 수립, 운영할 의무가 있다. 이에 미국과 캐나다는 유럽의 호르몬 쇠고기 금수조치가 국제기준에 기초하지 않고 과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WTO 1심의 검토 결과, 문제가 된 6개 호르몬 중 5개에 대해서 국제기준(Codex)이 존재했음에도 그 기준과 달리 잔류허용치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 유럽 조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됐다. 비록 2심 판단에서 국제기준과 자국 조치가 완전히 동일해야 하는 것은 아닌 걸로 번복됐지만 위생검역에서 국제기준의 중요성이 확인된 대목이다. 특히 국제기준이 없었던 나머지 호르몬 1종의 경우 유럽이 별도의 과학적 근거를 제출하지 않는 바람에 위반 소지가 확인됐다.
유럽은 자연 생성되는 천연호르몬과 성장촉진 호르몬, 합성호르몬과 천연호르몬, 소 사육에 쓰이는 성장호르몬과 돼지 사육에 쓰이는 항균성 성장촉진제들의 보호수준에 모두 차이를 두었지만 이에 대해 충분한 과학적 이유를 대지 못했다. WTO는 1심에서 이를 지적했는데, 특히 소에 쓰이는 호르몬과 돼지에 쓰이는 촉진제에 대해 유럽이 다르게 대응한 것은 스스로 경쟁력을 가진 돼지고기에만 의도적으로 유리한 대우를 한 것으로 위반 판결을 내렸다.

1) DS26: European Communities — Measures Concerning Meat and Meat Products (Hormones)

유럽vs 미국간 호르몬 쇠고기 분쟁1)

  1. 1981~1988 : 유럽,호르몬 처리 육류 생산 및 수입 금지 법안 제정 (이사회 지침)
  2. 1995 :WTO 출범
  3. 1996 : 미국·캐나다가 유럽을 WTO에 제소
  4. 1997 : 패널심(1심) 결과 회람, 미국·캐나다 상소
  5. 1998 : 상소심(2심, 최종심) 결과 회람, 유럽 패소인
  6. 1999 : 유럽, WTO 판결 이행 (위생검역조치 철회) 거부, WTO가 미국·캐나다의 유럽에 대한 양허정지 승인인
  7. 2003 : 유럽, 관련 규정 개정 후미국·캐나다에 보복조치 철회 요청, 미국·캐나다 거부
  8. 2004 :유럽, 미국·캐나다를 WTO에 제소
1) DS114: Canada - Patent Protection of Pharmaceutical Products(WTO 홈페이지)
경제와 안전, 양립할 수 있는 가치

유럽이 안전성을 이유로 내린 위생검역조치는 분쟁 패소로 이어졌으며 일각에서는 WTO가 자유무역이라는 경제적 가치에 더 무게를 두고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번 분쟁 외에 과거 새우-거북, 돌고래-참치 분쟁에서도 WTO는 환경과 같은 사회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가치에 중점을 둔 판결을 내려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두 가치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사이 시대도 많이 변했다. 자유무역을 하면서도 필요한 수준의 적절한 위생검역은 안전을 위해 필수다. 우리나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농수산물 현장검사소를 설치·운영함으로써 항생제·방사능 등 위험 요소에 대한 신속검사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식품무역에서 선제적 안전관리시스템이 아주 잘 구축돼 운영되고 있다. 물론 앞선 분쟁의 교훈처럼 우리도 위생검역에 대한 국제적 기준과 과학적 근거를 철저히 챙겨야 한다. 앞으로는 K푸드 열풍에 힘입어 우리 농수산물의 수출확대도 기대된다. 이미 많은 식품업체가 글로벌 생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해외로의 식품수출이 늘면 반대로 외국의 위생검역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된다. 역시 국제적 기준, 과학적 근거의 존재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자료 :『WTO SPS 분쟁 사례 연구』(KIEP, 생각쉼표&주)휴먼컬처아리랑), 『WTO 통상분쟁 판례해설(1)』(김승호, 법영사) 및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