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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커피 분쟁 바리스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1948년과 1995년 각각 발효된 GATT, 그리고 WTO 협정은 자유무역 중심의 국제통상 체제를 지향하는 통일 규범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바로 이 최초의 다자통상규범의 중심에는 무역에 대한 비차별 원칙이 자리하며, 수출국 간 차별을 금지하는 최혜국(MFN)대우는 그중에서도 핵심적이다.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차별이 난무하던 국제통상 환경을 통합하는 데 최초로 성공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은 비차별원칙을 근본 철학으로 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제1조에 최혜국대우 원칙을 명문화하고 있다. 요약하면 수출입 과정에서의 관세, 과징금, 그리고 그 부과방법, 그 외 모든 규칙과 절차 등 사실상 무역과정 전반에 걸쳐 수출국 간 편의·호의·특권·면제 등 모든 대우에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그리고 여기엔 한 가지 중요한 단서조항이 붙는데 바로 ‘동종 상품(like product)’에 한정해 적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유럽연합(EU)산과 미국산 간 동급의 승용차 관세는 차별할 수 없으면서도 EU산 승용차와 미국산 쇠고기 관세는 차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은 예다.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커피 수입과 관련해 바로 이 차별금지의 최혜국대우 원칙이 논란의 중심이 됐던 분쟁이 있다. 이제 커피는 대표적인 기호식품의 하나가 되었고 카페에서 주문 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원두를 전문적으로 꼼꼼하게 고르는 소비자의 모습 역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최혜국대우 원칙과 관련된 스페인과 브라질 간 커피분쟁에서는 원두 감별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스페인의 구 스페인령 우대에 발끈한 구 포르투갈령 브라질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피식민지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무역에서의 특별대우, 즉 특혜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은 식민지 경영 당사국의 자연스러운 양심 가책의 결과일 수 있다. 무적함대를 통해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스페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GATT에 참여 중이던 스페인은 커피 수입 시 특별한 구분 없이 통일된 양허관세율을 책정하고 있었는데 이후 양허 변경 과정에서 구 스페인령 국가에서 수입되는 볶기 전 마일드 커피에는 무관세 특혜를, 구 포르투갈령인 브라질에서 수입되는 볶기 전 아라비카 및 로부스타 커피에는 7%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브라질은 당연히 반발했는데 특히 수출국 간 동종 상품에 대해 모든 무역 관련 차별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최혜국대우 원칙 위반을 문제 삼았다.

스페인과 브라질 간커피 분쟁

  1. 1979.7: 스페인, 커피 관세에 대한 개정법안 제정
  2. 1979.9 : 브라질, 스페인 개정법안에 이의 제기
  3. 1980.3 : 브라질·스페인 협의 개시
  4. 1980.6 : 브라질, 스페인과의 협의 실패 및 GATT 패널 설치 요청
  5. 1980.10 : GATT 패널 설치
  6. 1980~1981 : GATT 패널심 진행 및스페인 패소
  7. 1981.6 : GATT 패널보고서 채택
바리스타 없이 진행된 커피 원두 분류 논쟁

GATT 최혜국대우 조항에서는 동종 상품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지 않았기에 브라질과 스페인의 주장은 서로 엇갈렸다. 브라질은 마일드나 아라비카나 로부스타 모두 동일 관세대분류를 가지고 있기에 동종의 상품이라고 주장한 반면, 스페인은 향과 맛 등 소비층과 시장을 가르는 특징이 마일드와 아라비카, 로부스타 간에 존재하므로 동종 상품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GATT에서는 2심제 운영의 세계무역기구(WTO)와 달리 패널 1심이 곧 최종심이기 때문에 당시 첫 판결이 굉장히 중요했다. 패널은 스페인 외 다른 어떤 국가도 커피 원두의 종류에 따라 관세율을 달리 부과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커피는 원두에 관계없이 ‘음료’라는 최종 목적을 가지는 통일성을 가진다고 했다. 게다가 볶기 전의 커피 원두는 대부분 여러 종류가 혼합된 상태로 거래된다며 스페인의 주장처럼 엄격히 구분된 소비층과 시장을 갖지도 않는다고 봤다. 끝으로 생산지, 경작 및 가공방법, 종자의 차이가 있고 그것이 맛과 향의 차이를 유발한다고 해서 차별적인 관세까지 적용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2022년 분쟁이었어도 결과 같았을까?

과거 패널의 판결처럼 커피는 원두에 관계없이 ‘음료’라는 최종 목적을 가진다. 2022년 현재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커피가 확실한 기호식품으로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이제 많은 커피 소비자는 인도네시아 만델링(아라비카), 콜롬비아 수프리모(마일드) 등 자신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소비하는 전문가 수준으로 올라섰다. 오늘날 동일한 커피 분쟁이 발생해도 과거와 같이 구분 없는 최혜국대우 원칙이 적용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와 비교해 커피의 소비층과 시장은 확실히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자료 :『WTO상품무역법』(정찬모, 박영사), 『국제경제법 기본조약집』(박덕영, 박영사) 및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