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werEU #환경규제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새로운 냉전체제 우려 속
유럽의 에너지 공급망 재편 계획

러·우 사태는 유럽의 안보환경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냉전체제가 도래했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영역에서도 세계화의 전격적인 후퇴 가능성이 높다. 미·중 패권경쟁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약해진 글로벌 공급망이 재차 흔들리게 된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국제적인 에너지 공급망에 큰 타격을 가했고,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는 치솟는 물가에 직면해 있다.

강유덕 한국외대 LT학부 교수사진한경DB

지난 5월 18일 덴마크 에스비에르에서 덴마크와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등 북해와 연한 유럽 4개국이 정상회담을 갖고 2050년까지 해상 풍력발전 규모를 현재의 10배로 늘리는 데합의했다. 왼쪽부터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

유럽연합(EU)의 에너지 공급망이 위협을 받으면서 대대적인 재편을 앞두고 있다. 유럽은 본래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지역이다. 노르웨이, 영국 등이 북해에서 원유를 생산하지만 유럽 전체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EU는 전체 에너지 수요의 25% 정도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해왔다. 따라서 EU·러시아 관계의 악화는 유럽의 에너지 안보에 큰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러시아는 세계적인 에너지 생산국이다. EU의 에너지 수입 중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천연가스 41%, 석유 27%, 석탄 47%에 달한다. 즉 유럽 경제는 러시아의 에너지 없이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힘들다. 이러한 물량을 당장 대체할 수 있는 수입원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 입장에서도 유럽은 대체가 어려운 시장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중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석유 49%, 천연가스 74%에 이른다. 이러한 불가분의 수요·공급자 관계는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경제관계가 유지되는 배경이 됐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름(크림)반도 병합 직후 EU는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했고 러시아도 맞제재로 응수했다. 그래도 에너지 분야만큼은 상호간에 건드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EU·러시아 무역이 에너지 수입, 수출 위주의 구조를 갖게 된 것은 동서 냉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유럽 정부들은 옛 소련(이하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에서 소련과 협력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마침 등장한 소련의 천연가스는 동서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됐고, 1970년대 초부터 소련산 천연가스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EU의 탈러시아 에너지 계획 ‘REPowerEU’ 발표

러시아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대부분의 EU 회원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EU 탈퇴 후 2년 차에 접어든 영국은 더 적극적이다. 러·우사태 직후부터 EU는 총 6차례에 걸쳐 대러시아 제재를 발표했다. 주목할 점은 이 제재조치의 일부로 포함된 탈러시아 에너지 계획이다. 지난 3월 8일 EU 집행위원회는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하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 ‘REPowerEU’를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EU는 우선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와 석탄 수입을 중단하고, 늦어도 2030년까지는 천연가스 수입조차 중단하게 된다.
실행방안을 살펴보면 단기적으로는 중동, 미국 등으로 수입선을 전환하고, 중기적으로는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같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러시아산 가스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을 늘릴 수도 있다. 또한 효율성을 높여 화석연료 소비량 자체를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EU의 탈러시아 에너지 계획을 급조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한 러시아가 선별적인 에너지 공급 유지와 중단을 통해 유럽을 분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반면에 EU는 꾸준히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늘려왔다. 가령 1990년 전체 에너지 사용량 중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5% 미만이었으나 2020년에는 17% 이상으로 증가했다. 특히 EU는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에 따라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적으로 다양한 영역의 정책을 조율하고 있다. EU의 탈러시아 에너지 계획은 유럽 그린딜을 가속화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에너지 공급망 재편 속 환경규제 강화 우려

그렇다면 EU의 에너지 전환 계획은 글로벌 공급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첫째, EU는 단기적으로 에너지 수입원의 다원화를 시도할 것이며, 이 조치는 인프라 신설과 수송 네트워크의 재편성과 병행해 진행될 것이다. 기존 파이프가스(PNG) 대신에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항만에 LNG 터미널과 보관시설이 필요하며, 내륙국에 대한 수송을 위해 육로 운송시설 및 수송수단의 정비도 필요하다. EU 역내에 에너지와 관련된 인프라 건설 계획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중기적으로 재생에너지 생산의 확충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선 풍력·태양광 발전의 비중을 높일 것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고, 설비 증설이 진행될 것이며, 산업적으로 양산이 가능한 수소에너지 개발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셋째, EU의 탈러시아 에너지 정책은 세계 에너지 지형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또한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책이 결합되면서 EU의 환경 관련 규제가 더욱 강화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개발도상국의 규제순응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산업 구조조정 대비해야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과 EU는 기존 협력관계를 한층 강화함으로써 공동 대응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공급망 복원, 에너지 및 자원 안보, 보건 등 경제안보에 대한 인식이 강해졌다. 따라서 기존 무역·투자에 치우쳐 있는 교류관계를 좀 더 포괄적인 협력관계로 전환할 수 있다. 분야별 협력 이슈를 논의할 수 있도록 소통 채널을 최대한 다원화하되, 이를 유기적으로 결합·조정할 수 있는 포괄적 운용이 필요하다. 한·EU 기본협정(2014년 6월 발효)의 협력 조항들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공급망, 에너지, 보건, 희토류, 무역규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이니셔티브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한·EU FTA의 이행 기구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며, 동 FTA의 현대화(개정) 작업 시 관련 협력 조항을 신설할 수도 있다. 한편 EU의 에너지 전환 계획은 그 실행과정에서 막대한 인프라와 새로운 산업수요를 창출하게 된다. 에너지 운송을 위한 인프라 및 장비 증설, 선박 수요의 증가 등이 대표적이다. 풍력·태양광·수소 발전, 에너지 절감 기술에 대한 수요도 대폭 증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급충격은 중장기적으로 산업의 구조조정을 불러일으킨다. 중동지역의 불안이 계속되자 많은 국가가 대안으로 원자력,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린 바 있다. 또한 에너지 수입국을 다원화하고, 생산과 소비에 있어 에너지 효율을 강화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원자재를 둘러싼 국제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러·우 전쟁으로 발생한 공급충격에 대해 EU는 기존 그린딜 계획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생산환경의 변화는 산업의 구조조정을 앞당기고, 뜨는 산업과 지는 산업의 경계를 가를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 양측 모두 재편된 이후의 산업지형도를 예견하고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REPowerEU를 통한 탈러시아 에너지 계획
정책 분야 중점 Fit for 55를 통한 계획
(2030년)
REPowerEU 조치 2022년까지의 대체 계획
(단위: bcm 상당)
2030년까지의 추가 중단 계획
(단위: bcm 상당)
천연가스 다원화
(Gas Diversification)
비(非)러시아 천연가스 - LNG 전환 50(예상) 50
- 파이프 유입 다원화 10 10
재생에너지원 가스 바이오가스 17bcm:
소비 절감 17bcm
2030년까지 바이오가스 35bcm 생산 3.5 18
그린 수소 5,600만 톤: 9~18.5bcm 절감 수소 생산 확대 및
2030년까지 20mt 수입
- 25-50
전기공급 (Electrify Europe) 재생에너지원 가스 에너지 효율 조치: 38bcm 절감 난방온도 1℃ 하향을 통한 에너지 절약: 10bcm 14 10
지붕태양광 우선 설치: 연간 15TWh 2.5 조기 집행
신규 열펌프 3,000만 기설치: 2030년 35bcm 절감 향후 5년간 1,000만 기 설치 1.5 조기 집행
전력 분야 풍력 480GW, 태양광 420GW: 170bcm 절감 그린 수소 5.6mt 풍력, 태양광 20% 앞당기기: 가스 3bcm 절감, 2030년까지 80GW 증설 20 그린 수소 사용을 통한 절감
산업전환
(Transform Industry)
에너지 집약 산업 에너지원의 조기 전력화, 그린 수소 사용 혁신기금 활용 그린 수소와 조기목표 달성을 통해 가스 사용량 축소
※bcm: 천연가스 양을 나타내는 단위로 10억 입방미터를 의미
T R A D E  N E G O T I A T O R
통상을 이끄는 사람들

최초의 동유럽 출신 통상장관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Valdis Dombrovskis)
지난 2월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유럽연합(EU) 재무장관 비공식 회의가 열렸다. 이날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퇴출하는 문제가 논의됐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사진은 EU 재무장관 비공식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 맨 왼쪽이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통상 담당 집행위원이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Valdis Dombrovskis)는 2020년 10월부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통상 담당 집행위원(European Commissioner for Trade)을 맡고 있다. 통상 담당 집행위원은 미국, 중국, 그리고 EU에서 탈퇴한 영국과의 통상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직책으로 통상장관의 역할을 한다. 그동안 EU 집행위원회의 통상장관직은 프랑스, 영국, 벨기에, 스웨덴 등 서유럽 출신이 맡아왔던 자리로 동유럽 출신으로는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가 처음이다.
하지만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는 이미 2016년부터 EU의 금융 및 자본시장을 담당하는 장관직을 수행한 바 있으며, 유럽의회 의원도 역임하면서 EU 차원의 경력을 두루 갖춘 인물이다. 주목할 점은 돔브로우스키스 통상장관이 라트비아의 총리 출신이라는 점이다. 주로 국내 정치를 통해 EU 정계에 진출하는 서유럽과 달리 동유럽 정치인 중에는 국내와 유럽 차원의 정치 경력을 번갈아 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국의 크기가 작은 만큼 EU 차원의 경력이 정치 엘리트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체제전환을 겪은 동유럽에서는 서구식 국제 감각을 갖춘 젊은 엘리트가 급부상하는 경우가 많다. 돔브로우스키스는 독일과 미국에서 공학을 전공한 후 고국 라트비아로 돌아와 정계에 입문, 4년 만에 국회의원과 재무부 장관직(2002~2004)에 올랐다.

지난 2월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유럽연합(EU) 재무장관 비공식 회의가 열렸다. 이날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퇴출하는 문제가 논의됐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사진은 EU 재무장관 비공식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 맨 왼쪽이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통상 담당 집행위원이다.

이후 유럽의회(2004~2009) 의원직을 맡았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극심한 경제위기에 빠진 라트비아에서 30대의 나이로 최연소 총리(2009~2014)에 임명됐다. 당시 라트비아가 위기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영어와 러시아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4개 외국어를 구사하는 젊은 총리의 국제 감각과 강력한 추진력이 큰 몫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