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새우-바다거북 분쟁’ 사례를 통해 국제통상 관점에서 환경과 경제 사이의 딜레마를 확인한 바 있다. 두 가치 간 논쟁은 비단 어제와 오늘의 일이 아니며 오랜 시간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관련 통상분쟁이 하나일 리 없다. 또 다른 유사 ‘가치충돌의 딜레마’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의 판례를 살펴본다.
글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돌고래는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해양 포유류다. 특히 높은 지능으로 유명한데 이 때문에 한때 돌고래 쇼 등에 동원되어 세간의 많은 사랑과 비판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동물학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우리나라 수족관에 남아 있던 마지막 남방큰돌고래인 ‘비봉이’의 방류가 결정되기도 했다.
참치도 돌고래만큼 친숙한 생선이다. 우리가 회나 조림, 구이 또는 통조림을 이용해 찌개와 김밥 등의 재료로 즐겨 먹을 뿐 아니라 국내 수산물 수출의 최상위권 효자품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색참치가 가진 특수한 성질로 인해 통상분쟁의 단초가 만들어진 일이 있다. 신기하게도 황색참치는 돌고래와 함께 헤엄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돌고래가 있는 곳에 참치가 있고 참치가 있는 곳에 돌고래가 있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의미가 된다. 이 때문에 동태평양의 어부들은 호흡을 위해 수면 위로 멋지게 뛰어오르는 돌고래를 먼저 찾았고, 돌고래가 발견되면 대형 건착망을 통해 그 아래에 있는 참치를 대량 어획했다. 문제는 지난 ‘새우-바다거북 분쟁’ 때 새우를 잡다가 바다거북이 희생됐던 것처럼 이번엔 참치잡이 과정에서 돌고래가 혼획(bycatch)되고 희생되는 문제가 적잖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에 미국은 해양포유류보호법(MMPA)을 1972년에 제정해 돌고래 보호에 나선다. 해당 법은 ①동태평양 참치어선들이 혼획으로 살상할 수 있는 돌고래 개체수를 제한하고 ②미국 어선들의 돌고래 살상률을 기준으로 참치 어획 과정에서 그 이상의 돌고래를 살상하는 국가로부터의 참치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전 사례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 대한 수출 기회가 어떤 이유로든 제한된다는 것은 큰 경제적 손실을 의미하기에 보통 많은 반발을 사는데 이번엔 멕시코가 그러했다. 멕시코는 미국의 수입규제가 GATT 제11조(수량제한 철폐)와 제13조(수량제한 무차별 시행)에 위반된다며 미국을 제소했으며 WTO가 출범하기 전의 일로 GATT 패널이 본 분쟁을 담당했다.
GATT 패널은 본 사안이 수량제한보다는 비차별원칙과 관련된 제3조(내국민대우), 그리고 환경보호 관점에서 제20조(일반적 예외)로 따져볼 문제라고 해석했다. 미국은 참치의 판매, 수송, 유통 등이 멕시코 어선뿐 아니라 미국 어선에 대해서도 살상률을 기준으로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공평성이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패널은 멕시코산이나 미국산 모두 ‘참치’로 ‘동종상품’이 확실한 상황에서 ‘조업방식’을 이유로 멕시코산 참치가 수입규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정리하면 ‘제품’ 자체가 동종이면 내국민대우에 입각해 철저히 공평한 대우를 해야 하며 ‘공정 및 생산방법’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동종상품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제20조를 인용해 돌고래 보호를 위한 수입제한의 예외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미국이 동태평양을 대상으로 MMPA를 입법한 것은 미국의 영토관할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정당화될 수 없고 수입규제 외의 다른 방법을 통한 돌고래 보호를 적극 모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필요성 또한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 분쟁은 미국과 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과 맞물려 정치적 고려가 더해지면서 일단락됐지만 이후 유사 분쟁이 이어질 정도로 논란이 많았던 사례다. 역시 나중의 일이지만 ‘새우-바다거북 분쟁’에서도 같은 맥락의 판결이 나온 점을 생각하면 GATT가 WTO로 발전하기까지 약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환경과 경제 사이 균형 찾기는 난제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환경에 대한 우리 인식도 크게 제고됐다. 비용을 더 치르더라도 환경을 고려한 소비에 적극 참여하는 스마트 컨슈머가 늘어나는 것만 봐도 그러하다. 국제통상체제 역시 이에 따른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어업 과정에서의 남획에 대한 최근 WTO의 관심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