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발표하고 ‘유럽 기후법’과 ‘핏포55(Fit for 55)’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역내 배출권거래제(EU-ETS; Emission Trading System) 개선안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를 통한 역외 탄소 규제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일련의 입법 과정은 EU가 우위에 있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탄소중립 산업을 부흥해 제조업을 EU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EU 중심의 탄소중립 주도권 싸움은 에너지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등장하게 된다.
글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부교수
2021년 기준 유럽연합(EU)은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수입액이 전체 수입대금의 62.5%를 차지할 정도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다. 에너지 품목으로 보면 원유, 석유제품, 천연가스, 석탄 순으로 높으며 다량의 금속, 구리, 알루미늄, 니켈 등 원자재 수입도 상당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전반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즉 EU는 값싼 에너지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면서 EU 내에서 탄소 관련 생산을 줄일 수 있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인 파티 비롤(Fatih Birol)이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에너지 위기는 1970년대 석유위기와는 비견될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현재의 위기는 석유 위기임과 동시에 천연가스 위기이자 전력 위기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천연가스를 유럽에 40% 이상 공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EU는 역사적으로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 형태로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을 늘려왔다.
특히 독일은 전체 수입의 42.5%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관계로 러시아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다. 독일이 러시아와 각별한 사이를 추구한 것은 1970년대 냉전 이후로 경제적 이해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면서부터다. 즉 독일은 지멘스(Siemens) 등이 파이프라인을 깔아서 돈을 벌고, 러시아는 값싼 천연가스를 독일을 통해 EU에 공급하면서 서로 간의 불안한 공생관계를 유지시켜왔다. 독일은 탈원전, 탈석탄을 진행하면서 재생에너지 일변도의 친환경 정책을 추진했으며 값싼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이용해 탈원전과 탈석탄으로 생긴 전력 수급 미스매치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단적인 예로 독일에는 PNG를 대체할 천연가스 공급방식인 액화천연가스(LNG) 기화기지가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한 협력관계를 어느 순간 완전히 믿고 에너지 안보를 방기해버리면서 독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실패의 길을 걷게 된다. 현재도 독일은 원유와 천연가스를 일부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면서 러시아 전비 조달에 협조하고 있는 나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녹색당 출신 로베르트 하베크(Robert Habeck)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독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의 실패가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실토하며 독일의 실수라고 자인했다.
EU 내 에너지 요금이 가파르게 오르다 못해 폭발하는 수준이다. EU 내 천연가스 현물지수인 TTF는 2020년 최저점 대비 50배 정도 올랐다가 지금은 MM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양)당 50달러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천연가스 원가상승은 결국 전기요금과 난방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이미 독일, 프랑스 등은 10배 이상의 에너지 요금 인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올겨울은 얼어죽지 않기 위해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EU는 러시아 PNG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 위해 ‘REPowerEU’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러시아산 PNG의 3분의 2 정도를 대체하기 위한 계획으로 LNG 대량 수입, 재생에너지 확대 등 다양한 계획이 담겨 있다. 그러나 단기간에 실행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아니어서 현재 LNG 대량 구매 등을 통해 올겨울 에너지 재고 비율을 90%까지 채워 겨울을 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부족해 ‘Save gas for a safe winter’ 계획안을 통해 EU 국가들은 천연가스 소비량을 15% 감축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나라마다 상황이 달라서 15% 감축을 지키겠다는 국가와 그렇게 못하겠다는 국가로 나뉘어 EU가 사분오열하고 있다. 천연가스 위기로 철강공장 등이 문을 닫는 등 EU의 경제침체가 예상되고 있으며, 특히 독일은 약 –2.8%까지 경기하강을 보일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측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탈리아, 헝가리, 체코 등에서는 에너지 전환 정책의 실패로 인해 친러시아 성향의 극우정당들이 점점 세력을 키우고 있다.
EU의 에너지 위기는 EU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에게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치게 된다. EU가 평상시에 구매하지 않던 LNG를 대량으로 구매하기 때문이다. 이미 동절기 재고의 90%를 LNG를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채운 상태이며, 향후에도 상당량의 LNG를 구매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LNG 대량 수입국인 우리 입장에서도 물량경쟁을 넘어선 물량전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가격인상은 어쩔 도리가 없는 실정이다.
탄소중립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강화로 천연가스까지도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실정에서 지속적인 수급불안과 고가의 천연가스 시장은 당분간 판매자 우위를 보일 것이다. 이미 판매자들은 말도 안 되는 고가의 계약을 구매자에게 요구하고 있으며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자 기존 장기계약을 취소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향후 수년간은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세계 각국은 에너지 요금 인상, 에너지 소비 절약과 재정투입 등 다각적 대책을 강구하는 상황이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저소비-고효율’ 구조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제13대 EU 집행위원장(President of the European Commission)이다. 2019년 7월 EU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됐으며 최초의 여성 위원장이다. EU의 우선과제인 기후변화 대응, 4차 산업혁명, 민주주의 강화 등을 추진하는 데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유럽 그린딜, 유럽기후법, Fit for 55를 통해 탄소국경세 등을 도입해 탄소중립과 친환경 중심 산업재편을 이뤄 유럽의 경제 부흥을 이끌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폰데어라이엔은 1958년 벨기에에서 태어났으며 1971년 독일로 돌아와 괴팅겐대학교에서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1980년 하노버대 의과대학을 입학해 2002년까지 의과대학 교수를 지냈다. 1990년부터 기독교민주연합에 가입해 정치활동을 시작했으며 메르켈 정부에서 2005년부터 2019년까지 3부처의 장관을 역임하며 독일 내에서는 메르켈의 뒤를 이을 정치인으로 각광받고 있다.
EU 집행위원장으로서 명분상으로는 친환경 및 탄소중립 정책을 앞세워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EU 역내 국가와 기업들의 우호적인 이해관계만을 강화한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추진해온 EU 집행위원회의 탄소국경조정제도가 자유무역을 저해하고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는 다양한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수단 등을 발표하며 EU 국가들의 협력과 동맹을 강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나 EU 국가들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분오열하고 있어서 향후 EU 집행위원장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