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다룬 1991년의 ‘참치-돌고래 분쟁1’은 당사국인 미국(피소국)과 멕시코(제소국)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에 함께 참여하면서 정치적 고려가 더해진 결과 미국의 최종 패소에도 불구하고 판결문이 채택되지는 않았다. 이후 1994년 NAFTA는 성공적으로 발효됐지만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시대가 열리면서 양국은 같은 문제로 재충돌한다.
글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1991년 멕시코가 미국을 GATT에 제소하면서 문제의 원인으로 부상한 미국의 해양포유류보호법(MMPA)은 분쟁해결기구 패널의 판단상 미국이 국제통상 규범을 위반한 것으로 최종 판결났다. 비록 참치잡이 과정에서 혼획(bycatch)으로 희생되는 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는 하나 GATT가 지향하는 자유무역의 높은 기준에는 부합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난 셈이다. 각종 환경단체의 맹렬한 비난이 이어졌음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미국에게 돌고래 보호는 여전히 중요한 사안이었다.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환경보호의 가치가 퇴색될 수 없는 것이 이유다. 오히려 환경보호에 대한 목소리는 세월이 흐르면서 더 높아졌다. 이에 미국은 과거 GATT ‘참치-돌고래 분쟁1’ 패소의 쓰라린 기억에서 교훈을 얻은 덕분인지 이번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동일한 목표 달성을 도모하게 된다. 바로 미국 공식 규격의 ‘돌고래 안전(dolphin-safe)’ 라벨링 제도의 도입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라벨링은 법적으로 필수는 아니지만 미국 내 소비자에게 해당 참치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돌고래가 적절하게 보호됐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도였다. 공해에서 유자망을 사용하는 경우나 특정 해역 밖에서 건착망을 사용하면 라벨링 부착을 금지하는 등 제법 까다롭고 엄격한 기준을 정해 돌고래 보호에 진심인 미국인의 높은 소비 눈높이를 만족시켜주는 나름의 신뢰성을 가진 제도로 각광받았다. 라벨링이 없는 참치제품은 마치 환경보호에 미온적인 기업이 생산한 것이고 따라서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시장에서 불리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멕시코는 미국을 라벨링과 관련된 무역기술장벽(TBT) 위반으로 WTO에 제소하게 된다.
여러 쟁점 중 특히 주목받은 것은 전미열대참치위원회(IATTC)에서 채택한 국제돌고래보호제도협정(AIDCP)이다. 이에 따르면 일정 요건을 갖출 경우 건착망을 사용해도 돌고래 안전 라벨링이 허용된다는 사실이었다. 참고로 미국과 멕시코 모두 IATTC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멕시코는 AIDCP의 라벨링 기준에 비교할 때 건착망 사용을 완전 금지하고 있는 미국의 라벨링 조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주장했다. 라벨링과 같은 기술적 제도(기술규정)는 관련된 국제표준을 기초로 해 WTO 회원국 간 무분별한 제도 남발을 어느 정도 방지하도록 했는데(TBT협정 제2.4조)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멕시코는 미국의 라벨링과 국제표준(AIDCP) 간 상당한 괴리를 지적했고 미국은 AIDCP가 참고할 수 있는 수준의 국제표준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1심(패널)과 최종심(상소기구)은 양국의 의견 차이만큼이나 거리가 있는 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전자는 AIDCP가 행정과 제도, 특히 개방성, 투명성 등을 근거로 국제표준의 자격을 인정한 반면, 후자는 AIDCP 가입 과정에서 거치는 ‘초청’이라는 절차를 볼 때 모두에 대한 차별 없는 개방성이 인정되기 어려워 국제표준을 제시할 수 있는 기관으로는 부족하다고 판결,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쟁점들에 대한 판결로 이 분쟁은 미국의 최종 패소로 종결됐다. 미국 입장에서는 지난 GATT 분쟁 패소의 악몽이 재연된 셈이다. ‘참치-돌고래 분쟁1’에 한정하면 2연패지만 그전 ‘새우-바다거북 분쟁’까지 생각하면 경제-환경 통상분쟁에서의 3연패다. 결코 반가울 수 없는 해트트릭이다. 그러나 오늘날 환경을 무시한 생산활동은 분명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다. ESG 경영도 중요한 화두로 부상했다. 세상은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