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FTA)은 참여국 역내 관세철폐를 목표로 한다. 관세동맹(Customs Union)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역내 관세철폐는 물론 역외에 대해 공동 관세정책을 운영한다. 튀르키예는 아직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선 1995년 EU와 관세동맹을 체결했다.
글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튀르키예는 1970년 EU의 전신 격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을 시도했고 1987년 이를 공식 신청했지만 그 후 3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EU 회원국 자격을 얻지 못하고 있다. 2004년 후보국 지위를 얻었으나 최종 가입이 언제쯤 가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1995년 EU와 관세동맹이 체결된 것은 긍정적이다. EU와 역내 관세를 철폐하고 역외 관세정책까지 동일하게 운영하는 것은 경제적 관점에서 향후 EU와 함께 역내 생산요소의 자유이동을 보장해 우선 ‘공동시장(common market)’ 입지를 다지고, 궁극적으로 역내 공동경제정책의 수행과 초국가적 기구를 설치, 운영하는 ‘완전경제통합(single market)’으로 나아가는 교두보가 되기 때문이다.
관세동맹 체결은 튀르키예 입장에서 고무적이었다. 문제는 1996년 1월 1일 자국 관세와 EU 관세를 동일시하고 그 뒤 튀르키예가 EU를 따라 섬유에 대한 수입물량제한조치를 똑같이 실시하면서 인도의 반발을 사게 된 것이다. 인도는 일반 상품의 수입에 대한 수량제한과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GATT 제11조와 제13조, 그리고 섬유 및 의류에 대한 신규 수량제한조치를 금지하는 섬유 및 의류에 관한 협정(ATC)에 튀르키예의 정책 조치가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튀르키예는 EU와의 관세동맹과 이에 따른 정책 통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GATT 제24조로 이를 반박하고자 했다. 이에 동의할 수 없던 인도 측에서 1996년 3월 21일 세계무역기구(WTO)에 협의를 요청하면서 본건은 공식 제소됐다.
패널의 판단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인도에 대한 조치는 비교적 명확해 GATT 제11조와 제13조 위반에 해당했다.
또한 ATC 위반 여부를 따지는 과정에서 튀르키예는 자국의 조치가 신규 조치가 아닌 기존 EU 조치의 일부 변경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패널은 튀르키예가 조치의 신규 도입국가이므로 EU와는 별개의 새로운 조치가 맞다고 판단, 인도의 손을 들어줬다.
1심과 최종심 결과는 튀르키예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특히 상소기구는 튀르키예가 EU와 동일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관세동맹 체결에 반드시 필요했을지 여부를 중요하게 봤다. 만약 튀르키예가 동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EU의 조치를 피하기 위해 인도가 우선 튀르키예로 섬유를 수출, 인도산 섬유가 마치 튀르키예산인 것처럼 되면서 튀르키예가 EU로의 섬유수출 우회로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EU는 튀르키예와의 섬유무역을 역내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했을 것인데, 이 경우 튀르키예의 당시 EU에 대한 전체 수출 중 40%가 섬유류였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관세동맹이 이뤄지기 위해 “실질적으로 모든 교역(substantially all the trade)”을 자유화해야 한다는 제24조의 조건 충족이 어려웠을 것으로 봤다. 그렇기 때문에 튀르키예의 조치는 관세동맹 추진 과정에서 필요하고 정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상소기구는 튀르키예가 극단적인 섬유수입물량제한조치가 아니어도 원산지 규정 강화 등을 통해 충분히 EU의 우려를 해소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면서 튀르키예가 최종 패소하게 된다.
인도의 옷감인 캘리코(calico)는 16세기 유럽에 소개됐고, 폭발적인 사랑을 받게 된다. 18세기 영국에서 자국 동종 산업 보호를 위해 캘리코 수입을 금지했을 정도다. 이어 캘리코에 대응하기 위해 방직기와 방적기를 개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역으로 인도의 옷감 장인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됐는데 이때 간디가 직접 물레로 옷감을 짜 보이며 영국에 대한 비폭력 저항을 보여준 것은 제법 유명한 일화다. 튀르키예가 동참한 위 EU의 섬유수입물량제한조치는 이러한 인도·EU 섬유무역의 역사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인도는 국제기구인 WTO를 통해 평화적으로 비폭력 승소를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