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지역 기구 아프리카연합(AU)이 주요 20개국(G20)에 유럽연합(EU)처럼 회원국 지위를 달라고 요청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 12월 향후 3년 동안 아프리카에 무려 72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AU의 G20 가입 지지 입장도 공식화했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도 AU의 G20 가입 지지 입장을 밝힌 바 있어 AU의 G20 가입 가능성이 높아졌다.
글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진 한경DB
아프리카연합(AU)은 아프리카 대륙 내 55개 국가로 구성돼 있으며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약 2조 달러를 넘는다. AU와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G20에 AU가 EU와 같은 회원국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요청해왔다. G20에서 논의되는 다수의 주제가 아프리카 국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침에도 정작 참여 국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뿐이었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세계 문제와 위기에 관한 논의에서 자신들이 제외된 것에 대한 좌절감을 표명해왔다.
AU가 G20 정상회의에 처음 참여한 것은 2010년이다. 2017년 독일 비스바덴에서 개최된 ‘G20 디지털 금융 콘퍼런스’ 중 열린 G20 아프리카 자문그룹(Africa Advisory Group) 회의에서 ‘아프리카 투자 활성화’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독일 G20 회의에서는 아프리카에 대한 민간·인프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아프리카 협약(Compact with Africa)’이 채결되기도 했다.
G20 정상들은 전 세계 부의 배분을 통해 빈곤을 없애야 균형 있는 동반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 이를 통해 새로운 글로벌 경제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선진국이 개도국에서 시장을 넓히는 것과 동시에 개도국 발전을 위한 자금과 지식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데도 동의한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는 세계가 직면한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핵 위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규탄하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 내 개도국과 관련해 ‘G20 부채 처리 공통 프레임워크’를 통해 개도국의 부채 조정을 가속화하고, 기후변화에 의해 개도국이 입은 손실과 피해를 보상하는 ‘손실피해기금(Loss and Damage Fund)’ 설치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인도네시아 G20 정상회의에 참여한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Cyril Ramaphosa) 대통령과 AU 의장국인 세네갈 마키 살(Macky Sall)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전 세계가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곡물 가격이 급등해 빈곤국들이 경제적 위기에 처한 상황을 고려해 AU가 G20 회원국 지위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가 세계의 주요 협의체에서 관찰자가 아니라, 회원국으로 참여해 온전히 아프리카와 개도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G20 정상회담에서 합의되거나 결정된 사항이 아프리카 국가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함에 비해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러한 결정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약하다. 아프리카 국가 중 남아공이 유일하게 G20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어 아프리카 인구의 약 96%, 아프리카 GDP 규모의 85%가 결정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 기후변화나 코로나19 팬데믹, 안보, 부채 문제 등과 같이 매우 중요한 이슈에 대한 타국의 결정이 가져오는 영향을 아프리카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일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AU를 G20 회원국으로 수용하는 것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수용은 추가적으로 아프리카 나라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이들 54개국은 대부분 저소득 국가이기 때문에 전 세계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는 저소득 국가의 이해관계도 대변할 수 있게 된다. 이에 전 세계의 경제 거버넌스가 좀 더 포괄적이게 되고 G20이 승인한 정책 수행도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현재 마주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다. 특히 에너지 전환은 단지 이 지역 국가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 감소와 기후변화 회복성 증가를 위해서 국제적인 연대가 더욱 중요하다. 또한 아프리카의 긴급 식량안보 위기, 예방접종 지원 및 전염병 대응과 경제 안정성 유지에도 광범위한 국제적 지원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공적개발원조 지출은 1990년대 약 4.5%에서 최근 3%까지 줄었으며, 인도적 지원도 감소하고 있다. 이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코로나19 이후 아프리카 23개국과 기술지원 협정을 맺고 긴급자금 지원, 부채 경감 등을 위해 270억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정치 리더들이 AU가 G20 회원국이 돼야 한다는 주장에 다수의 G20 회원국도 지지 의사를 표해왔다. 발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AU에게 EU와 마찬가지로 G20 회원국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조치는 G20이 개도국과의 실질적 연대를 공고히 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12월 13일부터 15일(현지시간)까지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여한 아프리카 49개국 정상 및 지도자와 AU 대표단을 향해 구애의 손짓을 보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아프리카 선거와 ‘좋은 통치’를 지원하기 위해 1억6,500만여 달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앞으로 3년간 550억 달러 지원과 무역강화 협정, AU가 오랫동안 원하던 G20 회원국 가입 지지 등을 표명했다. 일본 기시다 총리도 지난 12월 19일 세네갈 대통령과 만난 뒤 AU의 G20 가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국제 사회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할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AU가 G20에 들어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지난해 11월 발리에서 개최된 제17차 G20 정상회의에서 AU가 G20 회원국이 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AU의 G20 가입은 지난 G20 정상회의에서부터 시작된 개도국 역할 확대 움직임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3~2025년 G20 정상회의 의장국은 인도, 브라질, 남아공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지난해를 포함해 4회 연속 신흥경제국이 G20 의장국을 맡으면서 정상회의 의제에 개도국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춰 연속성을 유지하면, 앞으로 G20 정상회의에서 개도국 역할이 점차 강화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향후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인도, 브라질, 남아공이 중국, 러시아와 함께 브릭스(BRICS·신흥경제 5개국)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G20 정상회의가 미국과 중국이 국제질서 비전을 두고 대리전을 벌이게 될 경쟁의 장이 될 수도 있다.
G20 정상회의에서 개도국의 영향력 증가는 세계 10위권 경제국인 한국에 재원 제공 요청 증가를 의미하므로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한국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사업, 한·아프리카경제협력 신탁기금(KOAFEC Trust Fund),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등을 통해 개도국, 특히 아프리카 국가의 거시경제 운용 및 투자환경 개선 노력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2022년 G20 정상회의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라는 지정학 위기를 다룬 것은 G20 정상회의의 원래 목적에서 다소 벗어난 것이다. G20 정상회의가 초기 목적인 경제 이슈 외에 정치적 이슈도 다룰 수 있는 거버넌스 체제로 변화할 수 있다. 이에 한국은 G20 정상회의의 성격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의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al State)’ 구상과 ‘인도태평양 전략’ 외교의 플랫폼으로 G20의 활용을 고려해야 한다. G20 정상회담은 다양한 분야에서 범세계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주요 포럼 중 하나로 선진국과 신흥국 간 인식과 입장 차이를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 될 수 있다.
현재 아프리카연합(AU)을 이끄는 의장은 세네갈 마키 살(Macky Sall) 대통령이다. 세네갈은 서아프리카에 속한 국가로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제도화돼 있다. 세네갈은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중점협력국으로서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률을 경험하고 있는 잠재력이 큰 국가다.
살 대통령은 광물에너지부 장관(2001~2003), 내무부 장관(2003~ 2004), 국무총리(2004~2007) 등을 역임했으며 2007년부터 2008년까지 국회의장직도 수행해 행정부의 주요 요직과 입법부 수장까지 거치며 정치인으로서 다양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8년엔 본인이 정치활동을 펼친 민주당(Senegalese Democratic Party)을 탈당해 공화연합당(Alliance for the Republic)을 창당했다. 살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연합당 후보로 출마해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후보 와데 대통령을 결선투표에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6년 살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약속한 것처럼 헌법 개정을 지지했다. 이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3연임은 불가능한 것이 됐고, 대통령 임기도 7년에서 5년으로 줄어들게 됐다. 헌법 개정안은 국민투표에서 63%의 지지를 획득해 통과됐다.
살 대통령은 최근 국제 이슈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중립적 위치를 유지해왔다. 이 사태와 관련된 유엔(UN) 결의안에 세네갈 정부는 계속 기권을 표했지만, 살 대통령 본인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직접 만나 중재하기도 했다. 이 정상회담을 통해 살 대통령은 AU 의장으로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 아프리카에 수입되는 곡물 문제 해결을 논의했다. 전쟁 전까지 아프리카는 총 밀 수입의 40% 이상을 이 두 국가로부터 수입해왔다. 살 대통령은 AU 의장 자격으로 2022년 G20 정상회담에 초대됐고, 이 기회를 살려 AU가 유럽연합(EU)처럼 G20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G20 정상회담에서 살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한국과의 경제협력이 강화되기를 희망한다고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