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지난 한 해 중동 산유국은 말 그대로 특수를 누렸다. 그러나 고유가가 산유국에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중동 산유국은 자원 의존증에서 벗어나 비석유 분야를 발전시켜 탈화석연료 산업다각화 국가로 변모하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고유가에 의존해서는 산업구조 개혁이 불가능하기에 비석유 부문이 취약한 이들 자원 부국의 행보는 급하고 고민은 크다.
글 박현도 교수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사진 한경DB
중동 산유국들이 자원의존도를 완전히 줄인 산업구조를 만들 때까지 고유가가 계속된다면 문제될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올해만 보더라도 작년보다 유가가 낮게 형성될 것이고, 향후 정세 급변 상황이 오지 않는 한 유가는 전반적으로 하향세를 탈 가능성이 크다. 새해 예산만 보더라도 이들 산유국은 2023년 유가가 지난해보다 낮은 선에서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저유가가 지속돼도 국가 재정에 문제가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쏟아온 나라는 7개의 아미르국이 연방을 이룬 아랍에미리트(UAE)다. 이들 아미르국 중 아부다비 다음으로 땅덩어리가 크지만, 원유 매장량은 UAE 전체 대비 4%에 불과한 두바이는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낙타를 타셨고, 나는 메르세데스를, 나의 아들은 랜드로버를 몬다. 내 손자는 랜드로버를 몰겠지만, 내 증손자는 낙타를 몰 것이다”라며 미래를 내다본 라시드 국왕(1912~1990) 때부터 후손들이 다시 낙타를 타서는 안 된다는 심정으로 일찌감치 탈화석연료 경제건설을 지향했다. UAE 대통령이자 아부다비 국왕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역시 2015년 왕세자 시절에 “50년 후 마지막 석유를 배에 실을 때 우리는 슬플까요?”라고 물으면서 재원을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 50년 후 축하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유조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석유 없는 미래에 대비하는 국정운영 방향을 보여주었다.
두바이의 발전상은 모두가 알다시피 현란하다. 끊임없이 개혁하고 쇄신하며 새로운 산업을 찾는다. 연방 원유 매장량의 94%가 몰려 있는 아부다비는 풍부한 재원을 기술 습득과 발전에 쏟아부으며 지식기반 경제건설에 매진한다. 인공위성 개발과 원전건설을 서구 선진국이나 일본 대신 우리나라에 맡긴 것도 우리가 기술이전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다가 막히더라도 절대 사지 말고 반드시 직접 만들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UAE 기술진은 배운 것을 토대로 끊임없이 실력을 연마하며 원하는 제품을 만들었다. 그 결과 화성 탐사선 ‘아말’과 10kg의 초소형 달 탐사로봇 ‘라시드’를 만들었다. 2021년 2월 아말은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고,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라시드는 오는 4월 말 달에 착륙하면 약 보름 동안 달 표면 분석작업을 수행할 예정이다.
아부다비와 두바이가 협주곡을 연주하는 동안 지켜만 보던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국가 개조에 나섰다. 사실 1962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24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을 지낸 야마니는 2000년 6월 “지금부터 30년 후 석유가 엄청나게 많아도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석유는 땅속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다. 석유가 있어도 석유 시대가 끝난다”며, 석유가 있어도 석유 대체기술이 발전해 석유가 쓸모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야마니의 예상과 달리 화석연료 없는 에너지 대전환에는 7년 이상 더 걸릴 것이고, 화석연료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그러나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가 지금처럼 자원만 팔아서 생존하기는 불가능할 것임은 분명하다.
2015년 부왕세자, 2017년 왕세자 자리에 오른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는 35세 이하 젊은 층이 국민의 67%를 차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자원의존 중독증에서 벗어나 석유 없는 경제강국으로 개조하고자 자국 브랜드 전기자동차 ‘시르(Ceer)’ 공장을 킹압둘라 경제도시에 건설하고, 고대 유적지 알울라와 헤그라를 관광지로 개발하며, 보수화 흐름 속에서 1979년 폐쇄한 영화관을 재개관하는 등 국가 개조 대장정에 돌입했다. 압권은 네옴(Neom) 개발이다. 새롭다는 뜻의 그리스어 접두사 ‘neo’와 미래를 뜻하는 아랍어 무스타크발(mustaqbal)의 첫 자음 ‘m’을 합쳐 네옴이라는 이름으로 북서부 홍해 연안 타북지역에 서울시 44배 크기의 대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을 실행 중이다.
네옴은 서울~강릉 간 거리인 약 170km의 길이에 높이 500m, 폭 200m 내에 900만 명이 거주하는 탈화석연료 에너지 자급자족형 미래도시인 더라인, 홍해 해상에 건설해 전 세계 물동량의 15%가 통과하게 될 수상도시인 친환경 첨단산업단지 옥사곤,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 개최지인 친환경 관광단지 트로제나 등 3개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옴 인근 신달라섬에는 고급 요트 리조트 관광단지가 내년에 완공돼 전 세계 관광객에게 사우디아라비아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 참이다.
탈화석연료 시대를 준비하면서 두바이가 보여주지 못한 것을 네옴으로 보여주겠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야심에 앞서가던 UAE가 잔뜩 긴장하면서 지난 1월 4일에는 2033년까지 10년 동안 두바이의 경제 규모를 현재의 2배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카타르 도하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중동의 허브 자리를 지키고자 애쓰던 UAE의 두바이가 잠자던 거인 사우디아라비아마저 깨어나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레인마저 핀테크로 무장하면서 중동의 금융허브가 되겠다고 벼르며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2022년 엑스포(두바이), 월드컵(카타르), 2023년 COP28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 두바이), 2023년 아시안컵 축구대회(카타르), 2027년 아시안컵 축구대회(사우디아라비아),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사우디아라비아) 등 굵직굵직한 국제행사가 중동에서 열리는 것도 비석유 부문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관광산업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중동 산유국 간 뜨거운 경쟁의 산물이다. 포스트오일 시대에 진입하면서 석유 없는 세상에서도 부국이 되려는 이들 중동 산유국의 움직임은 올해 더욱 민첩할 것이다. 1970년 중동 건설시장 진출의 대명사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즐거움을 주었던 ‘쿠웨이트 박’이 새로운 중동 붐을 타고 어떠한 이름과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날지 자못 궁금하다. 변혁·쇄신·개혁의 중동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미국의 셰일에너지 혁명이 세계 에너지 시장을 강타하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석유와 가스를 생산해온 중동 산유국은 위기를 맞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후위기에 대처하고자 국제사회가 탈화석연료 시대를 선언하며 신재생에너지 산업으로 눈을 돌리자, 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게 아닌 것처럼 석유시대 역시 석유가 있어도 끝날 것이라고 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전 석유장관 야마니의 명언이 그대로 실현되는 분위기다.
이렇듯 자원에만, 미국에만 기대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아라비아 상인의 뛰어난 무역통상 실력을 발휘하며 중동을 이끄는 두 거인이 있다. 바로 아랍에미리트(UAE)의 대통령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MBZ, 1961년생) 아부다비 국왕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젊은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MBS, 1985년생)이다. MBZ는 스스로를 과거라고 낮추고, MBS를 미래라고 추켜세웠지만, 사실 MBZ는 MBS가 부왕세자였을 때부터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가 돼 미래 비전을 공유했다. 이미 2015년에 MBZ는 2050년 UAE의 마지막 석유를 실은 유조선을 기쁜 마음으로 보내기 위해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UAE를 지식기반 경제부국으로 만들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가동했다.
MBS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중독증’을 타파해 산업다각화의 길을 열고자 두바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미래도시 ‘네옴(Neom) 프로젝트’를 선포했다.
2015년부터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찰떡궁합’을 과시하면서 역내·외 문제에 공동대처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역내 경제 허브의 상징인 두바이를 능가할 신도시 네옴 건설과 더불어 예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화석연료 의존증에서 벗어나 신재생에너지를 앞세운 경제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위협을 느낀 두바이는 향후 경제 규모를 현재의 2배로 확장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지난 1월에 발표했다. UAE는 이미 적이 없는 외교정책을 펴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쉽게 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이란과도 경제협력의 범위를 넓힌다. 두 지도자가 아라비아 무역상 DNA를 더욱 활성화하면서 양국 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건전한 경쟁 속에 중동이 예전보다 훨씬 강력한 통상의 메카로 변모하는 중이다. 폭력, 테러, 전쟁 등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지식기반 경제, 미래 먹거리, 탈화석연료 산업다각화 등 힘찬 이미지를 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