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경제 위기는 미·중 갈등,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복합적 결과다. 30년 가까이 세계경제를 지탱한 자유무역체제는 흔들리고, 탈세계화 바람이 더해지며 원자재와 공급망 관리에 대한 자국우선주의도 심화됐다. 그래서 유사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은 시의적절한 교훈을 준다.
글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중국에게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제공했다.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가 고공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한편, 당시 GATT·WTO 자유무역체제 비참여국인 중국 입장에서 감내해야 하는 불확실성은 큰 성장의 기회를 앞에 두고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가까스로 2001년 WTO 가입에 성공한 중국이지만 총 3개 파트와 9개의 부속서로 구성된 ‘가입의정서’라는 입장료를 내야 했다. 여기엔 WTO 가입을 조건으로 한 중국의 권리와 의무가 함께 정리돼 있으며 법적 효력도 부여된다.
자유무역체제하에 비교우위를 따져 생산과 소비 역할을 구분하고, 글로벌공급망을 운영해오던 상황에서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국가들 간 식량과 에너지 공급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차질이 만들어낸 세계시장에서의 공급·수요 간 불균형이 기존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의 국가별 막대한 재정지출의 결과와 더해져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출구 없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음은 우리가 몸소 체험하고 있어 잘 아는 바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당장 국내 원자재 확보 중요성이 커지면서 주요국들이 너도나도 수출제한조치를 단행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호주의 액화천연가스(LNG),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제한 검토가 대표적이다.
중국도 과거 망간, 마그네슘, 아연 등 자국산 주요 원자재에 유사한 규제조치를 취했다. 구체적으로는 이들의 수출에 세금을 부과하거나(수출세), 그 물량을 한정하거나(수출 쿼터), 각종 조건(라이선스 및 최소 수출가격)을 까다롭게 적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해외로의 원자재 반출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제 WTO 회원국이 된 이상 자유무역의 의무 준수는 다른 회원국들이 중국에 가지는 당연한 기대였으므로 중국의 수출제한이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2009년 6월 본 사안을 WTO에 제소(DS394)하기에 이른다.
중국은 각종 원자재에 대한 수출제한을 자국의 관세법, 수출입 관세에 관한 규정 등에 근거해 실행에 옮겼다. 더불어 조치에 포함된 해당 자원들이 무분별하게 지속해서 수출될 경우, 생산 과정에서 중국 내 막대한 환경적 피해는 물론 자원의 고갈 가능성 등이 있다며 스스로의 조치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했다. 특히 후자의 상황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20조에 명문화된 자유무역의 일반적 예외로 인정될 수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패널과 상소기구를 거치며 나온 판결은 중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우선 중국의 수출규제가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가입의정서에 기재돼 있지 않아 예고된 바가 없었다는 사실이 주요했다. 중국에 자유무역을 기대했을 기타 회원국들이 예상 가능한 정책 범위를 넘었다고 본 셈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예외성 역시 기존 부속서에 명시한 수준을 초월한 이 같은 수출제한적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용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전술한 것과 같이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계속 확대되며 각국은 경제성장과 산업경쟁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재 보호 및 확보 경쟁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판례에서와 유사한, 그리고 최근 목격된 것과 비슷한 수출관리가 재등장할 수 있다. 다행히도 자유무역체제는 이러한 통상정책에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음이 판례를 통해 확인됐다. 그러나 판례를 통해 얻는 교훈이나 타국의 조치 감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루라도 빨리 공영을 위한 글로벌 협력과 안정을 되찾는 일임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