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6월 발효된 ‘한국·아세안(ASEAN·동남아 아시아국가연합) 자유무역협정(FTA)’은 양측 교역 확대와 경제협력의 토대를 놓은 이정표로 여겨진다. 이로부터 18년이 지난 2025년 현재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디지털 전환,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한·아세안 FTA1)의 실효성과 포괄성에 대한 검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디지털 무역, 인공지능(AI), 데이터 이동, 환경·노동 등 새롭게 발생한 무역 이슈는 기존 FTA 체계 밖에서 빠르게 부상하는 중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최근 말레이시아, 태국 등과 개별 양자 FTA를 추진하는 등, 한·아세안 FTA의 이중 보완적 구조를 강화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앞서 한국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과 양자 FTA를 체결했고, 이는 개별국 규제 다양성과 통합 역량 차이를 반영한 유연한 접근으로 평가받고 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국제무역을 전문으로 다루는 로펌 애플턴러프(Appleton Luff)의 에드먼드 심(Edmund Sim) 파트너는 “기존 한·아세안 FTA는 기본적인 시장 접근을 달성했지만, 현재는 디지털 경제와 비관세장벽(NTB·Non-Tariff Barrier) 해소 등 정교한 규범 개선과 실행력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양자 FTA가 아세안 전체 규범 정비의 ‘파일럿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그는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위해선 단순한 조항 신설보다 민관 협의체 상설화와 분쟁 사전 예방 시스템이 필요하다”라며 “2025년은 한·아세안 협력의 ‘재설계’가 요구되는 전환기이자, 디지털 시대의 동반자 관계를 공고히 할 절호의 기회”라고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아세안 FTA가 체결된 지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부문은 무엇인가.
“FTA 체결 이후, 새로운 이슈와 기존 이슈 모두 중요성이 커졌다. 디지털 무역과 전자상거래, AI, 환경, 노동 등에서 새로운 이슈가 부각됐고, 공급망과 비관세장벽, 기타 규제 차별 같은 시장 접근에 대한 문제는 오래됐지만, 최근 들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의 한·아세안 FTA는 새 이슈는 물론, 기존 이슈를 모두 포괄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 말레이시아 및 태국 등과 양자 FTA를 추진 중이다. 이런 개별 협정은 기존 FTA 체계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보나.
“한·아세안 FTA는 하나의 덩어리로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한국과 아세안 각 회원국 간의 10개 양자 FTA로 구성된 체계다. 물론 협상은 집단적으로 했지만, 아세안 회원국은 모두 기존의 한·아세안 FTA를 초월하는 개별 FTA를 체결할 수 있다. 이는 통합 속도가 더 빠르길 원하는 국가에는 선도적 역할을 맡기고, 다른 국가는 각국의 속도를 따를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한국이 추진하는 양자(말레이시아·태국) FTA는 훗날 10개의 아세안 회원국이 합의할 경우, 아세안 전체의 약속으로 확장할 수 있다.”
경제와 규제 환경이 다양한 아세안 내에서 한·아세안 FTA는 어떤 방식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지.
“개별 국가와 양자 FTA를 통해 전체 FTA를 업그레이드하겠다는 현재의 방식은 아세안 내 다양한 경제 시스템과 규제 환경을 반영한 적절한 접근법이다. 싱가포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은 이미 기존 한·아세안 FTA보다 높은 수준의 약속을 담은 양자 FTA를 체결했다. 말레이시아, 태국과 양자 FTA 협상이 완료되면, 한국은 아세안 회원국 다수와 양자 FTA를 체결하게 된다. 이렇게 별도로 맺은 FTA는 향후 한·아세안 FTA 전체를 업그레이드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아세안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자주 직면하는 비관세장벽의 유형은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아세안 외 국가의 기업(그리고 아세안 기업조차도)은 자격이나 산업 표준의 상호 인정 부족으로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려면 한국과 아세안 회원국 정부 간 지속적이면서 반복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이런 협의에 민간 부문 참여를 늘리고, 제시된 해결책의 이행과 모니터링을 개선해야 한다.”
아세안은 최근 디지털 무역과 전자상거래, AI 등 새로운 영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런 협상 범위 확대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한국은 새로운 분야의 무역과 상거래에도 비차별 원칙이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정부 간의 정례적이고 활발한 협의가 필요하며, 민간 접근성과 문제 해결 이행력을 강화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이나 미국과 달리, 아세안은 소프트 로(Soft law·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사회나 업계가 사실상 따르는 권고 규칙) 기반의 협력 메커니즘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아세안의 경향에 한국은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하나.
“일반적으로 한국은 아세안과의 소프트 로 협력 메커니즘에 적합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 아세안 국가는 한국에 대해 지역 현실을 잘 이해하며, 숨은 의도가 없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긍정적 평판을 바탕으로 한국은 아세안 국가와 협력을 계속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아세안 FTA의 투자자·국가간분쟁해결(ISDS)2) 메커니즘은 충분한가. 개선 필요성은.
“소프트 로 환경에서는 분쟁 해결과 집행 메커니즘을 국가적 목표 달성을 위한 빈번한 도구로 여기기보다는 협정 규범에 대한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이해해야 한다. 이 메커니즘이 실제로 사용되지 않더라도 실효성이 있다고 믿을 수 있어야 협정의 신뢰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현재 한국과 아세안 간 ISDS 메커니즘은 보완할 필요성이 있으나, 한·아세안 FTA에 신뢰성을 제공한다고 본다.”
최근 무역협정을 보면 지속 가능성, 기후 대응 등 비경제적 이슈가 포함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한·아세안 FTA는 어떻게 발전해야 한다고 보나.
“한·아세안 FTA는 비경제적 분야에 대한 ‘역량 강화(capacity-building)’를 장려해야 한다. 이런 이슈가 차별적으로 적용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일도 필요하다.”
용어설명
- 1한·아세안 FTA
한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 (ASEAN) 10개국 간 체결된 FTA로, 2007년 6월 발효돼 두 주체 간 상품·서비스·투자 분야에서 관세 인하와 경제협력을 촉진해 왔다. FTA 이후 한국과 아세안 교역액은 빠르게 증가했으며, 2024년 기준 약 1933억달러를 기록, 아세안은 중국, 미국에 이어 한국의 3위 교역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다.
- 2투자자·국가간분쟁해결 (ISDS)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대상국의 법이나 정책으로 손해를 입었을 때, 해당 국가를 자국 법원이 아닌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 FTA 등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