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함께 풀기 대담 김재신·최창원·최윤정 전문가 3人 “최적의 경협 파트너 아세안⋯ 경제 안보·디지털·녹색 협력 구체화해야”
  • 김우영 기자
  • 한국 통상 정책의 핵심 축으로 미국, 중국과 함께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2010년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 (FTA) 발효 이후, 중간재 중심의 교역을 확대해 왔으며, 2024년 대(對)아세안 수출액 규모는 2023년 대비 4.5% 증가한 1140억달러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정책과 미·중 갈등 장기화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고, 그 대상지로 아세안이 주목받는 분위기다. 이른바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전략에 따라 글로벌 다국적기업은 생산 기지를 중국에서 아세안으로 분산시키고 있으며,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며 새로운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처럼 아세안은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안은 지역이다. 약 6억9000만 명의 인구와 3조9000억달러 규모의 국내총생산(GDP)을 바탕으로 세계 5위권 경제권에 해당하며, 공급망 다변화와 신시장 확보를 추진하는 한국에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통상’은 국내 아세안 전문가 3인에게 변화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아세안 국가와 어떻게 경제협력을 이어가야 할지 심층적으로 물었다.

    전 외교부 차관보, 전 주독일 대사, 전 주필리핀 대사

    보호무역주의 확산 국면에서 한국이 아세안과 협력을 강화할 경우 어떤 전략적 이점을 기대할 수 있을까.

    김재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이하 김재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오래된 투자 격언은 한·아세안 협력에도 적실성이 있다. 아세안은 지리적, 경제적으로 한국과 가깝고 정치적, 역사적으로도 서로 간에 걸림돌이 없어 협력을 더욱 심화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한국이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협력국 외에 외교 및 경제 다변화를 꾀할 수 있는 최적의 대상이란 뜻이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비춰 볼 때 아세안이 한국의 기존 협력국을 보완, 발전시킬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하다고 본다.”

    최창원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이하 최창원) “무역 중심 국가인 한국은 예측 가능한 다자 협력 파트너가 필수인데. 아세안은 제도적 신뢰도를 갖춘 전략적 협력 블록이다. 한국은 2024년 아세안과 최상위 관계인 포괄적전략동반자(CSP) 관계를 구축했고, 첫 5개년 실행계획안이 준비 중이다. 이는 통상 장벽이 높아지는 시대에도 공급망 유지, 시장 다변화, 기술 표준 연계를 가능하게 한다. 특히 아세안은 중립적 외교 기조와 개방형 지역 주의를 유지해, 한국이 미·중 갈등에 휘둘리지 않고 협력할 수 있는 귀중한 파트너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하 최윤정) “아세안은 한국의 통상 다변화와 성장 동력 확충의 핵심 파트너다. 중국·미국 중심의 무역 집중도를 완화하고, 공급망 회복 탄력성을 높일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로 5월 26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46차 아세안 정상회의의 ‘쿠알라룸푸르 선언’은 아세안을 ‘글로벌 성장의 중심축’으로 규정하며, 디지털·녹색 경제, 청년·사회 연대, 공급망 연계 등 15개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이는 한국 전략산업과 맞물려 공동 성장의 협력 기반이 될 수 있다. 아세안은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규범 기반 무역 질서를 지지하며, 한국의 개방형 통상 전략과도 궤를 같이한다.”

    한국 기업이 아세안 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전략은 무엇인가.

    김재신 “한·아세안 금융협력센터에 따르면, 2023년 6월 기준으로 아세안 지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5000곳이 넘는다. 해외 진출 한국 기업의 절반에 가깝다. 이 수치가 방증하듯, 이미 양측은 서로를 가까운 협력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아세안 지역은 한국 기업의 주요 생산 및 제조 기지의 역할을 하고 있어, 우리 글로벌 가치 사슬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생산 거점 뿐 아니라 한국 기업의 소비 시장으로서 중요성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의 진출 국가와 산업을 다변화하려면, 현지화 전략과 함께 다층적 외교 접근이 필수적이다.”

    최창원 “전 세계적인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 확산 속에 아세안은 제2의 글로벌 제조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대기업은 위상을 높였지만, 중소기업(SME)은 여전히 하청 구조에 머물러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대외경제협력기금(EDCF)·공적개발원조(ODA)를 활용한 인재 양성, 기술이전, 공동 연구개발(R&D) 등 고도화된 산업 협력이 필요하다. 국가별 여건에 맞춘 맞춤형 전략과 함께, 아세안을 하나의 블록으로 보고 역내 표준과 공동 규범 수립에 한국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

    최윤정알타시아(Alternative Asia)1)의 대표 주자로 분류되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을 중심으로 이미 다수의 국내 기업이 R&D와 제조, 수출이 결합된 통합형 생산 거점을 구축 중이다. 아세안은 탈중국 대체지를 넘어 공급망 거점이자 규범 파트너로 부상 중이다. 이를 전략적 기회로 만들기 위해 세 가지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한·아세안 지역 가치 사슬(RVC)을 통한 공급망 분산화로 지정학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둘째, 현지 중소기업과 연계, 디지털·녹색 제조 협력 등 공생형 클러스터로 현지화 전략을 고도화해야 한다. 셋째, FTA와 RCEP 등 플랫폼을 활용해 디지털 무역, 스마트 인프라, 탄소 기술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전 동티모르국립대 경제경영학부 교수·한국학센터 센터장

    아세안 국가가 한국과 협력에 특히 관심을 보이는 산업 분야는. 

    김재신 “아세안은 역내·외 연계성 강화를 위한 인프라 개발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실제로 제46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선 ‘연계성’을 기존 3대 전략(△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에 더해 네 번째 전략 축으로 공식화했다. 한국은 물리적 인프라 투자에는 한계가 있지만, 디지털 전환과 제도 기반 협력에는 강점이 있다. 한·아세안센터는 이를 반영해 2013년부터 ‘아세안 연계성 포럼’을 열고 상호 수요를 발굴하고, 지식·제도 기반 협력 확대를 위한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최창원 “방산과 에너지 분야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와의 KF-21 공동 개발2), 필리핀에 FA-50 공급, 태국·말레이시아와 방산 기술 교류는 단순 무기 수출이 아닌 기술 동맹으로 발전 중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한국의 수소 인프라,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탄소 포집 저장(CCS) 기술이 아세안의 탈탄소 정책과 맞물리며,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 등에서 공동 프로젝트 수요가 늘고 있다.”

    최윤정 “인프라 및 스마트시티 영역에도 관심이 많다. 연간 1000억달러에 달하는 인프라 수요와 아세안 스마트시티 네트워크(ASCN) 확대에 따라, 한국의 공기업 중심 민관 협력 사업(PPP) 모델과 디지털 인프라 기술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부산·세종시 등 스마트시티의 실제 경험은 기술뿐 아니라 정책·제도·운영까지 포괄하는 종합 협력 모델로 확장 가능하다. 나아가 인공지능(AI) 기반 도시안전, 친환경 교통망, 기후 적응형 인프라 등 복합 솔루션 제공이 가능해, 협력 분야는 지속 확장될 수 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전문가· 저명인사그룹(EEPs) 공동의장

    디지털 경제로 전환이 가속화하는 지금, 한국이 아세안의 협력 파트너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전략은.

    김재신 “디지털 전환은 전 세계적인 성장 패러다임이며, 아세안도 2025년까지 ‘아세안 디지털 경제 프레임워크 협정(DEFA)’3) 타결을 목표로 협상 중이다.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은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아세안의 디지털 격차 해소에 적합한 최고의 파트너다. 이를 위해 한국은 2024년부터 ‘한·아세안 디지털 혁신 플래그십(KADIF)’을 5개년 과제로 추진 중이며 협력 기금 3000만달러를 투입해 디지털 격차 해소와 역내 경제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최창원 “디지털 전환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다. 경제·문화·교육이 융합된 생태계 재편이다. 한국이 아세안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기 위해선 디지털 기반의 한국어 지원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어는 K콘텐츠 소비와 함께 접근성, 문화 신뢰, 경제 연계성을 높이는 자산이다. 또한, DEFA 공동 규범 참여를 통해 블록 차원의 협력을 강화하면, 표준화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확산력 있는 협력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최윤정 “한국이 아세안의 핵심 디지털 파트너로 자리 잡기 위해선 DEFA와의 전략적 정합성 확보가 핵심이다. 데이터 이동과 개인정보 보호, AI 투명성, 디지털 과세 등 주요 의제를 다루는 협의 플랫폼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디지털 공급망 및 표준화 주도권을 기반으로 실질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아세안 내 디지털 격차 해소와 인재 생태계 육성에도 제도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저개발국에 만연한 제도·인프라·인력 부족 문제를 감안할 때 제도적·문화적 측면을 포괄하는 ‘포용적 디지털 파트너십’은 협력 대상으로서 한국의 위상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SK E&S가 탄소 포집 저장 (CCS)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동티모르 바유운단 가스전. SK E&S

    아세안이 추진 중인 친환경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한국이 신뢰받는 협력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려면.

    김재신 “한국은 IT 기술과 경험에서 강점이 있으며, 아세안의 에너지 효율 제고와 신재생에너지 도입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 한·아세안센터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환의 중요성에 공감해 양 지역의 현황을 담은 가이드북을 발간하고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아세안은 녹색 채권 기준, 택소노미 등 주요 프레임워크를 마련하며 속도는 다르지만, 녹색 전환을 공동 목표로 추진 중이다.” 

    최창원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2050년까지 아세안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30%를 넘길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위해 공동 프로젝트와 외부 협력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수소 인프라, CCS, 스마트 그리드, SMR 등 필요한 기술을 갖추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동티모르 바유운단(Bayu-Undan) 가스전을 CCS 시설로 전환한 사례는 아세안 블록 전체의 탄소 감축 전략과 연계될 수 있는 모델이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정책 설계, 제도 구축, 인재 양성을 아우르는 ‘총체적 그린 파트너십’이 요구된다.” 

    최윤정 “한국은 아세안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있어 기술·재정·제도 전반을 아우르는 전 주기적 협력이 가능한 파트너다. 아세안은 2025년까지 전체 발전설비의 35%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표에 근접했다. 이제 실제 생산 비중을 끌어올리는 것이 관건으로, 시스템의 안정성과 효율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스마트그리드,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소 혼소 발전 등 에너지 전환을 뒷받침하는 기술력에서 강점이 있어 아세안과 맞춤형 협력이 가능하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TS)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아세안의 탄소 시장 구축 및 제도 정비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적 협력은 아세안의 포용적 에너지 전환 기조와 부합하며, 한국이 지속 가능한 파트너로서 신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아세안이 지속 가능한 경제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새 정부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은.

    김재신 “한국과 아세안은 오랜 기간 경제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새로운 제도보다는 기존 협력의 지속과 강화를 아세안에 적극 홍보할 필요가 있다. 상호 호혜적 협력이 관계를 지속시키며, 아세안이 한국을 얻을 것이 있는 파트너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세안 11개 대화 상대국 중에서 한국이 특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분야를 잘 파악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최창원 “가장 중요한 것은 ‘아세안 중심성’을 존중하는 외교 자세와 제도적 일관성이다. 아세안을 개별 국가가 아닌 블록으로 인식하고 협력해야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세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국가별 협력 로드맵을 전체 한·아세안 전략의 하위 구조로 통합할 것. 둘째, 한·아세안 협력 기금을 디지털 전환, 기후 대응, 청년 교류 등 미래 협력 분야 중심으로 재편성할 것. 셋째, 외교부·KOICA·산업부·KOTRA 간 분절된 운영을 통합할 ‘아세안 전략 태스크포스’가 필요하다. 이제는 양적 확대보다 질적 정교함과 제도적 지속성이 중요하다. 블록 협력과 국가별 차별화를 조화롭게 조율해야 한다.”

    최윤정 “한국과 아세안 양측을 전략적 필요성에 기반한 협력 관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경제 안보 전반을 포괄하는 상설 고위급 협의체 구축이 필요하다. 기존한·아세안 경제 장관회의를 공급망, 기술 표준, 전략물자 등 경제안보 의제를 포괄하는 고위급 플랫폼으로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기후, 디지털 전환, 포용성을 핵심 가치로 제시한 ‘아세안 공동비전 2045’에 부응해, △기후 협력 특별기금 △AI 기반 조기 경보 및 스마트 농업 플랫폼 △탄소 시장 연계 협정 등을 제안할 수 있다. 이는 아세안 관심 정책인 DEFA 및 AOIP 의제와의 연계성을 높임과 동시에, 실행력 있는 제도적·재정적 기반 마련에도 기여할 것이다. 미래를 공동으로 설계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중장기적 안목에서 추진되는 구조적 협력 전략이 되어야 하며, ‘한·아세안 2045 비전’ 같은 공동 미래 구상의 수립과 이에 기반한 단계적 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 


    용어설명
    • 1알타시아(Alternative Asia)

      대체란 뜻의 얼터너티브 (Alternative)와 아시아(Asia)를 합성한 조어.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공급 및 생산 기지로서 보통 중국을 감싸고 있는 14개국을 지칭한다.

    • 2 KF-21 공동 개발

      KF-21은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로, 한국 방위사업청과 방산 기업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 사업에 공동 투자국으로 참여해 개발 비용의 약 20%를 부담하고 기술 일부를 이전받기로 했다.

    • 3아세안 디지털 경제 프레임워크 협정(DEFA)

      아세안이 추진 중인 역내 최초의 디지털 통합 협정. 전자상거래, 데이터 이동, 디지털 무역 규범 등을 포괄하는 협력 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