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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정재욱·김태환·유광호 전문가 3人 “한·GCC FTA 비(非)석유 협력 틀 기대… 아랍 문화 이해 필요”
  • 박진우 기자
  • 2023년 12월 28일 한·걸프협력이사회(GCC·사우디 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카타르·바레인·오만) 자유무역협정(FTA)이 최종 타결됐다. 한·GCC FTA는 한국이 체결한 25번째 FTA(협상 타결 기준)이며, GCC는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 (EFTA)과 FTA를 한국에 앞서 체결했다. 


    한·GCC 협상 타결에 이어 빠르면 올해 발효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 협정이 발효되면 한국은 거대한 GCC 시장에 비교 우위를 갖고 진출하면서 제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 GCC 국가는 자국 제조업 육성을 포함해 비(非) 석유 분야 산업 기반 구축에 적극적이고, 대규모 인프라 건설이 예정돼 있어 관련 한국 기업의 시장 진출을 통한 윈윈이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전문가인 정재욱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유광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전문연구원, 에너지 전문가인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KEEI) 석유정책 연구실장 등 3인에게 한·GCC FTA에 따른 경제적 효과와 한국의 대응 방안을 물었다.

     

    현 서강대 게페르트국제학부 학부장, 현 서강대 국제지역 연구소 소장, 전 대외경제정책 연구원 아프리카중동팀 팀장


    한·GCC FTA 체결이 양측 간 무역 규모와 구조에 어떤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하나.

    정재욱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이하 정재욱) “장기적으로 한국의 대(對)GCC 수출이 약 80억~100억 달러 증가, 대GCC 수입이 약 120억~140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FTA를 계기로 한국 기존 대표 수출품의 GCC 시장점유율이 늘어나는 건 물론, 화장품, 의약품 및 의료 기기, 식품 등 유망 상품의 시장 진출을 촉진할 것이다. 또 상품 시장 외 영화나 비디오 배급 서비스 시장 개방, 의료, 법률 서비스 시장 개방 확대로 GCC 국가가 포스트오일 (post-oil)1) 시대를 대비해 육성하는 미래 혁신 산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기반을 만든 셈이다.”


    유광호 KIEP 전문연구원(이하 유광호) “양자 간 무역은 국제 유가 추이에 따라 그 규모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특징이 있다. 한·GCC FTA는 한국의 대GCC 수출 확대로 석유 부문에 편중된 무역구조를 완화함으로 규모 측면에서의 안정성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태환 KEEI 석유정책연구실장(이하 김태환) “한·GCC FTA 체결에 따른 우리 제품의 GCC 역내 관세 인하는 자동차·전자·철강 등 주력 제조업 분야의 현지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이로 인해 이들의 수출이 확대될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아울러 기존 교역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신재생에너지, 디지털 기술, K문화 등 미래 산업 분야 협력도 활발해지는 무역구조 다변화와 수출 기반 강화가 기대된다. 이처럼 한·GCC FTA를 통해 양측은 상호 보완적인 분야를 더욱 강화해 교역 규모를 확대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고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기업에는 어떤 기회가 될 것으로 보는가. 

    김태환 “관세 철폐로 한국의 자동차·방위산업(방산)·전자 제품 등 주요 품목의 현지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확대되고, 의료·교육·콘텐츠 산업 등 GCC 국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려는 시장 진출이 이전보다 더 수월해질 것이다. 또 GCC 국가의 경제 다각화 정책과 인프라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건설·에너지·정보기술(IT) 분야에서 협력 기회도 증가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GCC 국가는 한국과 정치·제도·문화적으로 상당히 달라, 이들 개별 국가에 맞는 현지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GCC 시장에 진출하려는 우리 기업에 가장 큰 어려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재욱 “한·GCC FTA는 양허 품목 수나 양허 유예 기간 측면에서 개방도가 높지 않다. 내수 보호 의지가 강한 GCC를 고려해 다소 개방 수준이 낮더라도 협상을 조기 타결해 비교 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측의 조기 비준을 통해 FTA를 조속히 발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랍 문화는 특수하고, 자국민 고용 의무화 등의 조치를 통해 일자리 창출을 모색하고 있다. GCC 주요국은 수년 내 자국에서 자동차 생산을 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 기업도 FTA의 수혜 품목인 자동차 부품 시장 개방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적극적인 직업교육과 기술협력을 통해 현지 인력의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현지 조립·생산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장기 협력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유광호 “최근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국가가 GCC의 산업 개발 기조를 협력 확대의 기회로 삼아 현지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는데, 이들보다 먼저 시장 개방을 선점해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단, GCC 국가의 현지화 규제, 복잡한 행정 절차 등은 한국 기업의 도전 과제가 될 수 있다. 특히 현지화는 자국 경제 활성화와 고용 확대를 위해 이들 국가가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으로 무엇보다 자국민 고용 규제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이에 기업이 GCC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이러한 규제를 준수하는 동시에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현지 시장 특성에 대한 이해와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산업자원개발전문위원회 위원, 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국제곡물정보분석협의회(원유) 위원


    FTA가 한국 산업에 어떤 혜택을 줄까.

    유광호 “한국의 대GCC 주요 수출품 중 관세양허 대상에 해당하는 자동차, 자동차 부품, 기계류, 화학제품 등이 현지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상품뿐 아니라 서비스 분야의 개방도 함께 이뤄져 영화 및 비디오 배급 서비스, 의료 서비스 관련 기업의 GCC 시장 진출이 용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의 의료 기술과 헬스케어 서비스는 GCC 지역에서 고품질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와 맞물려 유망한 협력 분야로 평가받고 있다.”


    정재욱 “일부 승용차와 화물차에 대한 관세 감면이나 철폐를 통해 완성차 수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콘텐츠, 전자상거래 기업, IT 스타트업의 현지 진출이 용이해진다. 세계적인 에너지 수출 지역인 GCC FTA에 에너지 협력이 포함된 것은 한·GCC FTA가 처음이다.”


    유광호 “GCC는 석유 외 산업에 대한 기반이 거의 없어 자국 산업 다각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 기업의 투자가 필수다. 물론 FTA가 자국 수출 확대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사실 원자재를 제외하고는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품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투자 유치에 따른 산업 기반 확립 및 강화가 협정 체결에 더 큰 유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 워릭대 국제정치경제학 석사


    석유와 천연가스 분야 협력 영향은. 

    김태환 “한·GCC FTA는 한국이 석유·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GCC는 세계 최대 에너지자원을 보유한 지역으로 이번 FTA를 통해 양국 간 경제적 신뢰와 협력 관계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FTA를 통해 관세와 비관세장벽이 완화되면 거래 비용이 감소하고, 양측 간 신뢰가 강화돼 장기 계약 협상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 GCC는 한국을 석유 및 천연가스의 주요 수출 지역으로 확보하게 됐고, 한국 역시 GCC 지역으로부터 원유 수입 비용 절감과 안정적인 원유 확보가 가능해졌다. 이처럼 한·GCC FTA는 석유 및 천연가스의 안정적 공급과 장기 계약 체결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며, 한국과 GCC 양측 모두에게 상호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협력 모델이 될 것이다.”


    유광호 “카타르와 오만은 2023년 기준 각각 한국의 2대, 3대 LNG 수입국으로 주요 천연가스 공급국 역할을 하고 있다. 관세양허로 기업은 천연가스를 더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제품 생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원유는 양허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FTA 체결에 따른 직접적인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양국 간 신뢰 증진으로 안정적인 원유 공급망을 유지하는 데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FTA가 한국과 GCC 간 재생에너지 개발 협력에 미칠 잠재적 효과는 무엇인가. 

    정재욱 “GCC 지역은 전 세계에서 태양광발전 효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또 한국 원자력발전 기술에도 관심이 크다. GCC는 저렴한 전력을 이용해 그린 수소, 핑크 수소2) 생산에서 상당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수소 저장, 운송이나 활용 기술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GCC의 풍부한 자원과 우리 기술을 결합한다면 수소 생산은 물론 수송 부문에서 선도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유광호 “GCC는 풍부한 일조량, 강한 풍속 등으로 재생에너지 개발에 적합한 환경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양자 간 협력 강화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기존 한국의 GCC 내 재생 에너지 시장 진출은 제한적이었으나, 2020년대 들어 삼성물산, 서부발전 등 주요 기업이 태양광발전소 건설 및 운영 분야에서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에너지·자원에 대한 개별 부속서에 신재생에너지 협력 및 공급 안정화 등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돼 있어 FTA 체결을 통해 양자 간 재생에너지 부문 협력의 속도와 범위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GCC 국가가 추진 중인 탄소 포집·저장(CCS) 기술 같은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에서 한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김태환 “GCC 국가의 대규모 유정과 한국의 CCS 기술력을 결합해 실현 가능한 협력 과제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이 고온·건조한 환경에 맞는 파일럿 CCS 프로젝트를 설계해 지질 분석 및 저장소 설계 기술을 제공, GCC 지역의 기존 유전·가스전의 활용도를 높이고, 또 강점인 사물 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기반 모니터링 기술을 GCC 국가 CCS 시설에 적용해 운영 효율성을 향상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한국과 GCC 간 공동 연구소 설립 및 인력 양성 프로그램 등과 같은 인적자원 교류 협력 또한 충분히 가능성 있는 협력 분야가 아닌가 싶다.”


    유광호 “한국 기업이 CCS와 같은 친환경 수소 생산을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를 바탕으로 GCC 내 수소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IoT 기술을 활용한 에너지관리 시스템 및 효율적 전력 사용을 위한 에너지 저장 시스템 기술이 중요한 협력 분야로 부각될 수 있다. 아울러 한국이 독자적인 연구 개발(R&D)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소형모듈원자로 (SMR)3)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 GCC 국가의 차세대 전력 공급 대안이 될 것이다.”



    친환경, 신에너지 분야에서 한·GCC 간 협력 가능성이 큰 것 같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달라. 

    유광호 “GCC는 풍부한 화석연료 매장량과 재생 에너지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수소 생산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수소 활용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관련 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이처럼 GCC는 생산, 한국은 활용 측면에서 각각 강점을 보유하고 있어 양측의 협력이 상호 보완적이다. 특히 한국은 GCC와의 안정적인 수소 공급망 구축을 국내 수소 경제를 활성화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최근 포스코홀딩스 컨소시엄이 수주한 오만의 그린 수소 프로젝트는 이러한 보완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김태환 “한·GCC 간 수소 에너지 협력 가능성은 꽤 크다. GCC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보유 지역으로 블루 수소 생산에 유리하며, 풍부한 태양광 자원을 활용한 그린 수소 생산에도 잠재성이 매우 크다. 한국은 수소 경제 선도국으로 도약하려는 국가적 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고, 실제로 수소 생산· 저장·운송 및 연료전지 기술에 대한 많은 투자를 집행하고 있기 때문에 GCC의 대규모 수소 프로젝트에 필수적인 기술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양측의 블루·그린 수소의 장기 공급 계약, 인프라 구축 협력, 연구개발 및 기술 교류를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용어설명

    • * 1) 포스트오일(post-oil)

      중동 국가가 석유에만 의존하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전략. 사우디아라비아는 모하메드 빈 살만 왕자가 지휘하는 신성장 동력 ‘비전 2030’을 주요 축으로 삼아, 2030년까지 자국 전력 생산의 50%를 신재생에너지로, 나머지 50%는 천연가스로 충당할 계획이다. UAE 또한 ‘오퍼레이션 3000억’ 프로젝트를 진행, 2050년까지 청정에너지 비중을 50%까지 늘릴 방침이다.



    • * 2) 핑크 수소

      소형 원자력발전 등으로 생산한 값싼 전기를 이용, 순수한 물 또는 해수(담수)를 전기분해(수전해)해 생산한 수소. 태양광·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로 만드는 그린 수소와 함께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없는 청정에너지로 인정받는다.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을 활용한 블루 수소도 있다. 화석연료를 통해 생산되는 브라운 수소, 그레이 수소 등과 대비된다.



    • * 3)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존 대용량 발전 원자로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전기 출력이 300㎹e 이하인 SMR은 기존 원전보다 안전성이 높고, 입지와 출력에서도 유연성을 갖춰 탄소 감축의 대안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