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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한국 경제는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미국 신행정부 출범에 따른 글로벌 무역 전쟁 격화 가능성 등 국내외 환경 변화 속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미국 신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변하는 글로벌 경제 지형은 한국 기업과 산업 전반에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강화에 따른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대, 중국의 기술 발전, 글로벌 경제 둔화 등의 글로벌 요인은 한국의 주요 수출 산업과 성장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신행정부의 새로운 통상 정책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주요 교역 대상 지역으로 부상한 중동과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2024년 중동과 교역액은 1129억달러(약 161조9200억원)로 전년 대비 소폭 늘었다. 수출이 4.8% 증가한 197억달러(약 28조7100억원), 수입이 0.6% 감소한 932억달러(약 135조8400억원)다. 최근 IMF(국제통화기금) 분석에 따르면, 2023년 10월 이후 불거진 지정학 리스크로 2024년 중동 경제는 2%의 성장을 기록했지만 2025년에는 리스크 해소로 3.5% 성장이 예상된다. 이는 지난 1년 이상 지속된 이스라엘과 주변국의 분쟁이 2025년에는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주요 국가가 탈석유(post-oil) 시대 달성을 위해 산업 다각화에 전념하면서 석유산업 이외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다.
탈석유 기조는 중동 산유국의 정치, 외교, 산업 전 반에 걸쳐 변화를 이끌고 있다. 미국의 셰일 가스 발견 이후, 중동 산유국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가 감소하면서 이 지역 국가는 전략적 다각화와 자율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비전 2030’을 통해 고유가를 유지하고 투자 유치를 강화하고 있다. UAE는 다각화된 외교와 경제 포트폴리오를 추구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중동 산유국이 국제사회에서 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다. 특히 사우디, UAE 등은 자국의 산업 다각화 실현을 위해 한국, 일본, 중국 등과 협력을 강화하는 아시아 지향 정책인 ‘룩 이스트(Look East· 동쪽을 보라)’1)를 추구하고 있다.
한국과 중동 간 전통적 경제 관계는 에너지 수입과 건설 수주를 중심으로 형성돼 왔다. 한국은 중동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는 대신 제조업 제품 수출과 건설 시장 참여를 통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최근 한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작아지고 건설 수주 역시 과거에 비해 위축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동은 한국의 최대 원유 수입 및 건설 수주 시장이다. 최근에도 한국 기업은 사우디의 네옴 프로젝트 같은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에 맞춰 한국 은 중동과 교역 및 투자를 확대하고 국내 기업의 중동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 중동 국가와 에너지 안보 중심의 협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협력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한 한국과 중동의 산업 협력 방안을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정부 지원하에 민간 주도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사우디 등 산유국은 탈석유 시대를 대비하며 네옴 등 대규모 신도시 프로젝트와 제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은 기술력과 경험을 활용해 이러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현지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은 기술을 제공하고 주요 산유국은 풍부한 국부 펀드 등을 제공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프로젝트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국가 주도의 산업 다각화 및 혁신 성장 플랫폼 조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중동 주요 국가는 경제정책 결정에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므로, 정부 차원의 협력 플랫폼 구축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공동 연구와 시장조사를 추진하고, 주요 국가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부합하는 세부 협력 프로그램을 발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삼국과 공동 진출 모색이다. 최근 UAE는 인도, 일본, 이스라엘 등과 삼각 협력을 통한 프로젝트를 다수 만들었다. 한국도 인도, 이스라엘 등과 함께 중동 주요 국가와 삼각 협력 모델을 만들어 진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삼각 협력을 통해 한국은 기술을, 인도는 노동력 또는 저렴한 제조업 기지 역할 그리고 사우디와 UAE 등은 자본을 제공해 자국 산업을 육성함으로써 상호 상생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이런 협력의 유망 협력 분야로는 청정에너지(재생 에너지, 그린 수소 등), 제조업, 인프라 건설, 농업 등을 들 수 있다. 첫째, 청정에너지 분야다. 한국은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2)과 재생에너지 활용을 통해 중동 산유국과 협력해 탄소 감축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특히 사우디와 UAE의 저탄소 수소 생산능력을 활용한 협력이 가능하다. 이미 사우디와 UAE, 오만 등은 청정 수소 제조 주도권을 쥐기 위해 유럽과 한국, 일본 등과 다양한 협력을 하고 있다.
둘째, 제조업 분야다. 자동차, 정보통신(IT), 조선, 철강 등의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이 크다. 중동 주요 산유국은 자국민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제조업 분야 투자를 원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와 조선 그리고 철강 등은 일자리 창출과 함께 주요 제조업 근간을 이루고 있어 투자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셋째, 인프라 건설 분야다. 사우디와 UAE 등의 관광, 물류, 주택 분야를 중심으로 스마트 인프라와 지속 가능한 도시 설계 분야에서의 협력이다. 한국 기업은 국내에서 신도시 건설 경험이 많고 높은 IT 기술을 활용해 중동 국가가 원하는 ‘스마트 시티’ 건설에 적극 참여할 수 있다. 이미 UAE, 쿠웨이트, 카타르 등은 자국의 스마트 시티 건설을 추진하고 있어 국내 기업의 참여 기회도 있을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식량 안보를 위한 농업 분야, 중동은 대부분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IT 기술을 결합한 농업기술 발전으로 UAE, 카타르, 바레인 등을 중심으로 스마트 양식업, 스마트 팜 등의 건설이 붐을 이루고 있다. 이는 한국의 첨단 농업기술을 활용한 협력 사업 중 하나로 특히 국내 기업 중 일부는 이미 UAE, 카타르 등에서 스마트팜을 활용해 채소, 과일을 생산하고 있다. 이밖에 최근 시리아의 오랜 내전이 종식되면서 시리아 재건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시리아 재건 사업 규모는 약 4500억달러(약 655조8800억원) 이 상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국내 건설사 및 상사의 진출 기회가 예상된다. 다만 시리아 재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에 영향력이 큰 사우디, UAE, 카타르 등과 협력해 공동 진출하는 방식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또한, 시리아는 전쟁으로 인해 피해가 막심하므로 우리 정부의 무상원조 (ODA) 자금 등을 통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2025년은 한국 경제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은 올해 성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중동과 협력을 강화해 교역 및 국내 기업의 진출 확대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걸프협력이사회(GCC)와 자유무역협정(FTA) 그리고 UAE 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체결로 향후 한국과 중동과 교역과 산업 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질 전망이다.
용어설명
- * 1) 룩 이스트 (Look East·동쪽을 보라)
2005년 취임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 국왕이 미국, 서유럽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아시아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펼친 동방 정책이다. 2015년 압둘라 국왕 서거 이후에도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국가는 여전히 서부권 국가의 의존도를 낮추고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중국, 한국, 일본 등 선진 동아시아 국가를 적극 벤치마킹하고 있다.
* 2) 탄소 포집·활용· 저장(CCUS) 기술CCUS는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활용하거나 저장하는 기술이다. CCUS는 포집한 탄소를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탄소 포집·저장(CCS)과 탄소 포집·활용(CCU)으로 나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