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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모아멘 구다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韓, 중동 생산 거점 삼으면 아프리카·유럽·아시아 진출 용이”
  • 김우영 기자
  • 영국 헤리엇와트대 에든버러 경영대학원경영학 석사, 독일 마르부르크대 경제학 박사, 전 함부르크대·마르부르크대·LMU 뮌헨 방문 교수 및 연구원, 전 이집트 산업통상부 경제분석관

    “중동은 지리적으로 아프리카, 유럽, 중앙아시아로 진출이 유리한 곳에 있다. 만약 한국 기업이 중동에 생산 거점을 마련한다면 수출 네트워크를 대폭 확장하는 게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모아멘 구다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글로벌 통상 환경을 극복하는 데 중동 진출이 해법이 될 수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구다 교수는 손꼽히는 중동 경제 전문가로 통한다. 영국 에든버러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독일 마르부르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집트 산업통상부에서 경제분석관으로 근무하다가 2014년 한국에 왔다. 구다 교수는 “정보통신기술(ICT), 스마트기기,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성장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국이 우수한 기술력과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면 중동 시장을 비교적 쉽게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중동은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정치·문화·종교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장인 만큼, 현지 전문가와 기관의 도움을 받을 것을 조언했다. 구다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과 중동이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면 중동 유학생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우수한 교육을 받고 자국으로 돌아간 뒤, 한국 기업에 취직한다면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한국 경제와 문화를 전파하는 비공식 외교관 역할을 하게 된다”는게 구다 교수의 설명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우디가 사막에 짓고 있는 네옴의 미래 도시 ‘더 라인’조감도. 네옴

    2025년 주요 중동 국가의 경제 전망이 궁금하다.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가 혼재돼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는 2025년 국내총생산 (GDP) 성장률이 5%로 예상되며, 원유 생산 확대가 주요 요인이다. 아랍에미리트(UAE)도 4.2%의 성장률이 전망된다. 이스라엘도 무난한 성장이 예상된다. 반면 전망이 안 좋은 국가도 있다. 이집트는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2024년 3월 기준 인플레이션율(물가상승률)이 거의 40%에 달할 정도로 상승했다. 불확실한 정책으로 투자 유치가 어려워졌으며, 경제 안정성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란은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헤즈볼라와 시리아 지원으로 경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1월 2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했다. 앞으로 중동과 미국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사우디와 이스라엘에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반면, 이란 등 일부 국가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사우디에 대해 이전 조 바이든 정부보다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이득을 요구하는 현실적 접근으로, 사우디는 무역 확대와 국부 펀드를 활용해 협력해야 할 것이다. 반면, 이란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핵 합의 폐기와 군사적 압박이 예상되며, 정권 붕괴까지 논의될 수 있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트럼프의 복귀로 안보 강화와 대이란 군사행동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미국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것이다.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군사작전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라크에서도 유사한 조치가 예상된다. 이집트의 경우, 트럼프가 인권보다 경제적 이익에 집중할 가능성이 커, 미국의 지원이 확대될 수 있다. 다만 트럼프가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을 주변국으로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추진할 경우, 이집트가 이를 거부한다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튀르키예의 경우 트럼프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통제하려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긴장과 협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2025년 중동에서 한국 기업이 활약할 만한 분야는.

    “우선 시리아와 가자 지구 재건 사업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시리아에는 막대한 재건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사업 규모는 최대 4000억달러(약588억원)로 예상된다. 한국 건설 기업이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재건 비용이 최대 8000억달러로 추정되는 가자 지구도 협상에 따라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므로 신속한 대응이 요구된다.”



    사우디의 네옴 프로젝트1)는 어떤가. 많은 한국 기업이 네옴 프로젝트발(發)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하고 있다.

    “우선 네옴 프로젝트가 ‘단순 도시 개발 프로젝트’가 아니란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통치 비전을 담은 상징적인 프로젝트다. 세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사우디는 네옴을 통해 기존 전통적 이슬람법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협력의 중심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둘째, 네옴이란 도시가 건설되는 장소는 홍해 인근이다.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다. 중동 지역의 평화와 협력을 도모하려는 전략이 담겨 있다. 셋째, 사우디는 네옴을 두바이를 대신할 주요 경제 허브로 성장시켜 경제, 산업, 관광 중심지로 육성하고자 한다. 물론 자금 조달 문제와 중동 정세 불안정으로 프로젝트 진행이 다소 지연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빈 살만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한국 기업은 이 프로젝트를 단기적인 수익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네옴이 위치한 홍해 인근은 향후 한국 기업에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네옴 프로젝트를 이상적인 꿈이 아닌, 현실적인 사업 기회로 인식하고 접근하라는 뜻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북부의 킹압둘라금융지구(KAFD). 김우영 기자


    이 밖에도 한국이 주목할 만한 분야가 있다면.

    “교육이다. 중동의 부유한 유학생을 유치하란 뜻이다. 매년 63만 명 이상의 부유한 중동 학생이 해외로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한국으로 오는 유학생 수는 500여 명에 불과하다. 큰 기회를 놓치고 있다. 최근 K팝과 K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에 유학을 오고 싶어 하는 중동의 젊은 인구도 많아지고 있다. 이미 중동에 진출해 있거나 진출을 원하는 한국 기업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중동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 등 많은 한국 기업이 현지 인력의 기술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이 부담하는 추가 교육 비용이 상당하다고 한다. 이는 기업 성장에 장애 요인이다. 문화적 차이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한국에서 우수한 교육을 받고 돌아간 유학생을 고용하면 어떨까.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익힌, 신뢰할 수 있는 인재를 채용한다면 생산성도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협력 구조는 대학, 학생, 기업 모두에 긍정적이다.”



    실제로 한국에 유학을 오고 싶어 하는 수요가 있나.

    “2023년 이집트 주재 한국 대사관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대사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150명 정원의 강좌를 개설했는데, 수천 명이 넘는지 원자가 몰렸다고 한다. 수많은 청년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고,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하며, 한국에서 생활하고, 문화를 즐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이 한국에서 공부한 뒤 자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한국의 경제와 문화를 전파하는 비공식 외교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외교적으로 한국과 중동이 더 가까워지는 징검다리가 돼 줄 것이다. 그럼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도 더 원활해질 수 있다.”



    수요가 높은데 한국에 유학을 많이 오지 못하는 이유는.

    “정보를 얻을 창구가 너무 부족하다. 현재 한국 대학이 운영하는 영어 웹사이트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입학 절차도 복잡해 진입 장벽이 높다. 중동 학생은 장학금 없이도 유학할 준비가 돼 있으므로, 한국은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선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보호무역주의를 우려하고 있다. 중동과 협력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까. 

    “물론이다. 한국은 중동 시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보호무역주의 피해를 완화할 수 있다. 중동은 젊은층 인구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정보통신기술(ICT), 스마트 기기 분야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최근 많은 중동 국가가 탈석유 산업화를 추진하는 만큼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기회가 많다고 본다. 따라서 한국은 기술력과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현지 생산 및 유통 확대, 문화 맞춤형 마케팅 전략, 파트너십 강화, 한류를 활용한 브랜드 이미지 제고가 필요하다. 즉, 한국 기업은 중동 시장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보다 젊은 중동

    ※ 2020년 기준, 단위는 인구 연령 중앙값 | ※ OECD 수치는 회원국 평균치 조사 후 중앙값 | 자료_스태티스타·OECD·통계청


    중동을 글로벌 시장 진출 거점으로 삼으라는 뜻은.

    “2024년 6월 서울에서 열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기억하는가. 한국에서는 중동과 아프리카를 별개 시장으로 보지만, 사실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모로코, 이집트, 튀니지를 거점으로 삼는다면 한국이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하는게 용이할 것이다. 아프리카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튀르키예, 동유럽으로도 진출이 가능하다. 즉, 한국이 걸프협력이사회(GCC)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고, 중동 전체 시장으로 접근한다면 더 많은 국가와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다. 실제로 이집트 삼성전자공장에서 생산되는 TV 스크린의 85%가 55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이 중동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은.

    “사우디와 UAE 간의 경제적 경쟁 구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중동 국가와 협력할 때 단기 이익만 노리지 말고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했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많은 한국 기업이 중동 정부 또는 기관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손 놓고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동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려면 계속 문을 두드려야 한다. 현지와 신뢰 구축이 필수다. 가장 좋은 방법이 현지에 거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상대방과 대화하고 협력하며 존재감을 확보하고 신뢰감을 쌓아라.”



    참고할 만한 사례는.

    “미국 상공회의소(이하 암참)다. 암참은 중동 각국에서 정기적인 비즈니스 협의회를 개최한다. 현지 정부와도 긴밀히 협력해 장기적인 경제협력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도 중동 각국에 대한상공회의소 사무실을 마련해 중동 각국과 협력을 체계적으로 강화하면 어떨까. 그럼 양국 기업 간 실질적 협력 기회를 제공하고, 정책적 조율을 통해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지금 한국과 중동 간 협력은 일회성 계약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식적이고 정기적이며 체계적인 협력 플랫폼을 마련해야 한다.”



    중동 진출을 준비 중인 기업 또는 기관에 조언을 준다면. 

    “현지 전문가 및 기관을 활용해 시장 환경을 정확히 파악하라. 중동 시장은 경제적 요인 뿐 아니라 정치·문화·종교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환경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또한, 중동과 MOU를 체결할 때 신중하게 접근하라. 협력 파트너 선정에 주의가 필요해서다. 영향력이 낮은 기관과 협력할 경우 한국의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다. 이는 다른 국가가 한국의 신뢰도를 의심하게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표면적인 접근 방식을 지양하고, 장기적 신뢰 구축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현지에서 강력한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 기업 혼자서는 어렵다. 정부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용어설명

    • * 1) 네옴(NEOM) 프로젝트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추진하는 미래형 스마트 도시 프로젝트. 50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홍해 인근에 ‘더 라인’ ‘옥사곤’ ‘신달라’ ‘트로제나’ 등의 도시를 세우겠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