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깊이 보기

특별기고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원장 예측 불허 트럼프 2.0, 우리 하기에 달렸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이 11월 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미국 대선에 따른 향후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와 업종별 수출을 논의하는 글로벌 통상전략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내년 1월 시작하는 미국 신행정부의 정책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당선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1월 5일(현지시각) 미 대선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의 승리는 불법 이민자와 고물가에 대한 비숙련 노동자의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자국 영향력의 축소와 경제 활성화를 원하는 유권자의 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겸 민주당 후보의 선거 전략 실패가 불러온 결과로 해석된다. 낙태나 이념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해리스와는 달리 트럼프는 먹고사는 문제, 즉 불법 이민과 인플레이션 그리고 무역적자 문제 해결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면서 승리를 따냈다. 



통상 정책 재편 현실화

트럼프의 재집권은 한미 통상 관계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한다. 첫째는 동맹, 비동맹 상관없이 대미(對美) 무역 흑자국에 대한 미국의 무차별 압박이 시작될 것이다. 둘째는 정책의 비일관성 문제다. 트럼프 진영은 화석연료 생산 증대, 신재생에너지 보조금 축소,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등을 추진하며 민주당 지우기에 나섰다. 2032년까지 신차 66%를 무공해 차량으로 전환한다는 환경청(EPA)의 기존 방침이나 연기금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의무 등도 사라진다. 셋째는 주요 무역협정 재협상 추진이 현실화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이 중국의 대미 우회 수출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는 2026년 예정된 이 협정의 재협상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폐기도 점쳐진다. 넷째는 파상적인 대중(對中) 공세다. 무역, 기술, 인력, 자본의 이동에 대해 미국은 각종 규제와 제재를 쏟아낼 것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 韓 산업에 양날의 칼

이제 한미 통상 관계의 변화가 우리 주요 산업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해 알아보자. 반도체의 경우 미국의 강력한 대중 견제는 우리에게 최종 수요 감소와 반사적 공급 증가라는 양날의 칼과 같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차별 지급 혹은 유예 가능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미국의 제재 강화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내 배터리 생산 및 구매 보조금 축소 혹은 폐지 가능성 또한 가시화될 조짐이다. 인공지능(AI)이나 자율주행 전기차, 로봇 택시, 에너지 저장 산업, 우주산업 등에 있어서는 정부 효율화를 통한 미국의 선도적인 사업 추진이 예상된다. 미국의 고립주의 심화로 주요 동맹국의 방위비 증가가 예상되면서 한국 방산 업체는 수출 기회 확대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트럼프 집권 후 자국 기업 육성책이 강화된다면 한미 방산 협력이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조기 종료에 따라 국내 방산 수출이 단기적 급감을 겪을 수 있다. 건설업은 종전 시 재건 사업으로 수주가 기대되지만, 트럼프의 친(親)이스라엘 강경 노선은 중동 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 건설 업계에 부정적 요소로 남아 있다. 조선업은 트럼프가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한미 조선 산업 협력을 강조하면서 미국 함정의 유지·보수 및 수리, 정비(MRO)에 한국 조선업 참여의 청신호가 켜졌다.



미국에 ‘우리는 훌륭한 파트너’ 적극 알려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응 전략을 구사할 것인가. 첫째, 한국 기업이 투자한 지역의 주지사, 상원, 하원, 노동조합 등의 말과 글 그리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백악관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 한국이 창출하는 연 20만 명 이상 고용 효과와 배터리, 반도체, 자동차 등의 획기적인 미국 내 생산능력 향상을 강조하면서 한국에 우호적인 정책의 일관성을 미국 조야에 요구해야 한다. 특히 FTA 파트너인 한국에 대한 보편 관세 부과가 미국의 이익에도 반한다는 점을 미국 소비자 단체와 연대해 홍보할 필요가 있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미국의 ‘극단적인 자국 우선주의’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은 1970년대의 미국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은 당시 일방적으로 남베트남 철군, 주한 미군 축소, 중국과 수교 등을 진행한 바 있다.


중국 또한 미국의 고립주의를 기회 삼아 대안적 국제 질서 구축에 나설 것이다. 미국과 직접 충돌은 피하면서 한편으로는 미국의 동맹국을 좌표 찍어 미국과 간극을 확대하는 이른바 ‘쐐기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여 신중한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 이처럼 향후 한국에 대한 미국발 정책 변화의 파급효과는 우리 하기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면서 시간을 두고 그 양상이 뚜렷해질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2.0 시대, 우리가 당면한 절대 과제는 미국의 ‘경제 생태계’와 ‘자체 공급망’ 구축에 꼭 필요한 파트너로 한국 기업이 얼마만큼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면 이 난국을 잘 헤쳐나갈 것으로 믿는다. 우리에겐 위기 극복을 위한 ‘성공 DNA’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