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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코스타스 아르코라키스 예일대 교수 "韓 서비스 수출 늘리고 자원 부국과 공급망 협력 강화해야”
  • 이용성 기자
  • 코스타스 아르코라키스 예일대 교수 미네소타대 경제학 박사, 현 예일대 지역문제연구소 공동소장, 현 ‘국제경제학 저널’ 편집장, 전 시카고대 방문교수

    “통상 정책 로드맵의 이행 방향이 통상적인 관세 인하 논의에 멈춰서는 안 된다. 서비스 수출을 늘리고 공급망 관련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핵심 자원이 풍부한 나라와 그렇게 해야 한다.” 1979년생으로 올해 45세인 코스타스 아르코라키스(Costas Arkolakis) 예일대 교수는 국제 통상과 거시경제 분야의 젊은 석학이다. 모국인 그리스의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거시경제 분야의 손꼽히는 연구 명문 대학인 미네소타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28세의 나이로 조교수로 예일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연구와 강의에서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아 그동안 시카고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프린스턴대, 노스웨스턴대, 미시간대 등 내로라하는 명문대의 방문교수를 두루 역임했다. 2021년부터 ‘국제경제학(International Economics) 저널’의 편집장을 맡아왔으며, 현재 예일대 지역문제연구소 공동 소장을 겸하고 있다. 아르코라키스 교수에게 서면으로 우리 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통상 정책 로드맵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지정학적 리스크 확산 등으로 교역에 혼란이 커진 지금 한국이 앞장서서 무역과 투자에서 한층 높은 수준의 개방성을 과시하고 경제협력의 폭도 더 넓혀가야 한다. 그게 한국 경제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의 통상 정책 전반에 관한 의견이 궁금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며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지정학 리스크 확산 등으로 교역에 혼란이 커진 지금 한국이 앞장서서 무역과 투자에서 한층 높은 수준의 개방성을 과시하고 경제협력의 폭도 더 넓혀가야 한다. 그게 한국 경제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기도 하다. 상품 수출에 비해 서비스 수출 규모가 몇 분의 일 수준에 머무는 것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여행과 엔터테인먼트, 정보기술(IT) 관련 서비스 수출 규모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수출) 기여도가 놀라울 정도로 낮다.”



    한국 정부는 최근 ‘통상 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0%를 커버할 수 있도록 확장하여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지정학 리스크에 더해 세계 1·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여전한 상황에서는 더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통상 정책 로드맵의 이행 방향이 통상적인 관세 인하 논의에 멈춰서는 안 된다. 서비스 수출을 늘리고 공급망 관련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핵심 자원이 풍부한 나라와 그렇게 해야 한다.”



    FTA 및 경제 블록에 가급적 많이 참여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생각인가. 따져봐야 할 조건이 있을까.

    “자유무역 확대가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넘치도록 충분히 있다. 하지만 자유무역 확대로 인한 혜택이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며, 일부는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알리는 건 중요한 과정이다. 외국과 경쟁이 더 치열해질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불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몇 년 동안 무역에 반대하는 일부 그룹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정적인 부분도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어떻게 짚어야 할까

    “FTA를 설계할 때 관련 국가의 정부는 항상 외국과 경쟁이 직업과 산업군, 지역 등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고 부작용을 상쇄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손해를 볼 집단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무역 통합을 추진할 경우 유권자의 반감을 일으켜 향후 또 다른 중요한 통합 기회나 경제정책 추진에 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통상 정책 로드맵에서 유럽연합(EU)과 디지털·녹색 전환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한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을 ‘제로(0)’로 만들어 ‘탄소 중립(넷제로)’을 달성하기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 추진에서 아직 뒤처져 있다. 반면 EU의 여러 나라는 앞서나가고 있다. 따라서 녹색 전환에서 EU와 협력을 모색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다수의 EU 국가는 청정 성장과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제고와 규제와 인센티브라는 ‘채찍과 당근’을 병행해 녹색 전환을 눈부신 성공으로 이끌었다. 에너지 가격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녹색 전환은 환경은 물론 경제적인 중요성이 크다. EU의 안목과 노하우를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적극 수용해야 한다.”



    네덜란드 벨트호벤에 있는 ASML 본사.


    네덜란드와 반도체 기술 관련 협력도 언급했다. 호주·인도네시아 등 핵심 협력 대상 5∼6개국과 양자 ‘공급망 협력협정(SCPA)’ 체결 이야기도 나왔고.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은 최첨단 나노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노광장비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발 공급 리스크를 고려할 때 네덜란드와 협력은 한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주요 에너지 광물을 중심으로 공급망 위기가 불거질 우려가 있다. 공급망 협정 강화는 그런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ASML은 최첨단 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세계 유일한 회사로 삼성전자, 인텔, 대만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가 ASML의 장비를 구하기 위해 수천억원을 싸 들고 줄을 설 정도로 힘이 막강해 ‘슈퍼을(乙)’로 불린다. EUV 노광장비는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에 빛을 쏴 미세한 회로 패턴을 그리는 데 사용된다.



    미·중 갈등 속에서 두 나라 모두와 경제적으로 가까운 한국은 어떻게 정책의 중심을 잡아야 할까.

    “한국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 정부는 공정한 무역 협력을 통해 교역 상대국과 공급망을 최대한 다변화해야 한다. 과거의 주요 수출국들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한국이 자유무역 수호를 위해 선봉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을 충분히 들여 신중하게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국도 때로는 그런 노력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독일은 지난 몇 년 동안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거의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존했다. 그런데 서방과 러시아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독일로 가는 러시아산 가스 수출이 갑자기 중단됐고, 그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치솟아 큰 피해를 입었다. 이는 결국 독일 제조업의 침체로 이어져 지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 대부분 국가가 높은 성장을 기록했던 2023년, 독일 경제는 선진국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독일의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0.1%다. 독일경제연구소(ifo) 기업 환경 지수는 지난 4개월 연속 하락세이고, 기업 파산율은 지난 10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투자 부진도 경제 침체의 주요 원인이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투자는 OECD 최저 수준이다. 투자 부진으로 기업 환경도 나빠졌다. 세계은행의 2020년 기업 환경 평가 창업의 용이성에서 독일은 190개국 중 125위에 위치했다. 영업 허가를 받는 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30일이 걸리지 않지만, 독일에선 120일 이상 걸린다.



    + 한국·OECD 서비스 수출 증감률

    단위: %



    다가오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세계무역의 흐름이 바뀔 가능성도 있지 않나. 

    “무역에 대한 반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고조됐지만, 조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카멀라 해리스와 트럼프 중에서 누가 승리해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이 산업 역량 강화와 기술혁신에 집중하면서 미국의 대등한 경쟁자로 부상한 것이 미국에서 보호무역주의가 부상한 근본적인 원인이며, 이런 상황이 가까운 미래에 변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우선 한국은 의료,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서비스 부문의 수출을 전반적으로 늘려야 한다. 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한 문화 분야의 높은 위상에 힘입은 소프트파워 강점을 살려 서비스 수출 확대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시장에서 추가적인 경제 통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익도 막대할 것으로 본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의 자유무역 확대 움직임은 미국과 서유럽, 중국 사이에 발생한 균열과 대조를 이룬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전 세계 상품 수출 총액은 2013년 18조9000억달러(약 2경5214조원)에서 2022년 24조9000억달러(약 3경3219조원)로 31.7% 증가했다. 반면 세계 서비스 수출 총액은 같은 기간 4조8000억달러(약 6403조6800억원)에서 7조달러로 44.8% 늘었다. 세계 총수출 중 서비스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에 불과하지만, 서비스 수출 증가율은 제조업에 비해 40% 이상 빠른 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상품 수출의 경우 2013년 세계 7위에서 2022년 6위로 높은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지만 서비스 수출은 동기간 세계 14위에서 15위로 오히려 다소 주춤했다. 전 세계 총수출 중 서비스 수출 비중은 20% 정도지만, 한국은 15% 내외에 머물고 있다.



    아프리카 등 미개척 신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산업 발전, 경제정책, 인프라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하고 독보적인 경험을 한국은 가지고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그런 한국을 배우고 싶어 한다. 정책만 제대로 뒷받침해 준다면 천연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성장 잠재력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무더운 날씨와 척박한 환경, 쿠데타·내전·독재·부정부패 등으로 발전 가능성이 작은 곳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구리, 희토류 등 광물성 자원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아프리카는 금(전 세계 매장량 40%)과 다이아몬드 등 귀금속을 넘어 기후 위기로 시급해진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핵심 광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우라늄, 다이아몬드, 철 등 주요 광물의 30%가 매장돼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이미 전기차 양극재에 사용되는 코발트의 전 세계 1위 생산국이다. 탄자니아와 마다가스카르는 흑연이 풍부하다. 한국이 올해 처음 서울에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연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