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팩트 읽기
8월 22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 현안 관계 장관 회의에서 확정된 ‘통상 정책 로드맵’은 우리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넓은 ‘경제 운동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우리나라의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0%까지 확대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 GDP 85%를 차지한 우리나라의 FTA 네트워크 순위(2위·2023년 말 기준)는 1위인 싱가포르(87%)를 뛰어넘게 된다. 공급망 등 산업 협력을 강화한 협정인 경제동반자협정(EPA)을 비롯해 세계 각국과 적극적으로 FTA를 추진하면서 더 촘촘하게 통상 네트워크망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기후변화 등 신통상 이슈와 공급망 등을 중요한 정책 이슈로 삼겠다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당면한 과제”라면서 통상 정책 로드맵의 취지를 설명했다. 1994년 대외 통상을 강화하기 위해 상공자원부가 통상산업부로 개편한 지 10여 년 뒤인 2003년 FTA 로드맵이 나오고, 이후 10년이 흐른 후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출범했고, 이후 10여 년 만에 국내 첫 통상 정책 로드맵이 나왔다.
정부는 FTA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아세안·인도·중동·중앙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고, 수출·생산 기지와 핵심 광물 공급망 다변화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세계 10대 자원 부국인 몽골, 유라시아 네트워크의 핵심인 조지아 등과 EPA 협상을 진행 중이고, 9월 26일 발칸반도, 동남부 유럽의 전략적 요충지인 세르비아와 EPA 협상 개시 선언을 했다. 이밖에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과 EPA 협상을 추진해 서남아 통상 벨트를 구축하고, 탄자니아·모로코 등과도 EPA 협상을 추진해 아프리카와 협력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GCC(걸프협력회의)·에콰도르 등 이미 협상을 타결한 중동·중남미 지역 FTA 발효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한국의 주력 시장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다층적 FTA를 체결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중·일 FTA 협상을 재개하고, 말레이시아·태국과 양자 FTA 협상도 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통상 정책 로드맵은 세계무역기구(WTO) 중심 다자 통상 체제가 약화하고, 주요국이 경제 안보를 중시하는 등 국제 통상 질서 패러다임이 크게 변화하는 시점에 발맞춰 나왔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중국 등 4대 주요국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 등으로 경제협력 지평을 확대할 방침이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가 공급망 다변화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지난 6월 사상 처음으로 개최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와 한·중앙아시아 K실크로드 협력 구상 등을 발판으로 글로벌 사우스와 경제·산업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주요 자원 보유국과 광물 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한편, ‘K산업 연계형 공적개발원조(ODA)’를 추진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와 장기적인 상호 호혜적 관계를 마련한다. 이를 통해 ‘5대 수출 강국 도약’과 ‘통상 네트워크 90% 달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해 글로벌 통상 중추 국가로 부상한다는 게 정부의 청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