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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앤 크루거 스탠퍼드대 석좌교수 "美 경제 대체할 곳 없어 모두가 달러 원해… 달러 약세 전환 기미 안 보여"
  • 이용성 기자
  • “규모와 폭에서 미국 경제를 대체할 마땅한 곳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달러를 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달러 가치가) 피크에 달했을지는 몰라도 아직 약세 전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앤 크루거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1980년대 여성 최초로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에 오른 경제학계의 석학이다. 2001~2006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로 아르헨티나와 튀르키예 등 원조를 제공한 국가와 협상을 주도해 명성을 쌓았다.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 behavior)’를 개념화 한 그는 2011년 노벨경제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지대추구행위란 생산성에 도움 되지 않는 방법으로 자원 배분과 관련된 법적·제도적 환경을 바꿔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인허가 등 정부의 각종 규제는 각 경제주체의 지대추구행위를 유발, 경제적 자원을 낭비하게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국제 금융 콘퍼런스 참석을 위해 방한한 크루거 교수를 서울 중구 롯데호텔서울에서 만났다. 1934년생으로 올해 아흔인 노교수의 미국과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한 분석은 날카롭고 막힘이 없었다. 크루거 교수 기자회견의 주요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미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보나.

    “대선 하나만 해도 큰일인데 여러 굵직한 일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불확실성이 전에 없이 커졌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의 특이한 족적도 미국 경제에 그대로 남아있다. 팬데믹 기간에 정상적인 소비를 할 수 없었던 미국인은 저축을 크게 늘렸다. 가처분소득의 5%에 불과하던 저축률이 13%까지 올라갔으니, 엄청난 금액이 쌓인 것이다. 이후 일상이 회복되면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늘었지만,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다. 


    저축 덕분에 수요가 높게 유지되면서 물가 상승이 가팔라졌다. 미국의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할 만큼 엄청난 상황에서 초과수요가 얼마나 유지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미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킹 달러’로 불릴 만큼 달러가 독보적인 강세를 유지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중동 문제로 빠져나온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돼서 달러는 계속 강세다. 피크에 달했을지는 몰라도 아직 약세 전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에스와르 프라사드(2015년 국내 출간된 ‘달러 트랩’의 저자인 코넬대 경제학 교수) 교수의 주장대로 규모와 폭에서 미국 경제를 대체할 마땅한 곳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달러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금리를 올리지는 않겠지만, 올해 내리지 않는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물가 상승보다 임금 상승 폭이 클 정도로 미국 노동시장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연준은 어떤 결정을 할지, 아직 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어떤 결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배경이 무엇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연준이 금리를 인하했는데 그 이유가 미국 경제 둔화 때문이라고 하면 좋은 소식일 수 없다. 반면에 미국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금리 인하를 했다면 좋은 소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연준이 금리 인하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

    “인플레이션 압력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노동시장도 타이트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아직 구인 공고가 많을 정도로 근로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물가 상승보다 임금 상승 폭이 더 클 정도다. 연내 한 번 정도 인하를 많이 생각하는 것 같고, 연준도 이렇게 소통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이러한 결정도 유보적이라는 뜻이다. 지금으로서는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떨어질지, 고용 상황이 어떤지 지켜봐야 한다. 지금까지는 미국 경제에 초과 수요가 남아있는 상황이라 금리가 높게 유지되고 있고, 또 재정지출이 확대됐는데 대선을 앞두고 재정지출이 줄어들 것 같지도 않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커진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연준의 금리 결정을 한국은행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각 나라와 세계경제 상황을 고려해 균형 잡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연준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경제의 현재 상황은 어떻게 보나.

    “내가 아는 한 한국은 비교적 잘하고 있고 경제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중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겪는 고유의 문제는 있다. 원화 약세도 일정 부분 그런 상황과 관련 있는 것으로 외부에서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잘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 부러워할 만큼 상황이 괜찮다.”



    + 국제 결제 통화별 비율

    단위: % | ※ 2023년 11월 기준 | 자료_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그런데 왜 증시는 약세를 면치 못하는 걸까.

    “주가는 언제든 오르고 내릴 수 있다. 증시가 항상 올라야 건강한 거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규모와 깊이가 있어서 소수에 의해 출렁이지 않고 실물경제를 제대로 반영한 증시가 건강한 증시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인 2007~2008년 연준은 불황을 막으려고 매우 애를 썼다. 사람들은 ‘아, 불황은 이제 없겠구나. 주가는 오르기만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대폭락으로 이어졌다. 지금 미국 증시에는 ‘광풍’에 가까울 정도로 인공지능(AI) 관련 종목의 인기가 높다. 만일 AI 관련 혁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미국 증시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 해도 이전 상승장이 실물경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은 AI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으로 인해 급등했던 글로벌 증시가 조정에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의 주식 리서치 책임자인 짐 코벨로는 “AI에 대한 상업적 희망이 과장돼 있다”며 “이를 훈련하고 실행할 컴퓨팅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이 의문”이라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클레이스 분석을 인용해 “빅테크가 2026년까지 AI 모델 개발에 연간 약 600억달러(약 83조2980억원)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 수익은 약 200억달러(27조7660억원)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빅테크가 AI에 쏟아붓는 엄청난 양의 자금에 비해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어 이것이 금융 버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것이다.



    미국의 경제정책은 보호무역주의를 향하고 있는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동안) 중국과 관계를 맺는게 좋지 않다고 국민을 설득했고, 조바이든 대통령도 더 이상 반대하기 어려운 입장이 돼 버렸다. 그렇다 해도 대선 후보가 모두 ‘보호무역주의’를 외치는 건 이례적이다. 미국인은 이제 별다른 증거도 없이 모든 물건을 미국에서 생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모든 수입품에 10%, 중국산 제품에 60% 추가 관세 부과를 공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첨단 기술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썼다. 두 후보가 ‘누가 더 많이 약속하는지’, 공약 경쟁을 벌여 왔다. 누가 승리해도 정부 지출은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증세에 대한 논의는 없다. 최상위 부자 부유층 과세 논의는 있지만 그렇게 된다 해도 세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을 것이다.”기자회견은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사퇴 이전에 진행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7월 21일(현지시각) 공개서한을 통해 사퇴를 선언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 정책은 어떻게 보는지.

    “보조금을 통해 미국에서 반도체와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의 산업을 육성하려는 바이든의 정책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특히 반도체로 인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미국 외에도 한국과 일본 등 나라마다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반도체 제품이 시장에 쏟아질 것이고, 그 결과 시장은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미 많은 기업이 투자 계획을 축소하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원가와 관련 기업의 운영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고, 다른 나라에서 더 싸게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미국산 반도체는 어떻게 되겠는가. 얼른 교훈을 얻고 경로를 수정하길 바랄 뿐이다.”



    중국 경제 상황은 어떤가. 

    “태양광 시설과 주택 과잉 공급 등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다. 과거만큼 성장세를 회복할 수 있을지 묻는다면,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에 중국은 마지막 순간에 가서 방향을 잘 잡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전보다 좀 더 심각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중국이 미국에 화해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 정치인들이 귀를 닫고 있는 것 같다.”한국 경제에 저출산 문제가 닥쳤다.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의 문제다. 물론 한국이 문제를 빨리 맞이한 측면도 있다. 해결책으로 프랑스가 효과를 본 ‘보육 시설 늘리기’나 미국의 이민정책을 제안한다. 미국도 현재 출생률이 인구대체율에 못 미치지만, 아직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것은 이민정책 덕분이다.”




     + PLUS POINT 

    ‘달러 트랩’ 저자 에스와르 프라사드 “세계는 달러 덫에 빠졌다”

    인도 출신인 에스와르 프라사드 미국 코넬대 교수(무역정책) 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세계적인 국제 통상 전문가이자 중국 전문가로 명성이 높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연구 부문 수석과 중국 담당 책임자를 지냈으며 미 상원 금융위원회와 금융서비스위원회 자문위원, 인도 정부 금융개혁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연구 분야는 통화경제학·노동경제학·경기순환과 거시경제학 등 광범위하다. 


    특히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신흥국의 통상 정책과 통화정책에 관한 활발한 저술과 기고 활동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2008년에는 라구람 라잔(당시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전 인도 중앙은행 총재와 공동으로 신흥국 통화정책과 경제성장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15년 출간된 ‘달러 트랩(The Dollar Trap: How the U.S. Dollar TightenedIts Grip on Global Finance)’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졌다. ‘달러 트랩’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중국의 급부상에도 미 달러 위상에 변화가 없는 이유를 분석해 주목 받았다. ‘달러트랩(덫)’이란 중국이나 한국 등 각국이 장기적으로는 달러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큰 손실을 볼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채로 대표되는 달러 자산을 계속 보유할 뿐 아니라 더 늘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달러라는 덫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프라사드 교수는 책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오히려 세계 금융 시스템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쥐게 된 역설적 상황의 발생 원인을 설명한다.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정하게 됨에 따라 각국은 보호막으로 안전 자산(외환보유액)을 쌓게 된다. 문제는 안전 자산의 투자 대상은 미국 국채 외에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융 위기 이전에는 유로존이나 영국, 일본의 국채가 대안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이들 국가의 경제성장 전망이 어두워지고 국가 부채가 늘어나면서 안전 자산으로서 매력을 잃게 됐다. 안전 자산에 대한 수요는 늘었는데 이를 공급할 수 있는 국가는 줄어들면서 각국은 미국이 공급하는 달러에 더 의존하게 됐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