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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김종철·김도형·신범식 전문가 3人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 위한 각축전… “한국, 압축 성장 경험이 경쟁력”
  • 이은영 기자
  • (왼쪽부터) 김도형 현대엔지니어링플랜트영업실 상무, 신범식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장, 김종철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력국장이 6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현대엔지니어링 본사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통상’

    6월 초 아프리카 연합(AU) 54개 회원국 중 자격이 정지된 6개국을 제외한 48개국 정상과 대표가 한국을 찾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최한 대(對)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윤석열대통령은 정상이 직접 방한한 25개국 정상 전원 및 AU 집행위원장과 양자 회담을 열고 경제개발에 힘을 모으기로 약속했다. 6월 10~16일(이하 현지 시각)엔 중앙아시아 3개국(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순방도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3개국 정상을 만나 광물자원, 에너지, 인프라 분야 협력을 약속했다. 내년엔 한·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회의 개최도 추진하기로 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는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5% 안팎의 견조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어 유망 시장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크다.


    윤 대통령의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정상 외교는‘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와 협력 기대감을 키운다. 글로벌 사우스는 아시아, 아프리카,중남미, 중동 등 120여 개 개발도상국을 통칭한다. 글로벌 사우스는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 두 진영에 속하지 않은 ‘제삼세계’로 불렸다. 지금도 글로벌 사우스 국가는 특정 진영에 줄서기보단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 협력을 하는 실리주의적 외교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를 원조 대상보다는 경제 동반자로 접근하는 차별화된 통상 정책을 펼칠 때다. ‘통상’은 김종철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력국장과 김도형 현대엔지니어링 플랜트영업실 상무, 신범식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장 등 3인에게 글로벌 사우스 국가의 달라진 위상과 우리 기업의 진출 전략 등을 물었다. 



    한양대 기계공학 학·석사, 전 현대엔지니어링 쿠웨이트·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 지사장


    윤석열 대통령이 순방을 마친 중앙아시아 3국은 어떤 점에서 중요한가.


    김도형 현대엔지니어링 플랜트영업실 상무(이하 김도형) “기업에는 자원, 에너지 분야에서 의미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천연가스 매장량이 4위, 생산량은 12위로 알려진 천연가스 부국이다. 국가의 역량을 천연가스 생산과 부가가치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카자흐스탄도 석유, 천연가스 매장량이 각각 12위, 15위이며 광물자원도 풍부하다. 이번 순방에서 카자흐스탄 정부가 에너지 산업 육성에 매우 적극적임을 체감하고 왔다. 우즈베키스탄은 몰리브덴, 텅스텐 등 광물자원이 풍부한 나라로, 자원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김종철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력국장(이하 김종철) “순방엔 세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협업해 오던 에너지·플랜트 등 인프라 협업이다. 우리 기업이 현지에서 인프라 사업을 수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 한다. 두 번째는 핵심 광물자원 공급원 확보다. 여러 지정학적 위험 때문에 핵심 광물자원의 장기 공급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전엔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을 수입했지만, 지금은 개발, 탐사, 추출 등 초기단계부터 협업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세번째는 산업 다각화다. 중앙아시아 3국은 단순히 광물자원 수출에만 만족하지 않고, 제조, 서비스 산업을 키워나가려는 수요가 있다. 관련해 우리 정부와 기업이 도움 될 수 있도록 협업하려 한다.”


    신범식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장(이하 신범식)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중앙아시아는 앞으로 러시아와 관계를 맺는 데 굉장히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다. 지금도 이미 그렇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지 3년 차가 됐는데, 러시아는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있고 교역량도 늘고 있다. 서방 제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회복할 수 있었는지 보니, 모두 중앙아시아를 거쳐 우회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러시아에서 빠져나온 정보기술(IT) 관련 인력이 중앙아시아로 흩어지면서 그곳에서 IT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이런 디지털 노마드를 붙잡기 위해 이들에게 국민권에 준하는 권리와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 우리 기업은 이런 변화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각국은 어떤 발전 전략을 취하고 있나.

    신범식 “에너지와 광물자원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발전 전략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카자흐스탄은 에너지 분야 의존도가 높은 데 반해 우즈베키스탄은 상대적으로 인구 평균 연령이 낮고, 중앙아시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지리적 위치도 중앙아시아의 중심부에 있어, 교통과 물류를 비롯해 여러 산업적 인프라에 대한 개발 수요가 크다. 투르크메니스탄은 그간 천연가스로 축적한 국가의 부(副)를 어떻게 투자할지에 대한 고민이 큰 것 같다.”



    3국과 어떤 협업을 기대하고 있나. 

    김종철 “이번 순방에서 민간 부문에서 63건의 계약과 업무협약(MOU)이 체결됐다. 광물자원 분야와 관련해 중앙아시아는 리튬, 텅스텐 등 아직 발견되지 않은 매장량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우리는 광물을 원재료로 하는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을 보유하고 있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기업이 협력해 온 에너지·플랜트 부문에서도 실질적인 수주 성과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한다.” 



    김도형 “이번 순방으로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두건, 카자흐스탄에서는 한 건의 협약을 맺었다. 각국 특성을 보면, 투르크메니스탄 기업은 국영이어서 G2G(정부 간 계약) 지원이 있는 경우 더 큰 추진 동력이 생긴다. 덕분에 현지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그간 변전소 공사 한 건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실적이 없었다. 불모지였는데, 이번 기회로 현지 발주처의 중장기 사업 계획과 적극적인 추진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투르크메니스탄에 이어 높은 가능성을 확인했다.”




    중앙아시아 순방엔 세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에너지·플랜트 등 인프라 협업,
    두 번째는 핵심 광물자원 공급원 확보,
    세 번째는 산업 다각화다.



    중앙아시아 순방의 성과를 평가하자면.

    신범식 “시기적으로 좋았다. 과거 대우자동차가 우즈베키스탄에 공장을 지어 우즈베키스탄이 자동차 생산국이 됐다. 대우자동차가 무너진 뒤엔 현지 국영기업이 인수해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 현지에서는 ‘마티즈’가 국민차로 여겨진다. 한국에 대한 평판을 높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기업 진출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우자동차의 투자가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데 좋은 기초가 됐다. 이번 순방은 대우자동차 효과가 점차 한계를 드러내던 시기에 이뤄져 시기적으로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중앙아시아와 협업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도형 “제일 힘든 건 언어다. 기본적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는 러시아어를 공통으로 쓴다. 카자흐스탄은 일부 경영진이 영어를 쓰기도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상대적으로 더 폐쇄적이어서 최근에는 투르크메니스탄어 사용을 고집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로밍을 막아 통신도 어렵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물류도 큰 리스크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란 제재 때문에 멀리 우회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국가 재정이 충분치 않은 관계로 발주처 사업 자금 조달이 원할하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서울대 외교학·정치학, 러시아 국립 모스크바국제관계대 정치학 박사, 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전 동북아시대위원회 연구위원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와 협력 중요성도 떠오르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는 우리나라에 어떤 경제적 의미가 있나.

    김종철 “아프리카 국가를 두고 ‘미래 성장 동력’‘마지막 남은 성장 동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사실 아프리카 국가는 ‘이미 진행 중인’ 성장동력이다. 특히 아프리카는 인구 14억 명, 국내총생산(GDP) 3조4000억달러의 거대 시장이다. 핵심광물자원도 다량 보유해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이들 국가와 협력을 위한 각축전이 벌어지고있다. 특히 예전에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주목했다면, 지금은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에 쓰이는 흑연,리튬, 우라늄 등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



    이번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는 어떤 성과를 거뒀나. 

    김종철 “산업통상자원부는 경제동반자협정(EPA)협상 개시,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 및 핵심 광물 협력 MOU 체결 등 아프리카 11개국과 12건의 성과를 달성했다. 부대 행사로 개최된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파트너십 상담회 행사 등을 통해 기업·기관 간 계약 및 MOU도 36건을 체결했다. 이와 더불어 우리 기업의 대아프리카 수출 확대 시 아프리카 진출 지원을 위해 2030년까지 76억달러 규모의 수출금융을 제공할 계획이다.” 



    지속 가능한 협업을 위해선 우리 역시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매력적인 파트너가 돼야 할 것 같다. 한국만이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은 무엇인가. 

    신범식 “한국의 압축 성장 스토리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도 우리처럼 국가가 주도해 빠르게 성장하는 꿈을 꾼다. 그래서 우리 기업에도 관심이 많다. 또 하나는 ‘체제’에 있다. 비서구 국가 중에는 가장 서구식 민주주의와 비슷한 민주국가이면서, 제국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김종철 “또 한국은 중앙아시아에서 대우자동차 우즈베키스탄 공장 건설, 투르크메니스탄 갈키니시탈황 시설, 롯데케미칼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프로젝트, 카자흐스탄 카라바탄 복합화력발전소 건설, 알마티 순환도로 건설 사업을 진행했다. 아프리카에서는 리비아 대수로 프로젝트, 카중굴라 대교 등 다수의 성공적인 협력 사례를 창출해 왔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의 영향력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신범식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에 인접해 있고 러시아어를 쓰지만, 무조건 러시아 편에 서지는 않는다. 실용적으로 판단한다. 이들이 어느 쪽에 무게를 실어주는가가 글로벌한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됐다. 향후 국제정치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중앙아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품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파트너다.” 


    김종철 “아프리카·중앙아시아를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존재감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핵심광물자원 공급, 글로벌 생산 기지 역할 측면에서 글로벌 공급망 내 글로벌 사우스의 역할과 중요성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프리카·중앙아시아와 경제협력 강화는 국제 질서의 변화 속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우리나라의 역할과 위상을 확대하는 동시에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경제 안보 강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