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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 팀장 중앙아시아 ‘K실크로드 협력 구상’에 거는 기대
6월 13일(현지시각)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 윤석열(왼쪽) 대통령이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잭 케루악(Jack Kerouac)의 소설 ‘길 위에서(Onthe Road)’의 주인공 샐 파라다이스는 우연히 알게 된 딘 모리아티(소설 속 인물)를 찾아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잇는 길 위를 끊임없이 내달린다. 길 위의 시간은 자신의 세계관을 완전히 부정하는 타자와 상호작용으로 점철된다. 자신과 전혀 다르게 사고하고, 소구하는 삶의 방식이 판이한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주인공 샐 파라다이스는 기존의 낡은 체제와 사고를 극복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드디어 조우한다. 따라서 길이 갖는 미덕은 서로 다른 장소를 연결하는 물리적 접합에 국한되지 않는다. 길을 통한 연결은 길 위에서 부닥치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경험 그리고 새로운 사고방식과의 신선한 조우를 함축한다. 그리하여 길은 사람의 에너지가 교차하는 역동을 의미하며 마침내는 창조와 혁신을 발현하는 정서적 장(場)으로 승화한다. 길이 필연(必然)하는 이러한 미덕을 역사적으로 현현(顯現)하는 곳이 바로 실크로드 한복판에 위치한 중앙아시아1)다. 


중앙아시아 겨냥한 'K실크로드 협력 구상'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중앙아시아 3국(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을 순방하며 시작을 알린 우리 정부의 새로운 외교 전략 ‘K실크로드 협력 구상’ 역시 이러한 길의 본질과 미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자유, 평화, 번영’을 표어로 하는 해당 외교 전략의 요체는 중앙아시아의지경학적 이점을 살리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강점을 극대화하여 ‘북방경제권’의 주요 협력국으로 부상하는 중앙아시아와 자유로운 민간 협력을 보장하는 상호 호혜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①자원 협력 ②개발 협력(경제협력) ③동반자 협력(인적 협력) ④체계적추진(협력 거버넌스 구축)을 세부 전략으로 상정했다. 



우라늄⋅구리 등 전략 광물 자원 협력

자원 협력은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가치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 이스라엘⋅하마스전쟁 등 가치관과 이념 대립이 물리적 충돌로 표면화하는 지정학적 불안과 공급망 분절화를 목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요 탄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른바 ‘핵심 자원’의 수급 안정화가 매우 중차대한 문제로 떠올랐다. 중앙아시아는 한국의 주요 수입광종(鑛種)이면서 전략 광종으로 지정된 우라늄,구리, 유연탄, 니켈 등의 광물 자원이 풍부한데, 최근 중앙아시아 각국은 리튬 개발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때마침 중앙아시아는 자원 개발 및 자원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성장 잠재력 극대화를 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물적 자본 및 기술 유치가 긴요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역시 전략 광종의 안정적 공급을 통해 공급망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원 부문의 양자 협력은 상호 호혜적이고, 따라서 협력 가능성과 시너지가 크다.



교통⋅전력 인프라 개발 협력 가능

개발 협력(경제협력)은 중앙아시아의 산업화 전환을 지원하고 사회·경제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순방한 중앙아시아 3개국은 장기 성장을 위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경제구조를 전환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중앙아시아에 있어 산업구조 전환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한국과 긴밀한 경제 협력은 자국의 지속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3국은 산업구조 전환의 일환으로 한국이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자동차, 기계·전자, 석유화학 등의 고부가가치 제조업 부문 육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개발 협력은 중앙아시아 성장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 될 뿐 아니라, 한국 역시 중앙아시아와 협력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경제활동 무대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상호 호혜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원활한 산업 고도화를 위해서는 전력의 효율적, 안정적 공급이 중요하다. 또한 생산성 제고를 위해서는 교통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이는 발전소 건설 등의 에너지원 개발, 송전망 효율화, 교통망 구축 등 사회·경제 인프라 협력 수요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당 부문에서 우리가 갖는 강점을 극대화하면 중장기적 관점에서 양자경제협력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



30만 한국 동포 인적 네트워크 활용

동반자 협력(인적 협력)은 협력의 주체인 인적 자원의 활발한 교류를 목표로 한다. 협력 주체의 진정한 상호 이해와 이를 통한 신뢰 형성이 안정적 협력의 필요조건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향후 협력을 책임질 새로운 세대의 인적·문화적 교류 활성화는 협력의 질적 측면에서 한·중앙아시아 미래 협력의 지속성을 제고할 것이다. 또한중앙아시아에는 30만 명이 넘는 우리 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강제 이주의 시련을 딛고 모국으로서 한국에 대한 애착과 한민족으로서 긍지를 품은 채 중앙아시아 각국 경제의 주축으로 성장했고, 지금도 활발한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물적·인적 지원을 계속하는 동시에 이들이 체득한 경제활동 경험과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차세대 협력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고위급 협력 거버넌스 구축

체계적 추진(협력 거버넌스 구축) 노력은 고위급 협의를 체계화하고 기업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협력의 궁극적 주체는 민간이지만, 민간의 원활한 협력을 독려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협력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양자의 협력 수요를 시의적절하게 반영하고 협력의 장애 요인을 체계적으로 소거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기적인 고위급 협의를 통해 협력 효과가 높은 새로운 협력 의제를 발굴하고 양자 협력 의지에 대한 강한 시그널을 민간에 보낼 수 있다. 


동시에 민간 협력을 방해하는 물적·제도적 요인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양자 간 비즈니스 포럼 정례화 등의 노력을 통해 새로운 협력 기회를 알리고 기존의 협력 성과를 홍보함으로써 상호 투자 확대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수많은 사람의 자유로운 비전과 역동적인 에너지가 쉴 새 없이 교차하던 실크로드는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연결과 역동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하는 창조와 혁신을 통해 번영을 약속하는 길의 본질과 미덕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전향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새로운 외교 전략인 ‘K실크로드 협력 구상’을 통해 이제 그 길에 다시 한번 역동의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한다. 그 길 위에서 다시 자유와 번영 그리고 평화의 역사가 열리길 희망한다.




용어설명

  • * 중앙아시아(1)

      아시아 대륙의 중앙내륙지역으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구성된 지역이다. 이 국가들은 과거 소련의 구성국이었지만 1991년소련 붕괴로 독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