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마로(여행작가) 사진 이마로, 제주특별자치도청
해외여행이 어렵게 된 요즘, 섬나라 제주가 여행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한라산을 비롯해 성산 일출봉과 거문오름, 만장굴 등 세계자연유산을 거느리고 있을 뿐 아니라 애월, 함덕, 김녕, 중문색달 등 투명한 물빛이 아름다운 해변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은빛 머리 풀어헤친 억새밭이 중산간의 오름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계절 특유의 정취를 자아낸다. 여권 없이도 구경할 수 있는 한국의 이국 풍경을 찾아 가을의 제주에 간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섬인 제주도는 오랜 세월에 걸쳐 화산 폭발로 생성된 화산섬이다. 섬의 한복판에 솟아오른 한라산(1,950m)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한반도 전체에서도 백두산(2,750m)에 이어 두 번째 고봉으로 꼽힌다. 제주 중산간지대의 주요 명소들은 바로 이 한라산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다. 한라산의 기생화산인 360여 개의 오름과 울창한 숲들이 대부분 중산간지대에 자리하며 비교적 최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거문오름과 만장굴도 이곳에 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않은가. 게다가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니 제주 특유의 정서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먹거리를 눈앞에 두고 갈 수는 없는 일. 돼지뼈를 우린 뜨끈한 육수에 두툼한 돼지고기 수육을 고명으로 얹은 고기국수는 육지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제주 토속 음식으로 유명하다.
가을날, 제주 여정에서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산굼부리다. 산굼부리의 서쪽 사면을 뒤덮고 있는 아름다운 억새밭을 보기 위해서다. 둘레만 2.7km에 달하는 산굼부리는 성산 일출봉, 섭지코지 등과 함께 제주의 이름난 관광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조금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을 제주 여행 플랜에서 산굼부리는 필수 코스다.
매표소를 통과한 뒤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사람들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곱게 머리 풀어헤친 억새들이 청명한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은빛 물결처럼 일렁이는 광경이 펼쳐진다.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억새 물결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간다. 억새밭 너머로 보이는 제주의 광활한 풍경은 내륙에서는 보기 어려운 스케일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억새밭 구경이 끝난 뒤에는 산굼부리의 분화구 안쪽을 구경하는 것도 잊지 말자. 산굼부리는 용암이 아닌 응축된 가스 폭발로 생성된 마르(Maar)형 화산이어서 다른 오름들에 비해 분화구가 유난히 넓고 큰 느낌이다. 한라산정상의 백록담과 비교해도 산굼부리의 분화구가 17m가량 더 깊다.
산굼부리에서 불과 3.5km 떨어진 제주 교천읍 선흘리에는 화산 천국 제주의 탄생 비밀을 간직한 거문오름이 웅크리고 있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에서도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한 거문오름은 분화구 둘레가 무려 4.5km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커서 그 주변에 형성된 숲 또한 깊고 울창하다. ‘검다’ 혹은 ‘신령스럽다’라는 뜻을 지닌 거문오름의 명칭도 이 같은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거문오름의 가치는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거문오름이 제주도에서 가장 긴 용암협곡을 형성시킨 모체이기 때문이다. 오름 생성 당시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제주의 동북쪽 사면을 흐르며 크고 작은 동굴들을 탄생시키는데, 여기에는 총 길이가 10km에 이르는 만장굴도 포함되어 있다. 만장굴은 전체 동굴 중 불과 1km 정도만 일반에 공개하고 있으나 용암이 흘러간 흔적을 고스란히 볼 수 있어 거대한 동굴의 규모가 그려진다.
거문오름 탐방 코스 중 가장 대중적인 코스는 ‘정상코스’다. 정상코스는 길이 1.8km로 가장 짧으면서도 정상을 통과하며 전망대에서 거문오름의 분화구를 조망할 수 있다.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출발해 울창한 삼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면 어느덧 거문오름 정상(456m)에 다다르게 된다. 다른 코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심한 경로지만 소요시간이 1시간 정도이므로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적당하다.
산굼부리와 거문오름 서쪽의 한라산 자락을 통과하는 1131번 지방도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도로이자 붉게 물들어가는 제주의 가을빛을 마음껏 탐닉할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제주에서 흔히 ‘5.16도로 숲터널’이라 부르는 이 구간은 도로 양쪽에 워낙 울창한 숲이 형성되어 있는 탓에 마치 나무가 가지를 뻗어 두 손을 맞잡은 양 터널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제주시에서 서귀포 방면으로 1131번 지방도를 달리다가 한라산 성판악 코스의 기점인 성판악휴게소를 통과하면 본격적인 단풍 드라이브길이 시작된다. 한라산의 허리춤을 휘감으며 돌아나가는 이 도로는 특히 단풍숲을 통과하는 구간에서 심하게 굽이칠 뿐 아니라 도로 폭도 매우 좁아지기 때문에 과속이나 추월은 절대 삼가야 한다.
한편 때 묻지 않은 원시림을 통과하는 1131번 지방도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산천단 곰솔 군을 비롯해 목석원, 성판악 등산로, 돈내코계곡 등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이 낳은 생태와 자연도 위치한다. 특히 도로 끝자락에 자리 잡은 돈내코계곡은 꼭 한 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한라산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난대 상록수림이 형성된 돈내코계곡은 계곡 자체도 좋지만 입구에서 상류 방면으로 약 1.5km 지점에 숨겨진 원앙폭포가 그 신비감을 더하는 장소다.
올해 제주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것들 중 하나는 바다와 해변이었다. 제주시 서쪽의 애월, 동쪽의 함덕과 김녕, 월정리 동쪽의 성산읍 일원, 그리고 서귀포 중문관광단지의 중문색달해변 등 깨끗한 백사장과 유난히 투명한 바닷물이 조화를 이룬 이국적인 풍경이 해외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주었기 때문이다.
애월읍은 해변도 좋지만 바닷가에 바짝 붙은 채 이어지는 해안도로 주변 풍경이 시시때때로 얼굴을 달리하며 해안 드라이브의 묘미를 선사한다. 동쪽의 함덕, 김녕, 월정리 세 곳의 해변 중 김녕은 워낙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타던 곳. 반면 함덕과 월정리는 최근 몇 년 사이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함덕은 호텔과 리조트, 맛집, 카페 등 여행 인프라가 훌륭하고 월정리는 예쁜 카페가 즐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쪽에 위치한 성산읍 일원은 거대한 왕관 모양의 성산 일출봉이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지역이다. 구좌읍 종달리의 지미봉이나 성산읍 시흥리의 말미오름에 올라서 천천히 사방을 조망하면 조각보처럼 알록달록한 당근밭이 펼쳐지고 그 끝자락에 환영처럼 성산 일출봉이 떠오른다.
2020 드론실증도시 구축사업 추진에 따라 제주도 곳곳에서 드론 비행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제주도는 드론의 활용범위를 넓혀나가기 위해 ‘배송 서비스’ ‘안심 서비스’ ‘모니터링 서비스’ 등 3가지를 드론 핵심 사업으로 추진한다. 특히 수직 이착륙이 가능해 배송에 적합한 ‘회전익(콥터형) 드론’, 넓은 지역을 안정적으로 비행하며 매핑 및 모니터링 기능을 제공하는 ‘고정익 드론’, 이 두 가지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드론 상용화를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또한 드론으로 한라산에 응급구호물품을 전달하는 시스템도 구축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