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유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사회·경제적 파워가 커지면서 경제활동 관련 의사결정에서 여성이 중요한 주체로 활동하는 여성경제인 쉬코노미(Sheconomy)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쉬코노미란 미국에서 여성 소비자가 전체 구매 결정에서 80% 이상을 담당하는 등 경제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착안하여 2010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처음 사용한 용어다.
미국에서 시작된 쉬코노미 열풍은 전 세계적인 산업구조 변화 속에 여성 경제인구가 증가하면서 주요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상승한 가운데 세계의 큰손인 주부를 일컫는 말들이 각 나라에 생겨났다. 한국의 강남 아줌마를 비롯해 유럽의 소피아 부인, 미국의 스미스 부인,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 중국의 따마 등이 대표적이다. 여성을 뜻하는 대명사 그녀(She)와 경제를 의미하는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로 여성이 경제 주체인 여성경제를 의미한다.
산업구조의 소프트화 및스마트화
개인의 만족감과 편안함 중시 문화 확산
1인1스마트폰 시대, SNS 통한 정보교류 활발
최근에는 소비뿐만 아니라 공급 주체 측면에서 여성의 파워가 강조되기도 한다. 유리천장(Glass Ceiling)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기업의 경영진(TMT; Top Management Team)에서 여성이 주요 직위를 차지하는 사례가 늘면서 여성의 입지에 대한 관심이 재조명되고 있다. IBM의 버지니아 로메티, 듀폰의 엘런 쿨먼 이후 2018년에는 미국 은행 역사상 최초로 여성 회장 웰스파고의 듀크가 등장했고, 최근 씨티그룹은 2020년 신임 CEO로 제인 프레이저를 선임했다. 금융, 의료, 제조,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여성 임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며, 특히 2020년 코로나19발 위기 속에서 미국 포천 500대 기업의 여성 CEO 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하는 등 최근 여성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가 큰 상황이다.
쉬코노미 트렌드의 확산 요인으로는 ①여성의 경제력 향상 ②사회·문화적 가치관 변화 ③정보기술(IT) 기반의 SNS 활용 확대를 들 수 있다. 먼저 서비스 경제 발전과 함께 산업구조가 소프트화 및 스마트화되면서 여성인력 수요가 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여성의 경제력 향상으로 직결된다. 최근 개인의 만족감과 편안함을 중시하는 문화로 변모하면서 여성의 소비 영역이 확장되는 등 사회·문화적 가치관이 변화된 점도 쉬코노미 트렌드를 지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인 1스마트폰 시대, SNS를 통한 정보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소비문화 트렌드의 전파력이 강력해진 환경이 형성되었고, 특히 SNS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여성을 중심으로 소비 정보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쉬코노미가 신(新)소비 트렌드로 급부상함에 따라 글로벌 소비재 업계는 여심을 자극하는 성능과 디자인을 강조한 제품을 적극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기존 명품 브랜드가 이미지 마케팅 차원에서 쉬코노미를 활용하기도 하고,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여성 주도의 경제 트렌드 변화에 참여하는 분위기다. 일례로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인 크리스찬 디올은 2017년 S/S 시즌, ‘We Should All Be Feminists’라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판매하면서 전 세계 스파(SPA; 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제조직매형 의류회사) 브랜드의 페미니즘 패션 신드롬을 주도했다.
미국 유명 연예인 제시카 알바는 세제 제조기업인 더 어니스트 컴퍼니를 창업하고, ‘여성 입장에서 개발한 세제’라는 슬로건 아래 세제 정기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출장 가는 워킹맘을 타깃으로 모유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밀크 스토크는 2019년 미국 경제지 <패스트 컴퍼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쉬코노미를 모토로 하는 상품의 범위가 IT·가전, 여행, 스포츠 등 일상생활과 밀착된 생활용품 및 여가 등으로 확대되면서 과거 여성 고객의 주요 관심사였던 패션·미용 분야를 뛰어넘고 있다.
걸크러시 열풍에 힘입어 여성 소비자가 스포츠, 주류, 자동차, IT·가전 등 기존 남성 위주로 여겨져온 영역까지 섭렵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글로벌 기업의 열정도 뜨겁다. 몽블랑은 기존 투박한 이미지인 만년필에서 벗어나 강렬한 레드 컬러에 메릴린 먼로가 고수하던 4인치 하이힐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메릴린 먼로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하여 전 세계 여성 소비자의 마음을 자극했다. 주류 브랜드인 디아지오는 위스키 조니워커의 여성판인 ‘제인워커’를 출시하고 판매수익 중 일부(1병당 1달러씩)를 여성단체에 기부하면서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활동에도 참여했다. 이와 같이 쉬코노미가 글로벌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가운데, 여성의 라이프 사이클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기업에 성장의 기회가 생길 것이다. 특히 쉬코노미를 기업의 단기적 마케팅 수단이 아닌 진정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관점에서 고려할 때 우수한 성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