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세계 무역질서를 좌우할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는 미국의 정권교체다. 1월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으로 미국의 통상정책이 바뀔 수 있어서다. 바이든 시대에 눈여겨봐야 할 통상 현안을 키워드를 중심으로 알아본다.
가장 관심이 높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 재임 당시에 시작된 미·중 통상 갈등의 향방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정권이 교체된 뒤에도 미국의 중국 압박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0년 11월까지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조 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6.8% 늘었다.
중국의 막대한 대미 흑자를 방치한다면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지장을 받는 것은 물론, 세계 패권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압박의 방식은 바뀔 수 있다. 미국 단독으로 중국의 특정 기업이나 상품을 겨냥해 수입을 금지하는 트럼프 방식만으로는 효과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 기업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는 자제하는 대신 동맹국과의 연대를 통한 공동 압박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해당 분야에서 이해관계가 있는 동맹국들과 협력 확대를 도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미국 국내 정치, 경제 문제해결에 초점을 둘 것으로 예상되나, 다자 무대에서 미국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하는 시각도 많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보다는 WTO체제 개혁 논의에 관심을 보일 전망이다. 현행 WTO체제가 산업보조금, 국영기업 이슈 , 개도국 지위, 혁신, 디지털 무역 등 변화된 글로벌 통상 환경에서의 이슈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는 시각이다. 현재 공석인 WTO 내 상소기구 위원을 임명해 WTO가 국가 간 무역분쟁을 실효적으로 중재할 수 있도록 기능을 복원하는 방안이 시작점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같은 분쟁해결 기능 회복은 회원국들의 자국 기업 지원 등 불공정 경쟁 행위에 WTO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여기엔 유럽연합(EU) 등 WTO 주요 회원국도 뜻을 같이하고 있다. 미국이 EU를 비롯해 한국과 일본 등 주요 동맹국들의 힘을 모으는 지렛대로 WTO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 부분이다. 이와 함께 바이든 정부는 중국에 대한 압박이나 디지털 무역 확산 등을 위해 WTO를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 주요 플랫폼을 갖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디지털무역 규범 정립은 세계 주도력을 강화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 여부도 관심이다. 미국 내 경제회복 이전에는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을 것이라는 바이든 정부의 입장과 병행하여, 바이든 정부 하에서 다자주의 무역체제의 부활이 유력시되는 만큼 포괄적·점진적이라는 개념을 붙여 CPTPP로 이름을 바꾼 이 지역 무역협정에 미국이 복귀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정치 및 경제적 주도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새로운 역내 무역 규범을 정립해나가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역학 관계를 감안하면, 미국이 추진하는 새로운 역내 무역 규범은 기본 규범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통상 과제까지 포함한 더 높은 개방도를 요구하고 참가국도 늘어날 수 있다. TPP 복귀나 CPTPP 가입 외에 새로운 협정 모델을 추진할 가능성도 상정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CPTPP에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역내 무역 규범 논의에 미국의 복귀가 전망됨에 따라 CPTPP 가입 추진 여부 등 대응 모색이 필요하다.
해외로 나간 각종 산업의 생산공장을 미국 내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제조업 회귀)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더 강화될 전망이다. 바이든은 이미 대선 기간에 트럼프의 ‘미국산 제품 우선구매(Buy American)’를 넘어 ‘미국인에 의한 미국 내 생산(Made in all of America by all of America’s Workers)’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왔다.
이를 위해 다양한 유인책과 제재 수단이 병행될 전망이다. 해외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데 대한 세액공제 혜택은 높이고, 해외 생산으로 미국에서 판매되는 각종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서는 추가 세금을 물리는 등의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완제품 공장의 이전에 관심을 가지던 트럼프 정부와 달리 부품 및 소재까지 신경을 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면서 미국산 부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에 따라 보조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거나 차등 지급하는 것 등이 가능하다.
바이든 시대의 통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다. 바이든 차기 대통령은 부통령으로서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함께했다. 당시 시행한 정책을 되짚어보면 앞으로 4년간의 미국 통상정책의 향방도 내다볼 수 있다. TPP는 오바마 정부가 주도한 것으로 공화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탈퇴했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 회귀 전략을 통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TPP가 아니더라도 아시아를 겨냥한 여러 통상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다.
당시 아시아 회귀 정책의 근본적인 이유가 중국 견제에 있었던 만큼 바이든 정부의 대중 압박도 트럼프 정부에서 이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정책을 계승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