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글로벌 통상환경의 변화가 가속되고 전 세계 경기가 침체한 가운데 한국경제는 효과적인 방역 조치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0년 12월 발표한 '주요 5개 국가별 올해 성장률 전망'에서 OECD 회원국 중 2020년 국내총생산(GDP) 위축이 가장 작은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코로나19 1년의 변화를 키워드로 점검해본다.
코로나19는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나 통용되던 글로벌 가치사슬 (GVC; Global Value Chain)이라는 단어가 일반인에게도 통용되는 계기가 됐다. 감염병 전파로 해외 공장이 문을 닫고, 각국의 코로나19 차단 노력으로 교통편이 끊기면서 효율성을 중심으로 수십 년간 다듬어진 국제 분업구조가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개별 국가와 기업들은 GVC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고 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사업장들을 불러들이는 리쇼어링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코로나19로 타격이 큰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활발하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비용문제 때문에 해외 사업장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은 가능한 한 국내에 두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2019년 격화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과정에 중요한 통상문제로 자리 잡은 보호무역 흐름은 코로나19로 더욱 강해졌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심각한 품귀현상이 벌어진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등 의료·보건용품의 확보를 위해 각국 정부는 자국 내 기업의 관련 물자 생산을 독려하는 한편, 해당 물품의 수출을 가능한 한 줄였다.
코로나19를 잠재울 수단으로 부각된 백신 확보를 놓고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을 코로나19에 따른 피해에서 구하겠다며 앞다퉈 지급하고 있는 보조금도 보호무역 흐름을 강화한다. 정상적인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라면 제재를 받았을 자국 산업 보호가 공공연하게 이뤄지면서 비관세장벽만 높아지고 있다. 독일과 인도 등은 코로나19로 경영난에 빠진 자국 기업을 외국 자본이 헐값에 인수하지 않도록 관련 심사 강화에 나섰다.
코로나19로 기존 통상 시스템이 상당 부분 흔들리는 가운데 새롭게 대두된 분야도 있다. 상거래와 교육, 의료까지 생활 전반에서 비대면 경제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디지털 통상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이동 제한 등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포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관련 기업들의 실적과 규모는 전례 없이 커졌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규제는 국가마다 제각각이다. 이에 따라 그간 지지부진했던 디지털 통상 관련 국제규범 정립 논의가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지난해 한국이 싱가포르와 논의를 시작한 국가 간 디지털 통상 관련 협정도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통상은 단순히 재화의 거래를 넘어 데이터 이동에 대한 제한을 어디까지 두는지 결정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무역협정 이상의 파급력을 지닌다. 일각에서는 감염병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는 개인 의료정보 활용 및 관련 정보의 국가 간 자유로운 이전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디지털 통상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코로나19는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경각심도 높였다.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으로 알려진 박쥐 등 야생동물의 서식지 이탈이 기후변화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저탄소 등 기후변화 대응 관련 노력을 통상과 연계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올 상반기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입법을 계획하고 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을 EU 내에서 판매하는 것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지난 1월 미국도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한 만큼 본격적으로 환경정책을 수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통상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저탄소 등과 관련된 항목이 다자간 무역협정의 주요 의제로 부상할 수 있어서다. 이를 통해 강제되는 신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요구는 개도국 정부와 기업 입장에서 새로운 통상 장벽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여파로 세계 교역량이 줄어든 가운데에서도 수출기업들은 물건을 실어나를 선박과 컨테이너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 수출은 5.4% 감소했다. 하지만 작년 4분기만 놓고 보면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했다. 세계 해운사들이 코로나19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노선을 통폐합하며 운항을 줄인 가운데 수출물량이 늘면서 기업들은 컨테이너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11월에는 해상 운송항로의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가 2010년 7월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내기도 했다. 항공화물 운임도 연초 대비 2배 이상 올랐다. 이 같은 물류난에 일부 대기업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용해 유럽으로 화물을 운송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