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에서 미국시장이 갖는 상징성을 감안할 때,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구제 조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구제 조치는 46건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EU 7건, 인도 34건 등 대체시장에서도 무역구제 조치를 유발해 풍선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2월 10일 현재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무역구제 조치는 반덤핑 36건, 상계관세 8건, 세이프가드 2건 등 모두 46건으로 1위를 점하고 있다. 미국의 무역구제 조치가 풍선효과를 초래하여 EU, 인도 등 대체시장에서도 무역구제 조치를 유발하고, 최근에는 베트남 등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국 기업의 수출품에도 무역구제 조치가 확산되는 추세다. 수입규제 조치의 질적 양상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철강재 분야에 집중되던 것과 달리 백색가전, 자동차 부품, 담배, 타이어 등으로 규제범위를 넓히고 있다. 조사 방법도 표적덤핑과 제로잉, 불리한 사실 추론(AFA), 특별시장상황(PMS) 등 고율의 반덤핑관세·상계관세를 도출하기 위한 기법이 계속 강화되는 양상이다.
통상법 301조, 무역확장법 232조 등 종전에 잘 사용되지 않던 통상규제를 공격적으로 활용하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반덤핑, 상계관세 등 전통적인 무역구제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무역구제 조치는 미국 내 산업을 대표하는 신청인(Petitioner) 측의 조사신청으로 촉발되는데, 특히 미국 노조는 친노동 성향을 표방하고 있는 바이든 정부하에서 더욱 활발한 조사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친노동 정책환경 외에도 코로나19로 악화된 경제지표와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기조를 계승해야 할 자국 내 정치적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 내 산업 보호를 요구하는 자국 내 여론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미국의 무역구제 조치는 양적으로도 늘어날 것이고 질적으로도 난이도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기조를 감안할 때, 한국 기업들이 미 당국의 강화된 조사기법에 면밀히 대응할 필요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미국의 무역구제 조치는 일부 철강업체에만 국한된 남의 일이 아니며, 업종을 불문하고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일단 조사가 시작될 경우에는 미 상무부(DOC)의 덤핑마진율 및 보조금률 조사와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산업피해 조사에 모두 소홀함이 없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사실적·법리적 주장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조사 개시 이전에 기업의 대미수출 구조를 분석하고 취약점을 확인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작업을 선제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긴요하다. 거센 보호주의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낮은 덤핑률과 산업 무피해 판정을 도출하여 성공적으로 무역구제 조치를 방어해낸 최근 일부 한국 기업의 사례들에서 큰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인도는 무역구제제도 측면에서 실질적인 선진국 반열에 올랐음을 선포하면서 무역구제제도와 관행을 인도 특유의 영민한 방식으로 개편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합치되게 관행을 개선하면서도 동일 혹은 강화된 수준의 자국산업 보호 효과를 누리도록 한다는 점에서 면밀한 검토와 주의를 요한다.
인도는 2018년, 무역구제 관련 조직과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한 바 있다. 같은 해 12월, 무역구제 조사 매뉴얼 공표와 함께 무역구제제도 측면에서 실질적인 선진국 반열에 올랐음을 선포하면서 그간 WTO 협정에 불합치했던 관행들을 계속해서 손보고 있다. 인도는 반덤핑제도의 세계 최대 활용국으로 압도적인 조사 빈도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간 축적된 불합리한 관행들을 개선하는 작업은 향후 수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협정에 합치되는 방향으로 개선된다는 점은 분명 반길 일이지만, 인도 특유의 영민한 방식으로 개정되는 것인 데다 우회행위나 관세흡수를 제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함께 도입하고 있어 면밀한 검토와 주의를 요한다.
인도는 그동안 반덤핑 원심 조사에서 미소마진으로 판정된 기업까지도 중간재심 혹은 반덤핑 조치의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일몰재심의 조사대상으로 포함시켜왔다. 같은 관행을 갖고 있던 멕시코의 미국산 소고기·쌀 사건에서 WTO 분쟁해결기구를 통해 이미 2005년에 협정위배라는 판정이 내려졌음에도, 인도는 이러한 관행을 유지하고 있었다. 2020년 5월, 인도는 변칙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관행을 폐지했다. 2015년 개시된 인도네시아·베트남산 합판 사건에서 미소마진으로 판정된 ‘킴틴(Kim Tin)’사를 일몰재심 대상으로 추가하지 않는 대신, ‘킴틴’사만을 대상으로 하는 신규 반덤핑 조사를 개시한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2012년 EU 일반법원(General Court)으로부터 합법성을 인정받았다. 기존 관행을 변경하면서도 동일한 수준의 자국 산업 보호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독특하게도 인도 조사당국은 생산자뿐 아니라 비관계 상사까지도 조사에 응하도록 강제하면서, 생산자-수출자(상사) 조합별로 반덤핑 관세율을 책정해왔다. 하지만 2020년 2월, 중국·베트남·한국산의 알루미늄·아연 도금재 사건부터 생산자별 단일률을 부과하는 판정을 내리고 있다. 생산자별 단일률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조사에 응하지 않은 비관계 상사에 대한 징벌적 조치를 생산자에게 부담지우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비관계 상사의 수출물량이 30% 미만이라면 별다른 불이익을 주지 않았으나, 생산자별 단일률로 변경되면서 비관계 상사의 비중에 상관없이 고율의 덤핑마진을 산정한 뒤 이를 생산자별 단일률 계산 시 가중 평균하여 반영하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이제는 수출물량 비중에 상관없이 모든 상사가 조사에 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 5년간 한국에 대한 중국의 무역구제 추이를 분석하면 2019년까지 소폭 증가하다 감소하는 추세로 규제 건수나 내용 면에서 큰 변화를 보이진 않으나 우리 기업은 환경·기술 관련 비관세 장벽과 관련된 정책 등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2020년 말 현재 전 세계 26개국의 대(對)한국 수입규제 조치는 총 229건으로, 이는 사상 최다 기록이다. 중국은 총 16건의 수입규제 조치를 한국에 적용했는데 이는 미국(46), 인도(34) 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한국을 대상으로 한 16건의 규제 조치 중 15건은 반덤핑, 1건이 세이프가드다. 15건의 반덤핑 조치의 절반 이상인 8건이 화학 관련 품목에 집중되어 국내 대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5년간 한국에 대한 중국의 수입규제 추이를 분석해보면 2019년까지 소폭 증가하다 감소하는 추세로 규제 건수나 내용 면에서 큰 변화를 보이진 않는다.
2020년 하반기 현재 중국은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총 122건의 수입규제를 하고 있는데 절대다수인 111건이 반덤핑 제재이며 상계관세와 세이프가드는 각각 10건, 1건을 적용하고 있다. 반덤핑을 품목별로 보면 화학이 76건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철강·금속 11건, 플라스틱·고무 3건, 섬유·의류 1건, 기타 20건이다. 국가별로 봤을 땐 미국(33건), 일본(21건), 유럽연합(19건) 순이다. 흥미로운 점은 2020년 하반기 중국 정부가 신규 조사 개시한 수입규제 7건이 모두 미국과 호주를 겨냥했다는 것이다. 미·중, 미·호주 간 관계 악화가 실제 수입규제 등 통상 분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은 정치·경제 사안에 대해 교역 상대국에 압박카드로 수입규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국의 이러한 통상전략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우리 기업은 수입규제 외에도 통관절차, 위생 및 검역, 기술 규정과 표준, 환경 규제, 원산지 규정 강화 등 중국의 비관세 장벽과 관련된 정책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올해 1월 1일 자로 시행하고 있는 ‘신화장품감독관리조례’나 ‘고체폐기물 전면 수입금지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신화장품감독관리조례는 30년 만에 개정된 화장품 기본법으로 화장품 원료 관리와 인증·등록, 광고 관련 규제 및 책임자에 대한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수입 화장품의 제품 안전성 심사 관련 내용도 담고 있으며 화장품 광고 홍보문구 역시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할 수 없을 경우 허위·과장 광고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화장품은 한국의 대중 수출 10위권에 드는 품목이며 중소 수출기업도 매우 많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코트라의 해외시장뉴스(news.kotra.or.kr)를 통한 각종 규제 등 중국의 통상정책 정보와 중국 지역 무역관들의 웨비나(웹 세미나) 등을 참고, 관련 정보를 효과적으로 적시에 활용해 대비해야 할 것이다.
터키의 수입규제 움직임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터키는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무역구제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작년 말 기준 약 30개국 대상으로 229건의 수입규제를 실시하였다.
터키는 완성품 중심의 제조업과 관광업이 발달한 국가다. 대부분의 제조업이 원자재 및 핵심부품 등 중간재를 수입하여 가공 후 재수출하는 구조다 보니 중간재 수입 비중이 75% 내외로 높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주요 수출 시장인 유럽의 소비 위축 및 해외관광객 유입 감소 등으로 외화가 부족해지며 리라화의 대미 달러 환율은 최대 30~40%가량 급등하였다. 이에 터키는 4월 이후 총 7회에 걸쳐 5,000여 개 품목을 대상으로 추가관세를 부과하는 수입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터키는 2020년 말 현재 약 30개국에 229건의 수입규제를 실시하였다. 최근 3년 동안 규제 건수가 40%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한국에 대한 터키의 수입규제는 총 14건으로 반덤핑 9건, 세이프가드 5건이다. 특히 섬유 및 석유·화학 분야에 대한 수입규제가 각각 5건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플라스틱 원자재는 전체 시장 수요의 약 87%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터키 제조업체들의 제재 요청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2018년 터키 섬유 생산업체 A사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으로 수입관세를 적용받지 않는 독일, 스페인, 한국산 제품 등에 대하여 반덤핑 조사를 신청했다. 제소 명목은 수입품의 낮은 시장가 형성에 따른 피해였으나 제조사가 자진 취하하며 무혐의 종결 조치됐다. 사유는 공식 발표되지 않았으나 제소사의 시장 내 높은 시장점유율을 감안 시 보호조치의 필요가 필수적이지 않고, 수입품의 가격 경쟁력 외 우수한 품질에 따른 소비자 선호도가 높다는 점 등이 배경으로 추정된다. 수입품에 반덤핑 또는 상계관세 등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국내 산업에 실질적인 피해가 있어야 하며, 수입품과 국내 산업의 실질적 피해 간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역으로 수출업체는 상기 두 가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음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명백한 자료를 구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기업 혼자서 해결하고자 할 것이 아니라, 국내 관련 협회 및 고객사 등의 도움을 통해 다각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최종 판결은 자국 생산업체 외에도 후방산업 중 원가상승 등의 피해를 입는 기업들의 의견도 수렴하여 결정되기에, 현지 바이어 등과의 공조도 효과적일 수 있다. 조사 후 수입규제가 시행되더라도 이의제기업체 대상 규제 감면 혜택 등이 제공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의제기, 공청회 참가 등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