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정서가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경쟁적 보호무역 시대에 돌입했다.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전통적 무역구제 조치를 비롯하여 무역기술장벽, 위생검역, 통관절차강화, 수입제한 등의 비관세장벽을 통한 보호무역 조치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에 이번호는 무역구제 조치를 중심으로 보호무역주의의 현황을 살펴보고 4월호에는 무역기술장벽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보호무역주의의 확대는 탈세계화와 흐름을 같이한다. 자유로운 교역과 자본의 이동을 골자로 하는 세계화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여기에 반대하는 정치적 흐름이 조직화된 것이다. 2016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가결은 탈세계화 추세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의 정권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교체되기는 했지만 이 같은 추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탈세계화 흐름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이동 통제 등으로 수요가 위축되면서 고용을 유지하는 것에 각국 정부가 애를 먹고 있어서다. 기업의 경쟁력 하락이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개별 국가는 자국 산업을 보호해 기업들을 지키려는 유인이 커진다.
미국은 지난해 5월 한국과 태국, 대만, 베트남산 타이어의 반덤핑 조사를 개시했다. 중국에 대한 무역구제가 아시아 국가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유럽연합(EU)도 지난해 6월 역외 보조금 규제백서를 발표하고 EU 역내 시장의 경쟁을 왜곡하는 역외 보조금 관련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같은 보호무역주의는 당장 철강과 금속, 화학 제품 등 중간재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국 기업들이 생산한 중간재가 충분한 수요처를 찾지 못한 가운데 해외 제품이 관련 자국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가 이어질 수 있다. 정치적인 사안을 두고 상대국을 압박하기 위한 보호무역 조치도 늘고 있다. 코로나19의 중국 책임론을 제기한 호주에 대해 중국이 소고기 수입을 중단하고 호주산 보리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보호무역주의의 확대는 자유무역을 통해 성장한 한국에 악재가 되고 있다. 한국을 겨냥한 여러 국가의 수입규제 건수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늘었다. 올해 1월 코트라 집계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수입규제 건수는 26개국, 229건이다. 2011년 117건에 비해서는 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대표적 수입규제 조치로는 크게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가 있다.
지난해에는 반덤핑 165건, 세이프가드 54건, 상계관세 10건이었다. 품목별로는 철강·금속이 110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화학(53건), 플라스틱·고무(20건), 섬유·의류(17건), 전기·전자(8건) 등이었다. 한국에 대해 수입규제 조치를 많이 한 국가는 미국으로 46건이었다. 이어 인도 34건, 중국 16건, 터키 14건, 캐나다 13건 등으로 나타났다. 한국을 대상으로 지난해 수입규제 예비절차인 수입규제 조사에 새로 돌입한 건수는 작년 하반기 기준 18건이다.
통상 분야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디지털 교역에서도 보호무역주의는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자국 국민들의 개인 정보 및 상거래 정보를 선뜻 내줄 국가는 없다.
어디까지를 지키고 어디까지를 내줄지를 놓고 이미 국가간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을 갖고 있는 미국 등은 해당 정보를 내주지 않는 국가를 보호주의무역으로 몰아간다. 지난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2020년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데이터 정책과 클라우드 컴퓨팅 보안 규정이 디지털 교역 활성화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데이터 센터 등을 국내에 두도록 한 규정이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의 한국 진출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통상 분야에서는 보호주의 무역의 틀로 보기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같은 내용 하나하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국가간의 이익을 조율해갈지도 보호무역의 새로운 이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