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무역이라는 경제활동을 이끄는 존재로 기업을 떠올리기 쉽지만, 의외의 큰손은 바로 ‘정부’다. 정부가 직접 나서 계약 및 구매를 하고 이에 대해 자국 기업은 물론 경우에 따라 해외 기업들까지도 입찰에 참여하는, 이른바 ‘정부조달’은 특히 정부의 존재감이 큰 통상 분야다.
‘정부조달’이란 국가의 행정주체인 정부의 구매행위로 대상은 교육과 국방, 전기나 수도 시설, 도로 및 항만과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보건 등 공공서비스 제공 목적의 상품이나 서비스다. 이러한 특성상 정부조달 분야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의 내국민 대우원칙의 예외 분야로서 자유국제무역 대상에서 제외됐으나, 그 규모가 국가별 국내총생산(GDP)의 10~15%까지 커지면서 정부조달을 자유무역 범주에 포함하려는 노력이 시작됐고, 그 결과 참여국 한정의 상호 자유화 방식으로 합의된 성과가 바로 WTO 정부조달협정(GPA; Agreement on Government Procurement)이다. 2021년 4월 현재 우리나라 포함, 48개국이 가입되어 있고 11개국이 추가 가입을 진행 중이다. WTO 전체 회원국 기준 29% 수준으로 결코 높지 않은 비율인데 일부 국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일부 개방하기도 한다.
끝을 모르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지인과의 자유로운 만남, 마스크 없는 일상 등 많은 것이 그립지만 여행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특히 각국의 봉쇄령 및 엄격한 입국제한 조치 등으로 항공업이 호텔, 여행업과 함께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인천국제공항(IATA코드: ICN)이 2001년 3월 29일 개항한 이래 20주년을 맞이했다. 우리 공항이지만 ‘세계의 공항’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2017년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12년 연속 글로벌 랭킹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또한 2018년에는 국제 여객 실적 세계 5위, 국제 화물 실적 세계 3위를 차지하는 등 짧은 기간 안에 양적·질적 발전을 모두 이뤄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초일류 국제공항이 개항도 하기 전 통상분쟁의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그간 인천국제공항의 성과와 우리의 자부심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WTO GPA 참여국인 미국은 또 다른 참여국인 우리나라(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가 1998년 500억 원 규모의 공항 내 엘리베이터 설비 입찰공고에서 외국기업 참여에 제한을 둔 것은 WTO 규정에 위반된다며 1999년 2월 WTO에 제소했다. 미국 측의 주장은 입찰 주체인 신공항건설공단 및 그 승계기관이 WTO GPA 적용대상이라고 보고 GPA가 규정한 것과 달리 40일보다 짧은 입찰기간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또한 국외의 입찰 희망자는 우리나라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반드시 우리나라 업체와 공동도급이나 하도급 형태로 참여하도록 한 것은 외국기업의 참여를 제한한 것이며 이의가 있는 경우 그 신청절차에 대해 명시하지 않았으므로 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애당초 신공항건설공단이 GPA가 적용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이 해당 기관의 입찰을 우리나라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의 그것과 동일하게 해석하였지만 사실 해당 기관은 해당 부처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체의 별도 구매결정권을 가진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4월 WTO 패널의 판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패널은 미국의 주장과 달리 신공항건설공단은 우리나라가 GPA 부속서상 직접적인 명시를 통해 양허한 기관이 아니고, 특히 미국이 주장하는 상급 부처와의 관계를 봐도 건설교통부는 전반적인 감독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지, 그 외 주요 기능은 모두 신공항건설공단에 위임되어 해당 기관은 독립기관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미국은 더는 상소하지 않아 분쟁은 그렇게 우리나라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도 봄은 찾아왔고 꽃은 만개했다. 어려울 때 피어난 꽃은 더 아름다운 법이다. 이처럼 개항 전부터 미국과의 통상 전면전을 겪어낸 인천국제공항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지난 20년간 감격스러운 성과를 이룩했다. 인천국제공항은 세계 국제 여객 운송량 5위, 취항 항공사 88개, 취항 국가와 도시 각각 52개, 173개라는 우리가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모습으로 하늘길을 열고 있다. 코로나라는 어려움 이후의 인천국제공항이 더욱 빛날 것임을 확신한다.
참고 : <국제통상분쟁사례이해>(박형래, 2010), <新국제경제법>(한국국제경제법학회, 2018) 및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