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우리나라 수출액이 507억 달러로 역대 5월 중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수출이 전년 대비 5.5% 감소하였을 때 올해는 그저 예년 수준을 회복하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분위기였던 것과 비교하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증가율 역시 전년 대비 20%를 넘는 흐름으로 올해 총 수출은 6,000억 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에 대한 걱정은 비단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었다. 2018년부터 격화된 미·중 간 갈등, 미국 및 유럽연합(EU) 등 강대국의 보호주의 조치들은 우리 수출시장의 진입장벽이 되고 있었다. 2019년 여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여기에 예고 없이 불어닥친 코로나19 팬데믹은 글로벌 공급망에 타격을 입힘은 물론, 기존 시장의 룰을 완전히 바꿔놓기에 이르렀다. 이런 우려 속에서 우리 수출이 보여준 선전은 그 양적 성장도 놀랍지만 우리 경제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내용적 의미가 더 크다. 연초 시작은 반도체, 자동차 등 일부 품목 위주로 성장세가 좋았지만, 5월에는 15대 주력품목 중 14개가 증가하였고, 이 중 12개가 두 자릿수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다. 게다가 중국, 미국, 유럽, 아세안 등 모든 지역에 수출이 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우리 수출은 자칫 기죽을 수 있는 분위기에서도 활로를 찾아 나갔다. 미·중을 비롯한 강대국 간 패권 다툼을 우리 산업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는 데 집중하였고, 일본의 수출규제로 공급이 막혔던 반도체 제조물질은 수입에 의존하는 대신 국산화를 실현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기심을 버리고 상생 협력하고, 정부가 합심하여 지원했던 모습을 온 국민이 기억할 것이다. 우리 수출은 아직까지 대기업 비중이 높고, 대외환경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지속 가능한 수출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참여가 더 많아져야 하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혁신제품이 나와야 한다. 코로나19로 글로벌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는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의 진단키트 등 방역제품, 컴퓨터 등 홈오피스 제품, 집콕 트렌드에 힘입은 간편식품 등은 세계시장에서 K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 제품 대부분이 중소기업 제품이라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올해 글로벌 교역 증가율을 8% 이상으로 높게 잡고 있으며, 미국, 중국, EU 등이 내놓는 수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발 글로벌 수요 역시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주요국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그린뉴딜, 디지털 뉴딜은 경쟁력 높은 우리 기업들의 참여가 매우 기대되는 분야다. 서서히 코로나19의 어둡고 긴 터널 끝이 보인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 터널을 한발이라도 먼저 빠져나와 새롭게 전개되는 시대에 선착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도 정부와 기업, 유관기관 등이 협력해 자신 있게 도전하면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의 강자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2018년 9월 서명한 한‧미 FTA 개정협상은 제한적 범위 내에서 신속하게 마무리함으로써 개정협상에 따른 시장 불확실성을 조기에 불식하고, 한미 교역‧투자 관계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고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아울러 한‧미 FTA의 역할이 더욱 공고해지고, 이를 기반으로 양국 관계가 한층 더 심화‧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 미국에 철강제품을 수출할 때 쿼터를 설정하고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25% 관세부과 조치를 면제받았다. 대신 수입하는 미국 화물자동차의 관세철폐 기간을 현재의 10년 차 철폐(2021년 철폐)에서 20년 연장했다. 자동차 안전기준 동등성 인정 물량의 상한을 2만5,000대에서 5만 대로 확대하는 것에 합의했다.
자동차 환경 기준으로 차기 연비·온실가스 기준 설정 시 미국 등 글로벌 표준을 고려하고, 친환경 기술개발 인센티브인 에코이노베이션 크레디트 인정 상한을 확대했다.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와 원산지 검증과 관련해서는 한·미 FTA에 합치되는 방식으로의 제도 개선 및 보완에 합의했다. 투자자에 의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제도(ISDS) 남소 제한 및 국가의 정당한 정책 권한 보호 요소를 포함했다. 반덤핑·상계관세 조사와 관련해서는 현지실사 절차 규정을 신설하였고, 일부 공급이 부족한 섬유 원료 품목에 대해 원산지기준 완화를 추진키로 했다.
먼저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받아 교역의 불확실성을 해소했다. 우리나라의 민감한 분야인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이나 미국산 자동차부품 의무사용 요구를 방어하여 실리를 확보했다. 미국의 최대 관심 분야인 자동차에서는 우리 안전·환경기준의 기본체계를 유지하되 운영상 일부 유연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합의했다. 이행 이슈인 원산지 검증과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는 기존 한·미 FTA에 합치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보완하는 수준에서 합의했다. 우리의 관심사항을 반영하여 ISDS와 무역구제 분야 협정문이 개정됐고 일부 섬유 품목에 대한 원산지기준 개정 추진으로 대미 섬유수출 애로사항도 해소했다.
협상 결과를 전체적으로 분석하면 필요한 수준에서 명분을 제공하고 우리 측 실리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개정 협상을 제한적인 범위에서 신속하게 마무리함으로써 추가적인 협상에 따른 시장 불확실성을 불식시켰다. 그리고 미국의 요구를 적절히 수용함으로써 양국 간 교역 및 투자 관계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고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또한 한·미 FTA 개정 협정문 발효로 양국 간 경제와 통상 관계의 기본 틀로서 한·미 FTA의 역할이 더욱 공고해지는 한편, 이를 기반으로 양국 관계가 한층 더 심화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을 포함해 환태평양지역 15개 국가를 회원국으로 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이 8년여의 협상과정을 거쳐 지난해 11월 마침내 체결됐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과 인구의 30%를 아우르는 이번 글로벌 통상 네트워크 확대를 통해 한국 경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11월 15일 체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국가 발전을 위한 핵심적인 대외정책이다. 신남방정책 및 신북방정책을 추진하며 글로벌 통상 네트워크 확대와 경제협력에 역점을 둔 현 정부의 가장 큰 통상정책 성과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협상 진행 과정에서 인도가 불참을 결정하면서 중요도가 반감되기는 하였지만, 아세안 10개국 및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의 1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RCEP은 전 세계 GDP와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메가 FTA다. 생산성 증대 효과를 모델링한 최신의 연구 결과는 현 수준의 관세철폐만으로도 역내 큰 생산성 증대 효과를 유발하며, 특히 한국의 경우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이 크게 확대되면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같은 수출주도형 국가에서는 최대한 자유무역지대를 확대하면서 시장을 확대하고 다변화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대외무역 환경의 급변 속에서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지역무역협정을 중심으로 최근 한국을 둘러싼 국제통상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데, 특히 환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메가 FTA의 출현은 역내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역내 또 다른 메가 FTA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경우, 최초 타결되었던 TPP에서 미국이 탈퇴하면서 중요도가 크게 줄어들었으나, 최근 브렉시트의 대안으로 영국이 가입을 공식 신청함은 물론 미국의 재가입 및 중국의 가입 가능성까지 점쳐지며 그 향방에 따라 비참여국인 한국 경제에도 큰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의 글로벌 통상 네트워크 확대전략의 핵심적인 목표 중 하나는 수출입 시장을 다변화해 특정 국가에 대한 경제 의존도 심화를 완화하려는 것이다. CPTPP의 확대 움직임은 역내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으로 RCEP 참여에 따라 예상되었던 제반 경제적 효과를 크게 반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의 절대적인 1, 2위 교역국인 중국과 미국 사이의 패권 전쟁은 환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적극적인 CPTPP 가입 검토를 공식화하였으나 후발 주자로서 기존 회원국들과의 까다로운 가입 협상이 전망되는 한국은 전략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중재자적인 입장에서 가입 협상을 이끌어나가고, 다른 지역무역협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국제통상 질서 재편을 주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부 산업의 궤멸적 충격 속에서도 한국은 코로나19에 가장 모범적으로 대응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주요국의 연이은 봉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기업인의 예외적 입국 허용체계를 마련해 이동을 원활하게 하고 기업 피해를 최소화했다.
코로나19가 시작될 무렵은 글로벌 가치사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미·중 통상 갈등과 일본의 우리나라 수출규제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었으며 우리 경제의 강점인 첨단 제조업에서 소재·부품·장비의 일본 의존도도 높았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끝나갈 무렵 대외 불확실성으로 수출증가세가 빠르게 둔화되자 대책 마련을 위해 민관 합동의 무역전략조정회의를 세 차례 열었다.
제1차 회의는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던 2020년 2월 20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코로나19 기업애로 해소 및 수출지원 대책’에는 긴급 유동성 보강, 물류·통관 신속 지원, 조기 조업재개 지원, 수출 마케팅 지원을 통한 수출 기회 확보, 불가항력적 피해에 따른 분쟁대응 지원 등이 포함됐다. 당시 전 세계의 누적 확진자는 7만5,000여 명이었는데 중국이 99% 이상을 차지, 중국 노출이 큰 우리 수출에 대한 신속하고 단기적인 처방이 효과적이었다.
제2차 회의는 코로나19 팬데믹의 2차 확산이 시작되던 6월 10일 열렸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출활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는데, 7대 지원 강화방안으로 △ 긴급 유동성 위기 해소 △ 포스트 코로나 유망 수출△ 언택트 수출지원 고도화 △ 해외 경기회복 프로젝트 진출 △ 상품·기업인 신속 이동 △ 애로해소 및 생산기반 보호 △ 수출 인프라 보강 등의 대책이 마련됐다. 722개 수출기업과 17개 수출 지원기관으로부터 현장의 애로사항을 조사해 맞춤형 대응을 시행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해외주문 감소, 인적이동 제한, 물류애로, 대금 지연 및 금융애로 등을 주요 애로 사항으로 제기했다. 특히 5월 1일 ‘한·중 신속통로’를 도입, 8월 14일 ‘기업인 출입국 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하여 기업인의 국경 간 이동 편의를 제공한 것은 여전히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센터는 최근 출입국이 필수적인 기업인을 대상으로 백신 우선 접종도 시행하고 있다.
이후 11월 13일 제3차 및 2021년 3월 10일 제4차 회의에서는 ‘무역 디지털 전환대책’과 ‘미래 성장동력 확충 및 무역구조 혁신전략’이 각각 발표됐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책들이 준비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수출지원체계를 디지털 무역체제로 전면 개편하는 방안은 주요국이 무역 디지털화에 대응하여 다각적 지원을 강화하는 추세와 맞물려 있다. 최근 주요 7개국(G7)이 양도가능 전자기록을 도입하기로 합의하는 등 무역체제의 디지털화에 중점을 두고 있어, 관련 국제표준화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우리에게 맞는 체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