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만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발발했다. 세계 최강국의 패권을 놓고 두 국가가 총성 없는 전쟁을 시작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자유시장경제 무역질서는 중대한 도전을 맞이했다. 여기에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까지 발생해 보호무역주의는 한층 강화됐다. 한국의 통상정책도 기로에 서 있다. 문재인 정부 4년, 통상정책의 결정인자는 무엇이었는지 키워드를 통해 살펴본다.
미국 정부는 2018년 7월 6일 340억 달러(약 38조120억 원)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관세 25%를 부과하는 선제 공격을 단행했다. 이에 맞서 중국도 미국산 농산품, 자동차, 수산물 등에 같은 규모로 보복관세 조치를 취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두 국가 간 총성 없는 전쟁의 서막이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중국이 환율조작, 기술력 갈취 등을 통해 세계무역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장기적 대미무역 흑자가 미국에 대한 경제적 침략과 다르지 않다는 ‘무역안보론’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노선에 이론적 뒷받침이 됐다. 미국이 중국의 대표 통신장비 제조업체 화웨이에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은 기술패권을 놓고 양국이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전면전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수차례 시도됐던 두 국가의 화해 시도는 코로나19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동맹국들과의 협력 강화를 토대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은 미국 기술동맹의 중요한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관계설정은 여전히 숙제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통상정책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끼친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 보호무역주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는 간혹 미국에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분쟁조정 절차가 마음에 들지 않자, WTO체제 자체를 무력화하는 시도에 나섰다. WTO 상소기구의 최종심을 맡을 수석위원이 미국의 반대로 선임되지 못하면서 WTO의 통상분쟁 조정 기능이 마비된 것이 단적인 예다. 산업에 대한 안보 차원의 접근을 허용한 코로나19 확산은 트럼프발(發) 보호무역주의에 기름을 부었다. 조 바이든이 새로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미국이 WTO 규정을 준수하고 그동안 무너져버린 다자간 협상을 복구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근본적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시각도 상존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일 통상마찰은 일본 경제산업성이 2019년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의 한국수출 규제를 단행하면서 시작됐다. 고순도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의 한국 수출허가 방식을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전환하면서다. 이어 8월에는 자국 기업이 수출할 때 승인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 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였다. 일본은 대법원의 판결이 한일청구권 협정 위반이고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철저히 대응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나서는 한편,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 수입처를 벨기에와 대만으로 다변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백색국가 제외로 수출심사를 크게 강화한 품목인 비민감 전략물자의 대일 수입의존도는 여전히 80~90%에 달한다. 국민정서와 경제적 편익을 놓고 양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세계경제의 호황기 중 발발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리 코로나19는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미·중 통상분쟁 심화, 세계무역기구(WTO) 기능 약화 등 보호무역주의 확산 와중에 발생해 세계 교역환경 회복을 위한 국제공조를 어렵게 만들었다. 코로나19는 향후 각국 정부의 자국기업 지원 강화, 외국자본의 투자 제한 등 경제개입 확대, 미·중 헤게모니 경쟁의 심화, 디지털무역 국제규범 논의의 진전 등 세계 통상환경의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공급망 운영이 아닌 천재지변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한 핵심물자의 재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따라 사회 전반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디지털 재사회화가 이뤄지고 있고, 비대면 전자상거래와 온라인 서비스 무역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것도 코로나19가 국제통상에 미친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기후위기는 탄소배출 기반 제조업을 근간으로 발전해 온 우리나라 수출경제에 전례 없는 도전이다. 정부는 국제사회에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약속하고, 오는 11월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상향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무역통상 정책에서는 탄소중립을 놓고 미묘한 긴장감이 교차한다. 글로벌 탄소국경세 도입이 무역을 제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경계심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탄소집약도는 0.29로, 주요 7개국(G7) 평균인 0.19를 크게 웃돈다. 산업 내 제조업 비중도 선진국보다 높다. 이 같은 수치는 저탄소 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막대한 전환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유럽연합(EU), 미국,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 지불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추가 금액이 2030년에는 1조8,7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인 철강, 석유화학 등은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산업생태계 붕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