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1962년의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 철강에 25%의 고율관세를 추가 부여했고, 최근에는 유럽연합(EU) 내 탄소국경세 논의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철강을 주력 수출하는 우리나라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과거 세계무역기구(WTO) 철강분쟁 승전보의 교훈을 환기하고 잠재적 통상 이슈에 대한 자신감을 다질 시기다.
우리의 대표적 수출품목으로 우선 반도체, 자동차를 떠올리지만 철강도 뺄 수 없다. 모두 수십 년간 우리 주력 수출품목으로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한 고율관세나 탄소장벽이 우리나라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배경이다. 최근의 상황들을 차치하더라도 철강 분야는 늘 반덤핑이나 세이프가드 같은 무역구제조치의 최우선 표적이 되어왔으며 이는 우리 정부와 업계에 불철주야 고민을 야기해왔다.
2000년대 초 미국이 취한 철강 세이프가드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분쟁화됐던 기억은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다. 당시 주요 대상 품목은 한국산 탄소강관. 이는 원유나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특수한 파이프로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라인 파이프(Line Pipe)’라고 부른다.
1999년 6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는 미국 내 철강기업들과 미국철강노조연합 등의 청원을 접수한 후 8월에 탄소강관의 세이프가드 필요성 조사에 착수한다. 수출국의 불합리한 가격 하향이나 불법 보조금 지급 등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한 반덤핑 및 상계관세와 비교했을 때 공정한 무역 상황에서 자국 산업에 대한 피해 또는 그 위협에 대해 적용되는 세이프가드는 그 발동요건이 더 까다롭다. 그럼에도 당시 조사위원들은 수입 탄소강관으로 인한 자국의 심각한 피해(Serious Injury)에 대해 긍정 판정을 하고 2000년 2월에 향후 3년 1일간의 최종 세이프가드 조치를 공표, WTO에도 이를 통보하기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등 탄소강관의 각 수출국으로부터 연간 9,000톤 이상 되는 물량에 대해서는 1차 연도부터 3차 연도까지 19~11%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하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당사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의 탄소강관은 세이프가드를 면제해주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이에 우리나라는 6월 미국을 WTO에 제소했다.
여기서 잠시 반덤핑이나 상계관세와는 다른 세이프가드의 기본원칙을 먼저 이해하고 분쟁의 주요 쟁점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전자의 두 조치와는 다른 ‘조치 대상’과 관련된 것인데 보다 구체적으로는 앞선 조치들이 덤핑행위나 보조금 지급을 한 부당 국가, 즉 ‘불공정 무역행위 주체 국가’에만 적용되는 반면 세이프가드의 경우 해당 품목을 기준으로 ‘이를 수출하는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시 조치에서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를 NAFTA 당사국이라는 이유로 예외해줬고 이것이 ‘미국에 철강을 수출하는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세이프가드 기본원칙에 어긋남에 따라 분쟁의 주요 쟁점이 됐다.
미국의 조치에 주요 표적이 된 우리나라는 당연히 이의를 제기했다.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 같은 자유무역협정(FTA) 국가는 WTO 의무에서 예외된다는, 이른바 FTA 기본원칙으로 맞섰다. 양국의 주장에 대해 패널과 상소기구는 각각 다른 판단을 내렸다. 패널은 우리나라의 주장처럼 미국이 FTA 회원국들을 세이프가드 조치 대상에서 면제해준 것은 가트(GATT)와 세이프가드 협정에서 인정한 최혜국대우 원칙을 위반한 것이 맞지만 미국의 주장처럼 FTA의 경우 예외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상소기구는 USITC가 자국 탄소강관의 피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캐나다와 멕시코산 탄소강관 수입을 포함해 긍정 판정을 내리는 등 조치를 결정해놓고 최종 단계에서 이들을 제외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며 세이프가드 협정 제2조 및 제4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한·미 탄소강관 세이프가드 분쟁은 우리나라가 상소기구에서 최초로 승리한 사례로 기록됐다.
세이프가드는 자국 산업을 위해 정당하게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정당한 조치는 어디까지나 정당하게 취해질 때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뿐 대상국이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는 성역(聖域)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통상 고민이 발생할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법과 원칙에 입각한 대응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와 같은 과거 분쟁 경험에서 우리는 배워 알 수 있다.
참고 : <WTO 세이프가드 제도 분쟁사례 연구>(법무부, 2006) 및 인터넷 자료.